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이웃의 식탁 – 구병모, 민음사

네 이웃의 식탁

네 이웃의 식탁

작년인가 언제, 선생님이 내게 농담처럼 물으셨다.

“작가들이 공동으로 모여 사는 공동주택이 있으면 어떻게 될 것 같냐.”
“살인 날 것 같아요. 그냥 한 동네에 띄엄띄엄 모여서 한달에 한두번 보면서 살면 모를까. 저도 작가지만 인간적으로 작가랑 어떻게 삽니까.(…..)”

1초도 주저않고 대답했는데 이 책을 읽는 내내 그때의 짧은 대화가 떠올랐다. 인간적으로 이러고 어떻게 살아, 가 절반, 아이를 더 낳을 것을 전제로 하며 국가에서 모아들인 공동주택에서 사느니 작가들이랑 사는 게 차라리 살인이 안 나겠지, 가 절반.

나오기는 작년에 나온 책이고 이북으로 구입한 것도 작년 여름이었는데, 출산 앞두고 읽을 책은 아니라고 누군가 말해서 묵혀두었다가 오늘 읽었다. 무척 현실적인 스릴러로, 읽는 내내 작가님의 인내심에 감탄했다. 내가 이 오프닝으로 썼으면 이 책의 1/3을 넘기지 못하고 태풍 불고 인터넷 끊어진 날에 강교원이 눈 뒤집혀서 어른들 애들 할 것 없이 다 죽여버리고, 눈 앞에서 무능한 남편 전은오가 살해당하는 걸 본 서요진이 자기 딸 시율이를 살리기 위해 아이와 함께 폭풍 속으로 도망치는 이야기를 쓰고 말았을 텐데, 작가님께서는 이들 중 누구도 죽이지 않고 이야기를 끝까지 끌고가셨다. 내가 얼마나 인내심이 없는 인간인지, 앞집 옆집에 누가 사는지 모르는 아파트의 시대라서 얼마나 다행인지 다시 생각했다. (그래도 강교원이 최후까지 이 공동주택에 남을 거라는 예상은 맞긴 했네.)

어쨌든 이 이야기는, 세 자녀를 낳는 것을 조건으로 저렴한 가격으로 입주 혜택이 주어지는 경기도 외곽의 ‘꿈미래실험공동주택’에서 시작된다. 하지만 세 아이를 낳으라면서, 나라에서는 이 휑한 공동주택 근처에 어린이집 하나 지어주지 않았다. 여기 살고 있는 네 가족은 공동 육아를 시도하지만, 쉬운 일이 아니다. 남의 일에 관심이 많으며 유기농을 고집하고 육아에 대해 높은 참여를 요구하며 아이 키우는 엄마는 죄송합니다와 고맙습니다를 입에 달고 살아야 마땅하다고 생각하는 단희나, 육아, 살림 블로거인 교원에게 있어, 남편이 집에 있고 자신은 출근하는 요진이나 그림책 작가로 마감에 쫓기며 공동생활에 소홀한 효내는 이질적인 존재다. 요진이 출근하는 대신 아이는 은오가 돌보고, 은오는 그에 대해 꽤 생색을 내지만, 그건 생색일 뿐이지 돌봄노동과 인내는 여성들에게 전가된다. (그리고 단희는 나올 때 마다 스텝포드 와이프를 떠올리게해서 소름이 쭉 돋았다. 사실 몇몇 점이 과장되게 표현되었을 뿐 굉장히 흔한 타입인데 내 근처에 오면 일단 나는 무해한 미소를 지은 뒤 재빠르게 도망치게 되는 타입이다.)

