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넷플릭스에 에반게리온 TV판이 들어왔다는 소식을 듣고, 트위터에서 아직 한 번도 에반게리온을 본 적 없던 사람들이 TV판을 정주행하다가 예상되는 지점에서 정확히 비명을 질러대는 것을 목격하던 날 이 책을 읽었다. 안전가옥에서 작가가 스토리 PD와 함께 만들어 공개하는 첫 장편소설인 이 이야기는, 여러 면에서 그 에반게리온과 닮은 이야기라 읽으면서도 이 묘한 타이밍에 쓴웃음을 짓곤 했다.
“이 젤리를 먹으면 헤어지지 않는다”는 말과 함께 젤리를 나누어주는 기묘한 젤리 장수(에반게리온의 AT 필드), 테마파크라는 한정된 배경(여름이 끝나지 않는 제 3 도쿄시), 달콤한 위안과 갑작스레 그 일을 당하는 사람의 공포, 그리고 물풍선이 터지듯 철벅이는 소리와 함께 젤리가 되어 녹아 하나가 되는 사람들까지. 이 이야기는 인류보완계획이라는, 에반게리온 속 사건을 연상하게 한다. 그리고 저마다의 사연을 지닌 인물들의 군상극이 이어지고, 첫 이야기에서 살아남은 아이는 마지막 이야기에서 다시 모든 것을 마무리하듯 자신의 선택으로 녹아버리기를 택한다.
앞편의 인물이 뒷편의 인물과 계속 도미노처럼 이어져, 중간에 읽기를 중단하기가 쉽지 않았다. 끈적하게 뒷맛이 나쁜 호러를 읽으며, 올 여름이 가기 전에 에반게리온을, 넷플릭스 용으로 리마스터된 판으로 다시 봐야지. 화질이 역대 최고라는데, 하고 문득 생각했다. 읽는 내내, 사랑하는 사람의 환영을 보며 LCL로 녹아버린 다른 사람들 말고, 마지막에 레이의 환영을 보고 공포에 질린 채 LCL로 녹아버리던 아오바 시게루의 얼굴이 떠올랐다. 맞다. 딱 20년 전 엔드 오브 에반게리온을 보던 바로 그 느낌의 세련된 버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