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어서 환장속으로 – 곽민지 저, 달

걸어서 환장 속으로
걸어서 환장 속으로
걸어서 환장 속으로

트위터에서 제목을 듣자마자 설마설마 했는데, 바로 예상한 그 내용이어서 웃었던 책.

간단히로 요약하면 이렇다. 방송 일을 하는 딸은 여러 번 외국에 나갔다. 엄마 아빠가 가보고 싶었던 스페인을 “꽃보다 할배” 방송으로 보면서 뒤에서 여기저기 가 본 이야기를 떠들었다.

어르신 모시고 다니면서 개고생하는 짐꾼이 바로 미래의 자신의 모습이었다는 것은 꿈에도 상상하지 못한 채.

그리고 그 딸은, 부모님께 패키지 여행을 보내드리려고 했다가 끝에 실수로 몇자 잘못 적은 약관 덕분에 부모님을 모시고 자유여행을 떠나는 신세가 되었는데…..

자유여행을 부모님과 가고 싶다면 여러분이 꼭 알아야 할 점 몇 가지를 밝혀둡니다. 일단 결론 먼저 이야기하고 뒷얘기를 이어가보겠습니다. 빠밤. 내 부모님도 그냥 아줌마 아저씨입니다. 이 모든 여정을 안전하고 행복하게 마치려면, 자기 부모님을 객관적으로, 상당히 먼발치에서 보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제 친구는 이것을 결혼식과 같다고 했습니다. “우리 엄마 아빠는 다 예외일 줄 알았거든? 근데 새로운 면 많이 봤어. 그냥 모르는 아줌마 아저씨더라. ‘아저씨/아줌마, 이러지 좀 마시죠’ 소리 나올 일은 나서서 미리 선을 그어줘야 모두가 행복하거든” 하면서요. 자유여행에서도 그렇습니다. 사랑만 가지고는 아무것도 못합니다.

제목부터 “걸어서 세상 속으로”의 패러디인 이 책에서 한 문단만 건지라면 바로 저 문단이다. 작가는 부모님을 모시고 난데없이 스페인 여행을 가느라 그야말로 개고생의 길을 걷는다. 게다가 부모님의 여행 기준은 패키지 여행에 맞춰져 있고, 이분들이 말하는 아무거나는 패키지여행 급 숙소에 중간에 한식이 있어야 하며 적어도 1일 2관광지+맛집이 있어야지 한가하게 빈둥거리거나 밥 굶어가며 박물관에 가는 그런 게 아니다. 게다가 변수가 있어도 곤란하고. 도입부부터 으아아아, 이건 작가님이 잘못했네, 를 몇 번 외쳤는지 모른다. 부모님 모시고 1박 2일 국내여행만 다녀와도 환장할 일이 한두가지가 아닌데 스페인이라니.

내가 부모님을 모시고 해외여행을 갈 일이 있을까? 일단 성격이 안 맞고, 몇 번인가 내가 성질을 죽이고 모시고 갈 테니 가자고 꼬드겨 봤지만 국내여행 아니면 안 가신단다. 내가 끌고가면 밥 굶어가며 박물관이나 갈 게 뻔하다고(……) 그렇긴 하지만, 전에 엄마와 여러 곳을 다녀왔습니다 같은, 노부모를 모시고 여행을 가는 류의 에세이 만화는 부모님을 모시고 여행을 갈 때만 필요한 게 아니다. 이젠 우리도 몸이 예전같지 않으니 계획을 짤 때 참고할 수 있다는 거지. 그런 점에서 읽으면서, 꽤 유용한 팁이 많이 보였다. 이를테면 에어비앤비의 장점 중에 생각지도 못한 게 있엇다.

이건 살짝 뭉클하면서도 짠한 이야기인데, 전업주부 어머니들은 뭔가 싸게 해 먹는 데에서 굉장한 희열을 느끼실 때가 있습니다.

그럴 수도 있겠네, 진짜.

게다가 꼭 부모님이 아니더라도, 상사를 모시고 어딜 가야 할 때 참고할 만한 이야기가 많다는 것도 이 책의 장점이다. 즉, 평소에 가이드가 될 일 없는 우리가 갑자기 가이드 노릇을 해야 할 때 참고할 수 있다는 말이다.

우리가 이용할 교통수단에서 얼마나 걸리는지 확인하는 건 기본이고요. 만약 그게 지하철인 경우 숙소 근처 출구에 엘리베이터는 있는지, 숙소 자체에는 엘리베이터가 있는지 등을 미리 문의한 후 예약하시길 추천드려요. (중략) 패키지여행에서 주는 식사 내지는 한국에서 한국인 입맛에 맞춘 요리가 부모님이 경험하신 폭이라고 생각하셔야 합니다. (중략) 이쯤에서 부모님과 외항사 비행기를 탄 가이드 자식들이 해야 할 일이 있다. 타자마자 앞에 놓인 리플릿에 있는 요리를 확인한다. 아니면 저멀리에서 승무원이 사람들에게 묻는 걸 쳐다보면서 “닭 요리, 소고기 요리에서 선택하는구나”를 파악한다. 빨리 엄마 아빠에게 어느 걸 원하는지 물어보고, 원하는 음료 주문도 내가 미리 받아둔다.

그래도 읽고 있노라면 “아이고, 작가님이 무덤을 파셨네” 하고 낄낄 웃는 가운데 군데군데 뭉클해지는 대목들이 있다. 엄마 아빠가 스페인에서 어떤 걸 드시고 싶어할 지 파악하기 위해 여행 프로를 틀고 리액션을 구경하는 딸, 엄마는 외국 사는 아줌마 집에 초대받아서 그 집에서 차 한 잔 마셔보는 게 소원이었는데, 그런 일은 엄마에게 일어나지 않을 줄 알았다면 기뻐하는 엄마, 여권과 함께 돈까지 잃어버려 놓고도 엄마를 속상하게 하지 않기 위해 그냥 돈 이야기는 입을 다물고 마는 아빠. 어떤 꿈은 이루어지고 나서야 그런 꿈이 있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는 이야기들.

문득 더 늦기 전에 엄마와 여행을 가고 싶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올해 초에도 이야기했지만 싫다고 하셨으니, 아마 안 되겠지. 그냥, 나와 함께 나이들어가면서 내가 사랑하고 나를 존중하는 사람들과 함께, 조금 실수도 많고 시끌벅적하면서 소소한 로망들을 이룰 수 있는 이런 여행들을 떠나고 싶다고 생각했다.배우자, 친한 친구, 그런 사람들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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