비단 그것은 전업주부인 단희나 교원에게만 해당되는 일만이 아니다. 효내는 자신의 일에 몰두하고 싶지만 시가와 친정 모두 출근하지 않는 프리랜서의 일을 인정하지 않는다. 게다가 남편인 상낙은 효내를 밀친 적이 있고, 병원에 갔을 때 임신 사실이 밝혀지자 무릎꿇고 용서를 구했으며, 같은 병실의 사람들은 용서 안 해줄 수 없겠다며 효내의 용서를 종용했다. 요진은 친척언니의 약국에서 일하면서도 집에서 살림을 하고, 아이를 키우지만, 정작 집에 있는 은오는 공동육아 과정에서 딸인 시율이 다른 아이들을 돌보는 입장이 된 것에 대해 조금도 문제의식을 갖지 못한 채, 교원에게 영화에 대한 지식들을 늘어놓으며 으스대고, 택시비와 피자값을 내고는 지레 찔려 요진에게 돈 번다고 유세 부리냐며 소리친다. 단희의 남편인 재강은 요진과 카풀을 하며 그녀에게 추근거리고 맥락상 성희롱이 될 만한 말들을 늘어놓으며 한정판 화장품을 사다주거나 한다. 교원은 없는 살림에 아이에게 필요한 물건들을 구하기 위해 수동공격을 해 대며 뻔뻔할 정도로 가격을 깎다가 맘카페에서 소문이 나 조리돌림을 당하기까지 했는데, 그 남편인 여산은 그렇지 않아도 적은 월급을, 시누이 남편이 저지른 사고를 막는 데 들이붓고 있었다. 시가 사람들은 그녀에게만 그 일을 쉬쉬하고 있었다. 그러면서도 남편들은 남자는 애 아니면 개 같은 소리를 하며 변명한다. 남자는 설명을 자세히 해 줘야 이런 일들을 할 수 있다고. 설명을 제대로 해 주지 않은 당신의 탓이라고.

다행히도 직업을 갖고 있는 여자들은 단희의 영도 아래 다 같이 스텝포드 와이프가 되어 이곳에 어색하게 방긋 웃는 인형들의 마을을 만드는 대신, 하나하나 이혼하고 이 곳을 떠난다. 효내는 자신의 일을 무시하는 남편을 두고 아이와 함께 떠나고, 요진은 자기 딸인 시율이 또 다른 돌봄노동에 착취당하는 줄을 모르고 빈둥거리며 교원에게 친한 척을 하는 남편과 이혼한다.

요진이 떠나기 전 재강이 준 화장품을 걸어놓고 그간 재강이 추근거렸던 일을 남겨놓으며, 단희도 망신살이 뻗친 채 이 곳을 떠난다. (이혼했다는 말은 없다.) 그리고 여기 마지막으로 남은 교원은 세 아이를 임신한 채로, 새로 이사오는 가족의 큰 아이(딸)가 여섯 살이라는 말을 듣고 “이 집에 처음 왔을 때의 시율이 나이와 같네”하고 혼잣말을 한다. 마치 그 아이가 예전의 시율처럼, 교원의 세 아이들을 돌보는 데 동원될 것 같은 암시로 읽힌다. 단희처럼 사람을 못살게 하는 타입과는 또 달리, 수동공격성이 강한 타입이니 얼마든지 그럴 수 있을 듯 보인다.

짧은 소설인데, 현실적으로 여자들이 겪는 온갖 고통들이 잔뜩 녹아 있다. 여자가 일을 하려고 해도 사방에서 무시하거나(효내), 일을 해서 가족을 부양해도 돈 번다고 유세한다는 소리를 듣는 한편, 불안정한 고용에 불안해 하고, 또 아주 작은 여지만 있어도 추근거리며 성희롱을 하려 드는 남자들에 마음고생을 하거나(요진) 자신을 증명하기 위해 적은 돈으로 완벽한 살림과 육아를 하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정작 자신은 망가져 가고, 시댁 식구들이 자신만 두고 돈 문제를 쉬쉬하여 고통받거나(교원), 완벽한 가정처럼 보이지만 남편의 바람기에 괴로워하거나(단희), 아직 초등학교도 가지 않을 나이인데 여자아이라는 이유로 다른 아이들을 돌볼 것을 기대받거나(시율). 그리고 이 모든 상황의 뒤에, 출산률을 높여 보겠다며 아이 셋을 낳겠다는 서약서를 쓰라고 하며 이미 아이를 낳아 생식력을 증명한 가임 부부, 그것도 부부 중 한 쪽이 전업주부 노릇을 할 수 있는 외벌이가정 위주로 주택 입주 혜택을 주는 정부의 눈요기식 정책이 놓여 있다. 여성들의 현실에 대해서는 눈 가리고 아웅한 채, 돈을 주면 아이를 낳겠거니, 집을 주면 아이를 낳겠거니 하는.

다 읽고 머릿속에서 영상으로 떠올려 보았다. 이렇게 현실적이고 사람 하나 죽지 않는데 지독한 호러다.

One thought on “네 이웃의 식탁 – 구병모, 민음사

  1. 밀우미

    잘 읽었어요 제 머릿속에 떠다니던 생각들이 글을 보고 깔끔하게 정리 된 느낌입니다ㅜ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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