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만화와 애니메이션

이노센트 & 이노센트 루즈 – 사카모토 신이치

이노센트 & 이노센트 루즈
이노센트 & 이노센트 루즈

“왕의 목을 친 남자”를 예전에 읽었기 때문에 프랑스의 사형 집행인 가문, 무슈 드 파리인 상송 가문에 대해서는 알고 있었다. 그렇다면 삼총사에서 밀라디의 목을 쳤던 그 사형집행인이 바로 저 상송의 조상이겠구나 막연히 생각하기도 하였고. 이노센트는 바로 그, 상송 가문의 장남으로서 당주가 될 운명을 지고 태어났지만 사형집행인이 되기에는 마음이 여렸던 소년 샤를 앙리 상송이 사형집행인으로서 프랑스 대혁명기를 살아가는 이야기…… 를 보여줄 것 처럼 시작된다.

사형이 필요없는 세상을 만들고 싶다는 샤를의 “순수”와, 새로운 시대가 시작되었고 자신은 자식을 남기고 가문을 잇지 않겠다는 소년의 결의는, 냉혹한 사형 집행인인 아버지가 자신이 사형에 처한 자들을 애도하던 기도실에서 무너진다. 아버지의 약점과 마주하고, 이곳에서 자신이 흠모하던 뒤 바리 부인에게 동정을 잃으며, 샤를은 새로운 시대를 상징하는 인물이 아닌, “아버지의 계승자”로 거듭난다. 사카모토 신이치의 탐미적인 그림체로, “이노센트”는 바로 그 샤를 앙리 상송이 사형집행인으로서 자리매김하는 과정, 그리고 그의 연인이었던 뒤 바리 부인을, 사형집행인인 그의 벗이 되는 황태자 루이를, 그리고 그의 가문 이야기를 보여준다. 사형집행인 가문을 이어가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던 상송의 여자들을, 그러면서도 샤를의 누이동생인 마리가 사형집행인이 되려 하는 것을 막으려 들었던 할머니를, 할머니의 손에 가슴에 낙인이 찍히고, 베르사유 궁전의 사형집행인인 프레보테 드 로텔이 되기 위해 강간을 당하는 것을 감수하고, 계속 자유롭게 살아가기 위한 명목상의 남편으로 폐인인 사촌 장 루이와 결혼을 감행하는 마리 조세프 상송의 모습을. 하지만 이 이야기의 “본편”이라 말할 부분은 그 다음, 마리가 본격적인 주인공으로서 드러나는 “이노센트 루즈”다.

“이노센트 루즈”(“이노센트”를 포함해서)는 무척 흥미로운 작품인데, 여기서는 이미 원작이라고 주장하는 “왕의 목을 친 남자”와는 아주 결이 다른 이야기로 흘러간다. 프랑스 혁명 직전, 루이 16세 시대의 굵직굵직한 스캔들이 흘러가는 가운데, 남장여자이고 레즈비언이며 사형집행인인 마리는 거침없이 이 난세를 살아간다. 남매는 반목하면서도, 서로가 서로의 거울상임을 알고 있다. 왕당파이며 국왕 루이 16세가 마음을 열 수 있는 친구였던 샤를과, 혁명을 꿈꾸며 마리 앙트와네트가 자신의 벽을 깨고 나오기를 바랐던, 하지만 그러지 못하자 실망하고 돌아섰던 마리. 세상의 변화를 감지하면서도 그를 두려워하고 전통을 존중하는 샤를과, 세상을 박살내버리기를 바라는 마리. 체제를 수호하려는 샤를과, 왕가를 무너뜨리려는 마리. 그리고 마리는, 자신의 오빠인 샤를의 이상에 대해서도, 로 그 혁명을 꿈꾸는 제3신분의 무리 “앙라제”에서 싸우는, 상송의 손에 거열형을 당한 사형수 다미앵의 아들 잭과 대립하며 그의 이상에 대해서도 언제나 한 걸음 더 나아가 코웃음친다. 너희가 꿈꾸는 형제애 넘치는 이상적인 세계에는 남자들밖에 없노라고.

