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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매일 직장상사의 도시락을 싼다 – 유즈키 아사코, 권남희, 이봄

나는 매일 직장상사의 도시락을 싼다
나는 매일 직장상사의 도시락을 싼다

처음에는 제목을 보고 좀 긴장했었다. 직장상사의 도시락을 싼다니, 제목만 읽어도 악덕 상사에게 착취당하는 이야기가 떠올라서. 물론 그렇게 예상 그대로였다면 이 책이 팔릴 리가 없었겠지. 애인과 헤어지고 우울해하던 파견사원 미치코는, 일주일동안 과장인 구로카와 아쓰코, 통칭 앗코짱의 명령으로 일주일동안 도시락을 싸다 주고, 대신 일주일동안 앗코짱이 지정하는 가게에 가서 점심을 먹게 된다. 적은 월급, 한정된 식비, 여유라고는 없는 20대였던 미치코의 세계는 이 일주일간 점심을 먹으로 나가는 활동을 통해 조금 더 넓어진다. 20년 가까이 회사에서 열심히 일해 자리를 잡은 여자가, 젊었을 때의 자신을 떠올리게 하는 젊은 여자에게 기회를 주는 이야기인데 매개가 점심 식사로구나… 하고 생각하는데, 다음 챕터에서 이번에는 다니던 회사가 망해버린다(!!!!!!). 파견인 미치코는 다른 회사로 옮기고, 앗코짱은 새로운 사업을 시작한다. 여전히 앗코짱은 사람들을 만나고, 미치코의 세계를 조금 더 넓혀준다.

20대에 먹고살기 힘들고, 월급은 적고, 새로운 것을 경험해 보고 싶어도 어쩐지 무섭고, 나 혼자 촌뜨기일 것 같고, 생각보다 비쌀 것 같고, 그래서 시도하지 못하고. 그런 것들을 기억한다. 어떻게든 비집고 들어가며 문화생활 쪽으론로는 경험들을 쌓아갔지만, 식생활을 바꿔 가는 것은 훨씬 더 어려웠다. 편의점에서도 파는 흔하디 흔한 하겐다즈를, 어쩐지 비쌀 것 같아서 감히 사먹을 생각조차 하지 못했던 적도 있다. (실제로는 배스킨라빈스와 용량대비 가격이 비슷하다. 게다가 이쪽은 세일이나 2+1도 종종 하고 있고.) 그래서 내가 아는 나보다 어린 친구들을, 종종 내가 경험했던 곳들에 데려가곤 했다. 조금 비싼 음식점이나 티룸, 이태원의 에스닉한 음식들을 파는 곳들. 그런 것들이, 사는 데 꼭 필요하진 않은데, 그 사람의 세계를 얼마만큼 넓혀주는지 아니까. 앗코짱은 두 이야기에 걸쳐, 음식을 매개로 미치코의 세계를 넓혀준다.

뒤의 두 단편은 앗코짱이 지나가면서 잠깐 나오긴 하지만,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다. 미치코와 비슷한 나이의, 옥상 비어가든을 만드는 젊은 여자의 이야기라든가, 혹은 20대 후반 여성이 우연히 길에서 모교의 학생주임이 자기 후배를 추격하는 것을 돕다가, 예전에 자신이 문집에서 보고 베껴서 냈던 과제를 이 학생이 다시 베껴서 냈다는 것을 알게 되는 이야기라든가. 이 와중에 먹어서 응원하자는 논리로 홍보가 안 되는 도호쿠 지방 특산물들을 비어 가든의 안주로 내는 대목에서 “저거 먹어도 되나”라는 생각이 들긴 했지만(……) 그렇게 눈에 걸리는 대목들을 제외하면 무난하고 무해한 여자들 이야기. 다만 이 무기질적인 무해함이 내 취향과는 거리가 멀어, 읽고 썩 개운한 맛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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