졸업
졸업

환경오염으로 임신이라는 것이 10대 후반에 잠깐 가능한 것이 된 사회, 그중에서도 10%도 안 되는 아이들만이 등급 판정을 받는 시대. 17세가 되면 정자나 난자 검사를 받고, 등급에 들어갔을 경우 석달 안에 등급이 맞는 상대와 관계를 갖고 임신을 할 수 있다. 그러면 정부는 24평 아파트와 생활비, 아이가 초등학교에 갈 때 까지 가사와 육아 도우미를 지원해준다. 그야말로 혜택이다. 직접 키울 자신이 없다면 입양을 보낼 수도 있다. 아이를 갖지 못하는, 그러나 아이를 원하는 사람들은 얼마든지 있으니까.

이런 시대에 주인공은, 대학 합격 통지서와 함께 자신의 난자가 A급이라는 합격 통지서를 받는다. 물론 불과 서너달 사이에도 난자의 등급이 떨어질 수 있기 때문에, 빨리 선택을 해야 한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게 석달 안에 큰 일을 결정할 수 있도록 기다려주지 않는다. 힘들게 일하며 혼자서 자신을 키워 온 엄마에 대한 미안함, A급 난자 보유자라 재학중에 임신했지만 투명인간처럼 따돌림당하고 학교에 돌아오지 못한 친구, 특별한 결점도 장점도 없지만 좋아하는 남자아이. 그리고 등급이 맞는 아이와 만나 나눈 이야기들.

“그 선생님은 난자 검사 같은 거 받아 본 적도 없고 받을 필요도 없었잖아. 인류의 미래를 생각한다는 아름다운 말로 치장하면서 우리 같은 애들을 짝짓기시키고, 그렇게 태어난 애들에 대해서는 나 몰라라 하고. 솔직히 겁나 편리한 사고방식 아니냐? 출산율만 높이면 되니까.”

국가가 임신 출산을 통제하는 디스토피아 SF이자 청소년 소설인 이 소설은, 그렇게 대학에 합격하고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봄이 올 때 까지의 석 달의 이야기다. 국가에 의해 자신의 몸이 통제되고, 혜택이라는 이름의 회유를 통해 자유와 인권이 무시당하는 상황에 대한 이야기인 동시에, 모성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중간에 주인공이 지하철역에서 만난, 이 시대에는 무척이나 드문 “아이 엄마”가 1인 시위를 하는 모습이 특히 그렇다.

“국가의 뜻에 따라 검사를 받았습니다. 법이니까요. 합격 통보를 받았습니다. 행운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고민할 틈도 없이 엄마가 되었습니다. 혜택도 받았습니다. 그러나 나는 행복하지 않습니다. 행복해야 하는 엄마이지만 그 모든 과정에서 내 자유가 빠져 있었으니까요. 아이를 사랑합니다. 하지만 이 아이를 자유 없는 세상에서 키우고 싶지는 않습니다.”

소설 외적으로, 현실에서 충분히 몇 년간 숙고하고 선택한 결혼과 임신도 몸과 생활에 이런저런 타격과 상흔을 입힌다. 충분히 숙고할 틈 없이 다들 하는 거니까, 그렇게 등 떠밀려 결혼하고 임신한 경우는 더할것이다. 이 소설 속 세계에서는 현실과 달리, 아이를 낳으면 국가가 금전적으로도, 생활 면에서도 정말 많은 혜택을 제공하지만, 이 아이 엄마는 “행복하지 않다”고 말한다. 그리고 사람들은 그런 아이 엄마를 비난한다. 네 엄마가 자유와 인권 생각하고 너를 낳았느냐며 “낳기 전에 충분히 생각했어야지”하고 아이 엄마에게 폭언을 하고 때리려 하는 남성 노인의 모습은, 현실에서도 “낳았으니 네가 책임져라”, “자기가 좋아서 낳아 놓고서 왜 국가에 요구하느냐”는 현실 사람들(특히 남성 중장년 이상)의 명확한 반영이다.

충분한 선택의 시간도 주지 않은 채 당사자가 아닌 이들이 등 떠밀어 우격다짐으로 선택하게 하고, 그 선택의 결과에 대해서는 당사자에게만 책임을 전가하며 손 놓아버리는, 그런 이들에 담담하게 동의하지 않는 이야기. 주인공은 대놓고 반대를 하고 피켓을 들고 거리로 나가지는 않는다. 하지만 주인공은 자신의 인생으로 차분하게 “나는 반대한다”고 말할 수 있는 일들을 해 나간다.

약간 뒷이야기가 궁금한 부분도 있다. 주인공도 주인공과 만난 등급 맞는 상대도, 사실은 이런 일이 온당치 못하다고 느끼지만 쿠폰과 낡은 운동화 등으로 상징되는 넉넉치 않은 환경 때문에 일단 만남을 갖게 된다. 그렇다면 경제적으로 부유한 계층은 설령 정자, 난자가 등급이 높더라도 이 모든 비인간적인 일을 거부하는가? 자신의 유전자를 이어받은 아이에게 상속을 하고 싶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저 시대에도 여전히 있을 텐데, 그런 부분은 어떻게 될까? 출산이 십대 때에만 가능하고, 그나마도 난자와 정자의 등급이 계속 변동하므로 굉장히 기회가 적으며, 전체의 10% 정도만이 출산 가능한 등급을 받는다고 하는데, 이런 상황에서는 입양을 하고 싶어도 공급은 제한되고 수요는 많으니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건 아닐까? 이야기의 여운과 별도로 이 세계관에 대해 좀 더 알고 싶었다. 한참을 곱씹으며 이 세계에서 벌어질 수 있는 일들을 생각했다. 아주 많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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