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딩씨 마을의 꿈 – 옌롄커, 김태성, 자음과 모음

딩씨마을의 꿈
딩씨마을의 꿈

읽는 내내 마술적 리얼리즘에 대해 생각했다. 마술적 리얼리즘을 가장 능수능란하게 썼던 이사벨 아옌데의 작품 속의 칠레들을 떠올리고, 다시 이 소설 속에 구현된 현대 중국과, 그 배경에서 살아가는 “노인”의 꿈으로 대변되는 많은 부분들을 연결짓는다. 생각해보니 애초에 이 죽어가는 사람들을 다루는 이 이야기에서, 화자는 열두 살에 마을 사람들에게 살해당한 손자요, 이야기 속 실제 시선은 마을에서 선생님이라 볼리는 그 할아버지다. 그리고 실제로 “이익을 위해서라면 국민의 고혈을 빠는 정부”의 대유로서 이 마을에 비극을 몰고 오는 인물은 그 손자의 아버지이자, 할아버지의 장남이다. 또한 할아버지의 차남은 에이즈에 감염된 채로도 자기가 죽은 뒤에 자기 부인이 재가하지 말아야 한다고 말하고, 그러면서도 에이즈에 걸린 사촌제수와 동침하거나, 모두가 똑같이 내야 하는 식량 주머니에 무게를 속이려 돌덩이를 집어넣는 등 “평범한 사람의 악행”을 저지른다. 이야기는 실제 사건, 즉 지난 2000년 중국 허난성의 한 마을에서 주민의 80%가 에이즈 바이러스에 양성 반응을 보인 에이즈 마을 사건을 변주하며, 죽은 민중과 침묵하는 지식인, 그리고 그 지식인의 입을 틀어막는 정부와, 혼란의 시대에 자기 잇속을 차리는 평범한 악인들의 모습을 마술적 리얼리즘을 이용하여 보여주고 있다.

딩씨 마을로 통하는 길은 십 년 전 딩씨 마을 사람들이 피를 팔아 닦은 시멘트 길이었다. 할아버지는 그 길가에 서서 딩씨 마을을 바라보고 있었다. (중략) 십 년 전 피를 팔았던 사람들은 지금 틀림없이 열병에 걸려 있을 것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열병에 걸리면 반드시 죽게 될 것이다. 나뭇잎이 바람에 날리는 것처럼 가버릴 것이다.

시작부터 이야기는, 이 마을에 닥친 비극을 설명한다.

딩씨 마을에 엄청난 일이 일어났다. 인구가 다 합쳐서 팔백 명도 안 되고, 전체 가구가 이백 호도 안 되는 작은 마을에서 이 년도 채 안 되는 기간 동안 마흔 명이 넘는 사람들이 죽어나간 것이다. 계산해보니 이 기간 동안 딩씨 마을에서는 열흘 내지 보름 간격으로 한 사람씩 죽어나간 셈이었다.

열병이라 불리던 괴질이 에이즈라는 것, 걸리면 죽으며, 이것이 매혈소에서 이미 사용한 바늘을 여러 명에게 재사용하는 과정에서 벌어진 일이라는 것이 드러났지만, “정부”를 대변하는 딩후이는 반성하지 않는다. 그는 정부가 매혈을 장려하자 발빠르게 매혈소를 차리고 사람들의 피를 팔아 삼층짜리 집을 지었고, 사람들이 죽자 정부에서 감염자 한 명당 하나씩 지급하기로 되어 있는 검은 관을 돈을 받고 팔았다. 나중에는 결혼하지 못하고 젊은 나이에 죽은 사람들의 영혼 결혼식을 주관하며 수수료를 긁어모았으며, 당에서도 높은 지위에 오른다. 그는 반성을 요구하는 아버지를 윽박지른다.

