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공업 가족의 유토피아 – 양승훈, 오월의봄

중공업 가족의 유토피아

남자들에게 정말로 가족 같은 관계는 회사 조직이다. 그들에게 회사는 일뿐 아니라 삶, 즉 전부이다.

“중공업시대의 유토피아”는 이북으로 읽기에는 조금 묵직한 책이었다. 한편으로 이북이라서 기록하기 편한 것도 있었다. 메모를 남겨 놓으면 이북 사이트에서 한번에 체크할 수 있으니까. (페이지 번호까지 저장되면 좀 좋을까.) 여튼 이 책을 읽으며 1980년대, 90년대 초반의 뉴스 기사들과 사회 교과서에서 본 내용들을 떠올렸다. 금탑산업훈장이라든가, 중공업이라든가, 조선업 같은 것들. 그러고 보니 고등학교 동창이 예전에 거제도에 있는 조선소 쪽에서 일한 적이 있었다. 엔지니어가 아니라 사무직으로서. (지금은 수도권에 돌아와 있다)

태극기가 올림픽 시상대에 올라가는 장면과 삼성전자가 매출과 영업이익 신기록을 세우며 스마트폰, 메모리 반도체 부문 세계 1위에 등극하는 장면을 중첩해 보는 사람도 적지 않다. 산업화 경제 시대를 살아온 세대들의 자연스러운 반응이라고 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 산업화를 자랑스러워하던 것은 내가 국민학교 고학년에서 중학교로 넘어갈 때의 일. 하지만 90년대에 접어들며 이전과는 새로운 분위기들이 사회를 뒤덮었다. 대학생들이 주인공인 트렌디 드라마들이 계속 쏟아져 나오던 것도 그 무렵이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아마도 그 전에는 대학생이 그만큼 많지도, 여자가 대학에 가지도 못했으며, 갔다 한들 캠퍼스의 낭만을 누리지 못했다는 이야기였을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내가 고등학교를 졸업하던 바로 그 무렵, IMF 시대가 시작되었다. 사회에 나오기 전부터 희망퇴직이라든가. 기업의 도산, 감자, 구조조정, 그런 이야기들을 들었다. 중산층의 상징인, 아빠가 나가서 돈을 벌어오고 엄마가 육아와 가사를 도맡는 남성 생계부양자 모델 형 정상가족인 4인 핵가족은, 그 시대를 끝으로 붕괴하기 시작했다고 알고 있었다.

조선소 사람들도 마찬가지다. 거제도에서 전문적인 직업인이자, 돈 잘 버는 직장인으로 대접을 받기 때문에 작업복을 더욱 자랑스러워하는 것이다.3

하지만 중공업 중심의 산업도시는 달랐다. 이들은 오랫동안 이 가족 모델을 유지해 왔다. 제조업의 수입이 좋아서였을 수도 있고, 여자의 일자리가 없어서였을 수도 있다. 마치 군사도시에서 직업군인들은 퇴근을 하고도 군복을 입고 다니듯이, 이곳에서는 인사담당자도 임원도 용접공 신입사원도 작업복을 마치 신분의 상징처럼 자랑스럽게 입고 있다. 미혼인 직원들은 소개팅 자리에도 작업복을 입고 간다. “나가면 다 우리 식구고 얼마나 좋냐”는 말처럼, 그 작업복은 공동체의 상징이다. 공대를 나온 사람들에게는 매력적인 일자리였던 견실한 고액연봉 회사, 이주민들의 도시, 그 도시를 만들고 문화를 유지한 기반은 조선업과 그 조선업을 바탕으로 한 연대의 공동체인 “중공업 가족”이다. 마치 “또 하나의 가족”이라는 말처럼, 작업복으로 상징되는 이 공동체는 혈연관계 뿐 아니라 기업 자체를 묶는 끈이 된다.

대우조선이 운영하는 대우초등학교, 거제중학교, 거제고등학교 학생들은 매일 아빠와 똑같은 식단으로 식사한다. 웰리브라는 자회사가 야드와 학교에 동시에 급식을 제공하기 때문이다.

거제는 국가와 국내 대자본의 힘으로 조성된 도시다. 한진이나 현대가 아닌, 제당산업과 모직산업을 영위하던 삼성과 종합상사 기업 대우가 참여했다는 것도 특기할 점이다. 이들은 이곳에 대우조선과 삼성중공업을 중심으로 조선사업만을 위한 도시를 만들어낸다. 이 두 회사와 인근에서 기자재와 블록을 제작하는 광공업에 종사하는 사람이 거제시 취업자의 절반, 여기에 관련 전문가들을 합치면 2/3이 이에 해당한다. 그야말로 거제는 조선사업으로 먹고 사는 도시가 된 것이다. 조선산업의 패권을 장악한 국가들은 최소 한 가지의 강점을 가지고 있었는데, 한국의 경우는 저임금과 기술력이었다. 블록의 대형화와 모듈화를 달성하고, 옥외 작업장에서 이루어지던 선행작업들을 실내로 가져온데다, 자동화와 기계화를 달성했다. 생산효율이 올라간데다, 일본이 1980년대 이후 지방 근무를 기피하는 대학생들이 조선소에 가지 않으려 하면서 선박 설계 대신 표준 선박을 생산하는 식으로 변화하며, 고부가가치선을 수주할 수 있게 되었다. 이와 같은 과정을 통해 거제는 부유한 도시, 소위 “개가 만원짜리를 물고 다닌다”는 도시가 된다.