사실 이 만화는, 여러 면에서 이케다 리요코의 “베르사이유의 장미”에 대한 오마주이자, 이제는 다소 낡아버린 그 이야기를 지금의 시대에 맞게 다시 쓴 이야기라고 생각한다. “베르사이유의 장미”의 주인공 오스칼은 여러 면에서 이중적인 인물이다. 그 이중적인 면모는 그대로, 마리와 샤를에게 나뉘어 그들의 거울상을 형성한다. 오스칼은 가문을 물려받지 못할 입장인 여자아이로 태어나(마리) 스스로 그 일을 원하지 않는다고 생각했지만 가문을 이어 최선을 다했고(샤를), 그러면서도 결과적으로는 자신이 스스로 그 길은 선택했다(마리)고 생각한다. 그녀는 루이 16세의 마음의 벗인 왕당파이지만(샤를) 한편으로는 장 자크 루소의 사회계약론을 읽고(마리) 세상이 변화할 것을 감지한다. 그녀는 왕가가 무너질 것을, 혹은 혁명이 일어날 것을 예감(마리 앙트와네트에게 영원히 작별을 고하고 물러나는 장면을 보라)하고 그 주체로서 뛰어들지만(마리)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지막까지 왕가의 일을 걱정하고, 가급적이면 체제를 수호(샤를)하기 위해 노력했다. 그런 오스칼의 속성들은 마리와 샤를 남매에게 나뉘어졌고, 여자로서 군인이자 백작가의 후계자이고 근위연대장이 되어, 사람들의 숭배와 터부의 대상이 되었던 오스칼의 화려한 면모는 사람들로부터 천대받지만 교육을 받고 궁정에 출입하며 어느정도 귀족과 같은 삶을 누리던 사형집행인 가문의 수장들로 대체된다. 오스칼은 여성으로 태어나 남성의 속성을 강요당하고 스스로도 혼란스러워하고, 남녀 모두의 사랑을 받는 존재였던 것 처럼, 마리와 샤를 남매는 모두 아름다운 외모와 크로스드레스적인 면모를 보여준다. (샤를은 뒤 바리 부인의 부탁으로 여장을 하고, 마리는 몇몇 장면을 제외하면 사형집행인으로서 늘 남성복을 입고 있다. 물론 마리는 자신이 여성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으며, 남성복이나 사형집행인, 검과 같은 것은 자유를 갈구하기 위한 도구로서 사용된다. 물론 그녀의 결혼까지도.) 이런 부분은 이노센트의 중반부 이후 및 이노센트 루즈에서의 여러 역사적 이벤트들과도 맞물리는데, 물론 혁명 전의 주요 굵직굵직한 이벤트들이라고는 하나, 베르사이유의 장미에서 오스칼이 개입하는 역사적 이벤트들과 많이 겹치고 있다. 게다가 마리의 곁을 따르고 숭배하는 종자가 하필이면 “앙드레” 루그리라는 이름이라는 것도 오스칼의 종자이자 연인이 되는 앙드레 그랑디에를 떠올리게 한다. 마리가 잭과 격투를 벌이다가 위기에 처했을 때 달려오는 사람이 앙드레인 것도 오스칼이 드 라 모트와 격투를 벌이다가 위기에 처했을 때와 겹쳐지기도 하고. 마침 최근에 읽은 이노센트 루즈 6권에서 저 앙드레가 가져오는 따뜻한 음료수가 코냑을 넣은 핫초콜릿인 것도 그렇고.

이노센트 루즈 6권에서 마침내 시대는 1788년, 삼부회 직전이자, 저 바스티유 감옥 습격(실제 역사적으로는 여러 창작물에서 다뤄진 것과는 꽤 다릅니다만) 1년 전까지 다가왔다. 상송 가의 남매들은 베르사유에서 가부장의 무도한 권력에 맞서다가 살인을 저지른 청년 올리비에의 사형을 집행하려다 위기를 맞는다. 이 난세에 마리는 1년이나 몸을 숨기며 자신의 아이를 낳아 처형장에 데려온다. 아마도 이 다음 권을 기점으로 마리와 샤를의 운명은 완전히 갈릴 것으로 보이는데, “왕의 목을 친 남자”의 외피를 쓰고 “베르사이유의 장미”에 대한 훌륭한 오마주로서 기능하며, 등장인물들의 “순진한 이상”을 통해 동시에 지금 시대에도 낡지 않은 “자유”와, 사람들의 입장에 따른 그 한계에 대한 이야기를 겹겹이 레이어로 쌓아올린 이 이야기가 어디까지 닿을 수 있을 지 궁금하다.

