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린이날과 곧 다가오는 우리집 어린이의 봄소풍 예행연습을 위해 김밥을 쌌다. 그런 것을 김밥으로 불러도 좋은지는 모르겠으나 여튼 김 한 겹 안에 밥이 얇게 깔리고 재료들이 들어간 수상한 무언가가 만들어졌고, 비주얼과 상관없이 아이는 맛있다고 먹었으니 된 것 같다. 다만 이 와중에 외계인을 말아놓은 것 같은 김밥을 바라보며 봄소풍 날 미세먼지 수치가 높길 바라는 건(미세먼지 수치가 올라가면 소풍이 취소된다……!!!!!) 내가 나쁜 사람인 거겠지.
어쨌든 요리책을 본다고 요리를 만들 수 없다는 건 분명하고, 그 와중에 (분명히 꽤 요리를 잘 하신다고 들었는데…..) 먹고 죽지 않을 요리를 만들고 싶었던 것 뿐이라는 줄리언 반스의 “또 이따위 레시피라니”를 읽었다. 물론 영국인이 “내가 그걸 잘 못하는데”하고 자학개그를 치는 건 자기가 그걸 꽤 잘 할 때의 일이라고 여기저기서 듣긴 했는데, 이걸 보면서도 같은 생각을 했다. 역시. 아니, 자기가 요리 망친 이야기들을 하고 있고, 또 요리책의 레시피를 보면서 고뇌하는 이야기들이 아주 절절하긴 한데, 뭔가 요리의 레벨이 다르다. 아마 줄리언 반스는 레시피와 재료와 완성 사진이 있으면 평생 김밥을 먹어 왔지만 이따위 물건밖에 못 만드는 나보다는 훨씬 더 김밥을 잘 만들 거다. 그리고 이 아저씨, 자신이 주방일 하는 배운 남자라는 것에 너무 도취된 것 같단 말이지. 심지어는 자신을 “요리하는 현학자”로, 자기 아내를 “현학자가 요리해주는 그녀”라고 표현하고 있다고. 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그렇게 낄낄 웃을 무렵 이웃 사람이 1파운드 설탕을 넣어야 하는 자리에 1파운드 무게의 다른 것이 들어 있던 병에 설탕을 채워 넣는 이야기를 읽으며 내적비명을 질렀다. 아니, 잠깐만요. 무게와 부피의 문제라고 그건.
그리고 주스기가 없는데 주스 책을 산 이야기를 보며 좀 죽고싶어졌다. 아니, 다들 알잖아요. 누가 김치를 담글 줄 알아서 김치 백 가지가 들어 있는 책을 사겠어. 내 주변에는 집에 오븐이 없지만 케이크 굽는 법에 대한 책을 두 손으로 못 들 만큼 갖고 있는 사람도 있고. 우리 집에도 초콜릿에 대한 책이 몇 권이나 있지만 난 템퍼링도 할 줄 몰라요. 모두 알잖아요. 그건 주스를 만들기 위해서가 아니라 책을 산 거고 자꾸 그 이야기를 해서 공감성 수치를 자극하는 이유가 뭐냔 말입니까 ㅋㅋㅋㅋㅋㅋㅋ 아, 고통스러워. 당연히, 그건 보기 위한 요리책이잖아요 ㅋㅋㅋㅋㅋㅋㅋ 왜 이걸로 만국의 독자들을 괴롭혀 ㅋㅋㅋㅋㅋㅋㅋㅋ
“그런 스크랩북은 오랜 세월과 함께 우리의 이상한 요리 역정에 증인이 되어줄 것이다”
물론 요리의 레벨이 다른 사람이라고 해도, 남이 요리 망치는 이야기는 늘 즐겁다. 이를테면 작가가 사슴고기를 사려고 했다가 다람쥐 고기를 산 이야기라든가. 가게에서 “자르지 않으면 아무래도 다분히 다람쥐처럼 보일 것”이라고 해서 잘라달라고 했는데, 막상 도착한 다람쥐는 껍질만 벗긴 상태여서 요리할 수 없었다거나. 또 “초콜릿 네메시스”(검색해보니 다크초콜릿 케이크 같다)라는 말과 함께 디저트 망친 이야기를 읽고 있으려니 “초콜릿이 망금술사에게 복수를 하러 왔나?”하는 생각이 들지 않나. 작가가 오스트레일리아에서 가즈오 이시구로와 함께 참석한 문학 만찬에서 캥거루를 먹으며 “나는 언제나 그 나라의 상징을 먹는 걸 좋아하지.”라고 하자 다른 시인이 “영국에선 사자라도 먹는다는 건가?”라고 물었다는 이야기에서는 국조를 잡아먹는 프랑스(프랑스의 국조가 닭입니다. 앙리 3세가 프랑스 사람들은 한 주에 한 번은 닭을 먹을 만큼 나라를 부강하게 하겠다고 말했다는 이야기가 “먼나라 이웃나라” 프랑스 편에 실려 있었는데)가 떠올랐고요. 아아아.
게다가 영국요리 이게 뭐야 싶은, 좀 놀라운 이야기들도 있었다. 이를테면 그 시대 소설책에 종종 배경처럼 언급되는 비턴 여사의 요리책 말이다. 그 비턴 여사는 고작 스물 여덟 살에 죽었고, 출판사가 그녀가 죽은 뒤에 저작권을 사들인 뒤 계속, 분량을 추가해 가며(비턴 여사가 죽은 직후에 나온 책에는 남편의 추모사가 실려 있었는데 그건 날려버리고) 개정판을 내어 분량이 엄청나게 늘어났다는 이야기라든가. 비트는 17세기에 영국에 전해졌을 때는 달콤하게 먹었고 비스킷에도 넣었는데(……) “이것은 자연발생적으로 아주 단 채소이므로 아주 시게 만들자”는 금욕주의가 발동했다거나 하는 이야기들 말이다.
근데 여기 나오는 그, “현학자가 해주는 그녀”, 즉 아내는 그 “사랑은 그렇게 끝나지 않는다”에 나오던 문학 에이전트인 팻 캐바나인가. 혹시나 해서 이 수필집이 원래 언제 나왔나 찾아보았다. 번역은 최근에 되었지만, 원래 나왔던 건 2003년의 일이라고 한다. 그랬겠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