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며칠 전, 대원에서 택배가 왔다. 하지만 그 사이 인생의 빅 이벤트가 있었다. (한 마디로 죽을 뻔 했다.) 당연히 택배를 개봉하는 건 한참 뒤로 미뤄졌고.
그런 이벤트들을 수습하고 나서, 택배는 오늘에야 내 손에 제대로 들어왔다. 그렇지 않아도 구입해서 보려고 알라딘 장바구니에 넣어두었던 만화인 “만화가 야식연구소”가 있어서 일단 보기 시작했다. 몸이 아프고 힘들 때에는 개그가 가미된 요리만화가 제격이기도 하고. 게다가 무라타 유스케니까. 재미있겠지. 일단 그림 존잘님인데다, 전에 읽었던 “풋내기 만화 연구소 R”같은 것도 그렇고. 역시 그런 풍이라고 생각하면 꽤 실용적일 것 같기도 했고. 만화가의 야식이라니 요시나가 후미 선생님처럼 공을 들이고 들이고 들이는 타입이 아니라면 대체로 빨리 만들 수 있는 것들일 테고. 두루두루 실용적일 테지.
……라고 생각했는데.
일단 첫 페이지를 넘기자마자 이런 비극적인(…..) 컷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무라타 선생님!!!!!!! (아니, 콩나물만 볶던 게 고기가 들어갔으니 비극은 아닐지도……)
그리고 그렇게 마감중에 간단히 만들어 먹을 수 있는 레시피를 소개해 보겠다며 시작된 희망찬 그 다음 페이지는 대략 이러했다.

레시피를 소개하려고 하는데 담당자에게 들켰어!!!!!!
갑자기 내게 이 만화는 “인생의 비극을 페이소스로 풀어낸 작가의 이야기”로 읽히기 시작했다…… 고 하면 좀 과한 농담이겠지만 그래도 우울하다고 생각하며 책을 읽기 시작했는데.

…….이 만화의 장르를 정말로 “요리만화”로 불러도 좋은 것입니까, 무라타 선생님!!!!!! (오열)
다이어트를 하려고 했더니 다이어트의 기본은 잠을 푹 자는 것이라는 말을 발견한다거나, 기자들이 소개하는 맛집 말고 아는 사람만 아는 맛집을 찾아 돌아다녔는데 결국 보통 미만의 가게들만 잔뜩 발견되었다거나. 뭔가 기본 틀은 이런저런 여러가지 의미에서 요시나가 후미 선생님의 “사랑이 없어도 먹고살 수 있습니다”와도 비교하며 떠올릴 수 있는 만화가의 식도락 인생 이야기라고 요약할 수 있는데, 어쩐지 짠내가 잔뜩 나는 이야기라는 점이 포인트. 물론 서른 세 가지, 비교적 간단한(그런데 일단 칼질을빨리 잘 해야 한다거나, 냉장고에 기본 요리재료가 좀 있어야 한다거나, 뭐 그런 건 있다…… 여기 나오는 레시피대로 나보고 만들라고 한다면 30분은 넘게 걸릴 테지.) 레시피로 만들 수 있는 야식들을 소개하는 것 자체가 흥미진진하기도 하고.(그런데 대체 왜, 이 서른 세 가지 레시피의 목차, 부분을 컬러도판으로 넣은 것입니까…… 뭔가 좀 낭비같은 느낌이 들었다.)
한편으로 이 책의 시작이, 아마도 처음에 편집자에게 들켰을 저 트위터에 올린 레시피가 아니었을까 생각하면 또. 하고싶은 것을 하기 위해서 SNS를 적극적으로 이용하는 작가란 굉장하다는 생각을 새삼 하게 되었다. 내 주변의 작가들 중에도 그런 사람이 있지 않나, 이런저런 생각들을 하기도 했고. 치열한 만화가의 일상(아이고, 무라타 선생님 ㅠㅠㅠㅠㅠㅠ)과 레시피 양쪽으로 다 충실한 책.
+ 만화의 신이신 테즈카 오사무 님께서 주먹밥을 손에 들고 원고를 하시더라는 이야기에선 이젠 짠내도 안 나고 그냥 새하얗게 불타버릴 뿐이다. 으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