PS) 그런데 1788년이면, 이미 샤를 앙리 상송은 50세에 가까운 나이…… 마리도  40대 중반이라고 생각하면 갑자기 마음이 복잡해지긴 한다. 그 시대라면 이미…… 은퇴할 연세가 아닌가 싶어져서. (하긴, 베르사이유의 장미에서 오스칼은 1789년, 바스티유 감옥 습격 때 34세였다. 지금 생각하면 뭐 그렇게 나이든 게 아니라고 해도 그 시대로는 꽤나 나이가 들었다는 이야기인데, 문득 십대 때 친구들과 작중인물들 나이를 계산해 보다가 “그럼 그때까지 연애 한 번 못하다가 앙드레랑 딱 한번 자고 죽은 거잖아”하고 경악하던 게 떠오르긴 한다.)

PS) 혁명가들이 쓸데없이 퇴폐적으로 잘생겼다. 특히 로베스피에르의 첫 등장은 이 사람이 막시밀리앵 드 로베스피에르인지 오스카 폰 로이엔탈(은하영웅전설의……)인지 헛갈리게 할 정도였다. 상송의 집에 세들어 사는 로제라는 청년은 아마도 상 주스트일 테고. 그들은 등장하여, 마치 샤를과 마찬가지로 이상과 순수, 인간의 권리를 말하지만, 사형 집행인 가문 사람, 혹은 여성 등 자신이 차별하고 싶은 상대 앞에서 본색을 드러낸다. 아주 역겹게 위선적으로 나온다.

People reacted to this story.
Show comments Hide comments
Comments to: 이노센트 & 이노센트 루즈 – 사카모토 신이치
  • October 19, 2018

    안녕하세요, 천만원 결혼 책 보고 있는데요.
    오늘 전자책 막 구입했는데 종이책이랑 차이가 있다고해서요ㅜ
    혹시 차이가 얼마나 있는지 여쭤봐도 될까요?

    Reply
    • October 19, 2018

      아….. 저도 종이책하고 리디 판으로 갖고 있는데 딱히 e-book 버전을 따로 작업하진 않았어요. 텍스트는 같은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도판 쪽이 다른지는 확인하지 않았고요.)
      카카페에 처음 서비스 될 때 몇 챕터 발췌 식으로 먼저 나간 적이 있다고 들은 적은 있는데 그 이야기일 수도 있을 것 같아요. 나중에는 전체 서비스로 바뀌었다고는 들었습니다.

      Reply
      • October 21, 2018

        네 감사합니다^^
        책이 윤곽을 잡아줘서 얼마나 도움이 되는지 몰라요ㅎㅎ
        시기는 조금 지났지만 전체적으로 더하고 뺄 부분이 명확해져서
        큰 도움이 되고 있어요.
        이런 양질의 정보들이 담긴 좋은 책들이 많이 나와야 하는데^^
        도서관 사서로서도 좋은 책을 기꺼이 내주시는 작가분들께 감사하는 마음이 듭니다.
        답변 감사드리고 가족들과 즐거운 시간 보내세요^^

        P.S. 전혀 다른 소재의 글에 외람된 댓글에도 친절하게 답해주셔서 감사합니다..ㅎㅎ
        베르사유의 장미 아주 어릴 때 봤는데 이렇게 재탄생하기도 하네요.. 세계사에 매우 약한데 만화를 통해서 또 흥미를 붙여봐야겠어요. 좋은 책들, 글들 감사합니다.

        Reply

Write a response

Your email address will not be publish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