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쿠란 – 안노 모요코

사쿠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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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유곽 안내서 를 읽다가 문득 생각이 나서 다시 읽었다. 영화 쪽도 여성 감독에 감각적이고 화려한 화면으로 “마리 앙트와네트”와 비교되기도 하지만, 원작인 만화 쪽이 모든 면에서 나은 편. 스타일리시한 점에서도, 군더더기 없이 키요하의 성장을 보여주는 점에서도. 사랑이나 결말 면에서도.

요시와라의 유곽 타마기쿠라에 팔려온 소녀 키요하는 오이란 쇼히의 카무로가 되어 그녀의 시중을 들며 온갖 구박을 받지만, 결코 다른 아이들처럼 고분고분해지지 않는다. 그녀는 언젠가 요시와라를 나가겠다는 생각을 결코 버리지 않고, 이곳에 계속 머무르다가는 저 괴물같은 오이란처럼 되어 버릴 거라고 이를 갈고 있다. 하지만 재능있고 예쁜 키요하는 힛코미 신조로, 동년배들보다 상석에 앉고 더 많은 것을 배우게 되며 질투를 사게 된다. 쇼히는 “다른 사람들보다 많이 가지고 있으면 다른 사람들에게 미움받는 법이지. 그게 바로 오이란이야. 남들에게 미움받는 너에겐 안성맞춤이지.”라는 말을 남기고 낙적되어 시집가고, 키요하는 오이란 미쿠모의 신조가 되어 견습으로 손님들을 맞이하게 된다.

유일한 친구였던 오소메의 자살, 첫 손님맞이와 함께 본격적으로 시작된 유녀로서의 삶이 시작된다. 키요하는 단숨에 언니인 미쿠모를 위협할 만큼의 인기 유녀가 되지만, 소지로와의 사랑에 빠지며 그녀는 유녀로서의 삶보다 사랑을 택하게 된다. 동료 유녀인 와카기쿠가 사랑하고 배신하는 모습과 함께, 키요하 역시 소지로와 만나기 위해 다이묘를 거절하기까지 하지만 소지로는 다이묘를 보고 도망쳐 버린다. 키요하는 소지로를 만나러 가기 위해 요시와라에서 도망치지만, 요시와라 밖에서 소지로의 진짜 모습을 보고 되돌아온다. 오이란은 연인이라 믿었던 남자에게 살해당하고, 사랑에 배신당한 와카기쿠는 낙적되어 부유한 남자에게 시집가며, 키요하는 히구라시라는 이름을 받아 오이란(타유)이 된다. (자신이 그런 것을 원하지 않았음에도.)

친절한 만화는 아니지만, 감각적인 연출과 함께 키요하의 성장과 절망이 분명하게 느껴지는 이야기. 분야도 시대도 전혀 다르지만, 워킹맨과 마찬가지로, 혹은 작가의 다른 작품들과 마찬가지로, 필사적으로 삶과 싸우는 여자 이야기이기도. 물론 워킹맨이 그 안에서 살아남기 위해 분투하는 여자의 이야기라면, 이쪽은 여자들을 화려한 인형처럼 치장해 놓았을 뿐인 아름다운 지옥에서 그 지옥에 물들지 않기 위해 악마처럼 행동하는 작은 여자아이의 이야기이긴 하지만. 그 여자아이가, 남자의 작업복을 걸치고 사랑하는 남자를 찾아 달려나갔다가, 울며 자포자기하며 되돌아오는 장면은 짧지만 무너지듯 서글퍼지기도 했다. 어쩌면 이렇게 지독한 절망을 그릴 수 있었을까. 이 작가는. 이 길지도 않은 만화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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