서울은 1위가 아니다. 1위는 울산으로 5만 1,000달러였다. 1년에 5,000만 원을 버니 서울보다 1,000만 원가량을 더 버는 셈이다. 그리고 우리 책의 주인공인 거제는 그보다 6년 전인 2010년에 이미 4,146만 원을 벌어들이고 있었다.

그런데다 거제는 노동운동의 도시이기도 했다. 1987년 8월 10일, 대우조선에 초대 노동조합 집행부가 결성되었으며, 이 대우조선의 민주노조 운동은 1987년 8~10월에 걸쳐 일어난 노동자대투쟁에 커다란 비중을 차지했고, 향후 금속노조에서도 상당한 역할을 맡게 된다. (당시 노동조합 담당 변호사는 16대 대통령 노무현이었고, 진상규명위원회의 변호사는 19대 대통령 문재인이었다.) 하지만 한편으로 이 “중공업 가족”에는, 하청노동자들은 배제되고 박탈되어 있다. 이들은 주말에도 출근해야 하고, 힘들고 긴급한 돌관 작업에 투입된다. 임금 격차가 크고, 이는 문화적 격차로 이어지기에 이른다.

이른바 ‘카스트’를 작업장 내에서 일상적으로 체험하게 되는 것이다.

한때 이곳은 서울보다 부유한 도시였다. 근속연수도 산업도시가 훨씬 길었다. 서울을 택하지 않고도 산업도시에서 높은 임금과 안정적인 고용 상태를 유지하면서 살 수 있었던 시절이 있었다. 그러나 2010년대를 거치며 산업도시는 “상위 10% 귀족노조”로 프레이밍 되고, 비난의 대상이 된다. 그리고 조선사업의 위기는 한 가족처럼 엮여 있던 노동자 공동체의 붕괴로 이어진다. 이를 딸의 시선으로 따라가면, 중공업 가족들의 모순점이 보인다. 아들과 달리 딸은 최대한 집과 가까운 권역으로 진학시키고, 멀리 가봐야 영남을 벗어나지 않는 교대, 사대를 지망하게 한다. 이곳에서 여성이 할 수 있는 일은 자영업을 제외하면 공무원, 교사, 의사, 간호사 정도가 전부며, 고등교육을 받은 여성의 일자리는 턱없이 부족하다. 영화 “땐뽀걸즈”의 소녀들은 어차피 조선소 취업이 정해진 상황에서 남은 학창시절을 즐겁게 보내기 위해 댄스 동아리에 든다. 그것은 이후 조선소 계약직 사무원이 되었다가 결혼하며 그만두고 각자의 이름으로 살기 어려울 이들의 “마지막 추억”같은 것이다.

시대는 변했고, 본사나 서울에서 온 사무직이나 엔지니어들은 가족을 데려와 거제에 정착하는 대신 주말부부를 선택한다. 아들은 생산직, 딸은 사무보조직으로 대학 진학이 중요하지 않은 이 지역의 학군은 학부모에게 달갑지 않으며, “거리에 나가면 다 우리 식구들”인 이곳의 중공업 가족 중심의 사고방식은 개인주의자로 자란 청년들에게는 맞지 않는다.

‘중공업 가족 프로젝트’는 애초에 배제와 포섭을 전제로 한 프로젝트였다. 이 프로젝트는 거제로 이주한 정규직(사무직/생산직)들이 회사 공동체의 이름으로 가족을 형성함으로써 타향살이의 외로움을 극복하고, 결혼과 출산을 통해 직계가족을 구성하면서 절정에 이르렀다. 하지만 중공업 가족은 하청 노동자들을 배제했고, 여성들과 딸들의 공간을 결혼 생활의 영역에 한정 지었다. 무엇보다도 중공업 가족은 그들과 전혀 다른 세계관을 가진 젊은 세대들에게 그 약점을 남김없이 드러냈다.

유능한 동료라고 생각했던 사람들의 이탈은 토박이들에게 지방 회사에 다닌다는 열등감을 불러일으켰다. 위험의 외주화를 통해 정규직이 아닌 뜨내기 하청인력들이 돌관작업에 투입되며 조선소의 질서가 사라지고, 일의 체계가 무너졌다. 선박 수주 대신 해양 플랜트 작업을 수주하자 그에 따른 문제들도 불거진다. 선박의 대금 결제 방식은 공장과 노동자에게 불리한 방식이 되었고, 위기는 중첩하여 몰려오고 있다. 하지만 이곳의 기술자들은 자신의 숙련된 기술과 연계되는 산업 일자리를 찾지 못하고 아예 자영업으로 전환할 수 밖에 없는 경우도 많다. 게다가 중국 및 동남아시아의 조선소들과의 경쟁도 점점 심화되고 있다. 이 책은 생산직과 엔지니어, 혹은 조선소와 인력 중 하나만 지켜야 한다면 어떨까, 이런 극단적인 질문을 통해 “말뫼의 눈물”을 흘렸던 북유럽의 방식과, 표준선 및 의장 자동화를 통해 문제를 극복한 일본의 방식을 제시한다. 고숙련 고학력 설계 엔지니어의 보호와, 젠더 의식 향상도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구체적 해결책 없는 낙관은 군산조선소 폐쇄와 같은 불행을 낳을 뿐이지만, 이 책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거제는 아직 젊은 도시이며, 극복의 가능성이 있음을 시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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