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상의 해바라기 – 유즈키 유코, 황금시간

반상의 해바라기

반상의 해바라기

읽기 시작하자마자 중학생 때 프로가 된 명인 후보(…..)가 나오는데, “3월의 라이온“도 그렇고 “용왕이 하는 일”도 그렇고, 중학생 프로가 된 명인 후보란 쇼기를 소재로 한 일본 창작물에서 일종의 로망인 걸까, 생각했다. 물론 트위터의 미라쥬나이트님 말씀대로, 하부 요시하루(저 “3월의 라이온”에 나오는 소야 토지와….. “용왕이 하는 일”에 나오는 “명인”의 모델이죠)가 중학생 프로로 데뷔하여 7대 타이틀을 모두 영세로 달았던가, 뭐 그런 어마어마한 업적을 남겼다 보니 중학생 프로 정도는 되어야 주인공 또는 라이벌 급 천재로 나올 수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리고 다행히도, 주인공은 그 중학생 프로 출신의 정통파 엘리트 명인 후보는 아니었다. 그와 대국하고 있는, 장려회를 거치지 않고 이례적으로 프로로 입단한 천재, 가미조 게이스케가 그 주인공이다. (카미조 케이스케……) 그가 쇼기 말 공예로 유명한 덴도에서 용승전 타이틀을 두고 대국을 벌이는 가운데, 소설은 가미조 게이스케가 어떤 살인사건의 용의자로 추정되는 상황을 먼저 보여준다. 몇년 전 살해된 내기 장기를 두던 남자의 시체와 함께 발견된, 명인 1대 기쿠세이게쓰가 섬회양목으로 만든, 그 가치가 600만엔에 상당하는 아름다운 말이 문제였다.

그리고 이야기는 과거와 현재, 게이스케의 불우했던 소년시절과 좌절된 꿈, 그리고 그의 은인이었던 가라사와 씨의 이야기와, 저 기쿠세이케쓰 말을 추적하며 수사망을 좁혀가는 두 형사의 이야기를 교차하여 보여준다. 쇼기를 좋아하는 은퇴 교사 가라사와 씨가 학대당하던 어린 소년 게이스케에게 쏟는 조건없는 애정과 관심은 마치 “한 아이”를 떠올리게 하는데, 사실 추리/스릴러로서보다 이 가정폭력이나 아동학대, 그리고 학대당한 아이가 타인의 애정에 의해 얼마만큼 성장할 수 있는가에 대한 이야기로도 뛰어났다. 평생의 기념으로 명품 말을 소장했던 가라사와 씨가 그 소중한 말을 도쿄로 떠나는 게이스케에게 쥐여준 대목에서 마침내 과거와 현재는 교차하지만, 진짜 수수께끼는 여기부터다. 은인에게서 받은 소중한 물건을 되찾기 위해 분투하다가 과거로부터 발목을 잡힌 청년이 어떻게 수렁에 빠져드는지를, 이 소설은 시종일관 침착하게 보여준다.

원한이라고 한마디로 말할 수 있는 세계가 아니야. 시기, 질투, 분노, 자존심, 강한 열등감, 인생의 절벽으로 떨어질지 모른다는 공포가 끈적끈적하게 바짝 졸아들어 있는 곳이야.

읽는 내내 용의자인 주인공에게 이입하여 그의 고통과 뒤꼬인 운명에 안타까워했다. 한편으로 3월의 라이온을 읽지 않았다면, 그래서 쇼기 룰이라든가 장려회에 대해 좀 들어본 게 있는 상태가 아니었다면, 사전지식 전혀 없이 읽기 편했을까 잠시 생각했는데, 정교한 정황을 펼쳐놓고 추리쇼를 벌이는 게 아니다 보니 쇼기에 대해 큰 지식이 없어도 읽는 데 무리가 가진 않을 것 같았다.

쇼기 말에 대해서는 전에 쇼기 말이라는 투쟁의 도구에 대한 이야기라는, 3월의 라이온 영화화에 맞물려 SUNCHI에서 영화에 사용되었던 쇼기 말에 대해 소개하는 기사가 있었는데, 이 기사를 다시 읽어보고 소설을 읽으니 좀 더 이미지가 잡혔다. 이 기사에는 영화에 추가된, 만화 본편에는 없었던 설정(키리야마의 쇼기 말이 아버지가 장려회 퇴단할 때 받은 것이며, 아버지의 이름은 키리야마 카즈키)이 조금 언급되어 있다.

제목에 해바라기가 들어있어서, 희망이나 의지 같은 것을 의미하는 건가 생각했는데, 절망과 광기를 의미하고 있었다. 하지만 광기와 절망에 고흐를 붙이는 건 너무 안일한 선택이 아닐까 생각하다가, 한때 우리나라에서도 미친 듯 불었던 고흐 굿즈 광풍을 생각하면 납득이 갔다. 가장 보편적으로 마주칠 수 있으니까 그 해바라기가 사용된 거다. 굳이 어떤 그림을 보기 위해 찾으러 다녀야 하는 거였다면 이런 장치로 쓰일 수 없었을 테니. 어쨌든 글에 있어 디테일을 살리는 소재란, 작가가 얼마나 박식한 인간인지를 보여주기 위한 게 아니라 그 상황에 가장 적합하게 합목적적으로 맞아들어가기 때문에 쓰이는 것이어야 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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