그 아버지, 즉 이미 죽은 화자의 관점에서는 “할아버지”인 딩수이양은 문약하지만 양심은 있는 지식인이었다. 그는 당에서 피를 뽑는 게 건강에 지장이 없다고 설명하라고 하자 냇물을 예를 들어 설명한 것, 그리고 아들이 저지른 일에 대해 아들을 대신하여 사죄한다. 하지만 구시대의 질서에서는 노인으로서 존경받던 그는, 어리석고 이기적인 차남이 제 사촌제수와 불륜을 저지르며 마을의 권력에서 밀려난다. 하지만 그 권력을 빼앗은 청년들은 관을 만들기 위해 나무를 베도록 허락하거나, 학교의 기물을 사람 숫자대로 나눠주는 등 눈 앞의 일만 생각하다가 마을을 민둥산으로 만들어버리고 만다.

이 병을 팅팅의 몸에 옮겨서 재가를 할 수 없게 만들 수만 있다면 전 죽어서도 마음을 놓을 수 있을 것 같아요.

문자 그대로 한 마을이 아노미에 빠진 상황에서, 사람들은 혼란의 시기를 틈타 더욱 이기적으로 행동한다. 그리고 이런 상황에서 여자들이 겪는 비극들은 짧지만 더 선명하다. 병에 걸린 남편은 그래도 가족들의 보살핌을 받는 반면, 병에 걸린 아내는 남편이나 가족들의 보살핌을 받지 못한 채 집에서 쫓겨난다. 병에 걸린 남편은 자기 아내가 자기가 죽은 뒤 재가할 것을 생각하고 질투하며 아내에게 병을 감염시키고 싶어한다. (자식도 있는데도) 환자의 가족들에게 감염되는 일을 막아보려 학교에 환자들을 모았더니, 어느새 밥 짓는 일은 같은 환자인데도 여자에게 떠넘겨져 있었다. “내가 매일 아침 날이 밝기 무섭게 일어나 당신들에게 밥을 지어 먹이면 당신들은 배 터지게 먹고 나서 밥그릇을 내려놓고 그냥 가버렸지. 내가 뭐 때문에 솥을 씻고 설거지를 해야 하는 거지? 내가 왜 우물에 가서 물을 길어다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먹을 밥을 하고 마실 물을 끓여야 하느냐 말이야? 게다가 당신들은 내가 길어 온 물을 아껴 쓸 줄도 모르고 밥그릇 하나 씻는 데 물을 반 대야나 허비했지.” 하고 절규하는 장면도 있었다. 병에 걸린 남자가, 병에 걸리지 않은 이웃 마을 처녀(그것도 스무 살도 되지 않고 교육도 잘 받은 / 지금 이 이야기의 배경은 지금처럼 억제제들이 잘 나온 시대가 아니다. 약이 없고 걸리면 죽으며 병이 성관계로 감염되는 것을 모두가 알고 있는 상황이다.)와 결혼하기 위해 마을 사람들과 함께 거짓말을 하면서도 죄책감을 느끼기는 커녕, 자손을 남길 수 있다고 안심한다. 한 마을이 문자 그대로 멸망할 것 같은 상황 속에서도 더욱 천대받는 이가 누구인지 선명하게 보이는 장면들은, 하나하나가 짧지만 괴롭다.

마침내 최후에, 평범한 악인이나마 차남은 병으로 죽고, 죽은 손자인 화자는 비명을 지르고, 그 비명에 응답하며 마을의 지식인인 할아버지는 정부의 대변인인 장남에게 덤벼든다. 그리고 할아버지가 심문을 마치고 돌아왔을 때, 마을에는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았다. 사람들은 모두 죽거나 떠났고, 숲은 민둥산이 되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할아버지는 그 폐허가 된 마을 위에서 여신 여와가 버드나무가지에 진흙을 묻혀 인간을 만드는 꿈을 꾼다. 작가는 설령 문약할지언정 지식인의 양심을 믿는 듯이, 그렇게 할아버지의 꿈을 통해 비극의 전말을 드러내고, 마지막에는 폐허 위에 희망을 남긴다. 마술적 사실주의라는 탁월한 도구를 사용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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