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금이야 신인 작가들이 “웹툰의 고료는 얼마쯤 해요?”, “스토리 작가가 원고료를 5:5로 나누자는데 다들 그렇게 하나요?”, “단행본 인세 비율은 몇 퍼센트예요?” 같은 기본적인 질문을 하면 도와줄 수 있을 만큼은 경험치를 쌓았지만, 사실 처음에는 맨땅에 헤딩하는 심정이었다. 만화과를 나왔거나 주변에 만화가를 지망해서 그쪽으로 일을 하고 있는 친구들이 있었으면 모르겠는데 사실 그것도 아니었으니까. 알음알음 건너 들은 사례들도 개인의 사례라는 느낌이 과하게 강해서(이를테면 그 책을 낸 출판사가 사옥을 짓게 만들어 줬다는 존잘님이라든가) 큰 도움은 되지 않았던 적이 많았다.
그래서 그 무렵 생각했다. 아니, 작가라는 족속들은 자신 주변의 일들을 잘 기록하지 않나? 다들 이렇게 얼마를 어떻게 벌었는지 기록해 둔다면, 나중에 이 데이터를 모아 뭔가 재미있는 걸 할 수도 있을 텐데. 누가 총대 매는 사람 없을까? 어, 혹시 “천박해서” 아무도 안 내는 건 아니겠지? 에이, 고상한 척 하는 순문학도 아니고 장르나 만화에서 돈 이야기가 그렇게까지 천박할 리가 없잖아. 누군가 내 주면 좋을 텐데. 아니면 내가 나중에 성공해서 하나 내도 되고. (웃음)
라고 생각했던 것을 잊고 지낸지 어언 수 년이 지난 어느 날.
일본에 그런 책이 있다는 말을 들었다.
작가가 모리 히로시란다. 그 말을 듣자마자 엑셀로 복잡한 회계 시트를 만들어 놓고 수입 지출을 기록하고 있는 이공계 작가가 상상이 가 버렸다. (실제로 그는 나고야대학교 공학교수 출신이다)
그런데 그 책을 북스피어에서 낸다고 한다. 나오는 날 기다렸다가 바로 질렀다. 그리고 모처럼 회사에서 집까지 걸어가는 길 내내 그 책을 읽었다.
일단 굉장한 책이다. 그동안 자기가 쓴 글들이 얼마를 받았는지, 이것이 수출되거나 만화나 드라마가 될 때는 어떤지, 방송에 출연하거나 강연에 나서면 얼마를 받는지 등등이 무척 구체적으로 나와 있어서 흥미롭다.
한편으로 한국에서 일하는 작가(는 물론, 아마 일본에서 일하는 작가도 탑급이 아니면 불가능할 액수라고 생각하는데)가 읽기에는 무척 배 아프고 염장질리는 글이기도 하다. 말하자면 이것은 “소설가의 바쿠만”이라고 봐야 한다. 바쿠만이라고 하면 다들 알겠지만, 이를테면 지망생들은 그걸 읽으면서 “작가들의 연말파티”에 환상을 갖기도 하고(쿨럭) 고등학생이라도 그만큼의 돈을 버는 작가의 세계에 매료되기도 하지만, 현실의 작가들은 보면서 한편으로는 낄낄 웃다가, 다른 편으로는 “아 그래 젠장 나도 돈 벌고 싶어 내 만화로 애니메이션 만들고 싶어” 하고 오열하게 되지 않던가. 하나 덧붙이자면 나와 일하던 편집자는 그 바쿠만을 보면서 “야근을 했다고 회사에서 택시비를 주다니 진짜 좋겠다….. 근데 여기 나오는 편집부에 대한 대우도 버블 시대 같긴 해요. 실제로는 이렇지 않댔어.” 하고 말씀하시기도 했는데. 여튼, 이 책은 실화 기반이라는 점이 대단하지만, 이 책을 쓴 사람이 모리 히로시라는 게 중요하다. 20년동안 278권의 책을 내고, 이 책들로 벌어들인 수입이 한화로 약 155억원에 육박하며, 이런저런 강연이나 해설과 추천사, 부가 수입까지 하면 200억원 가까이 되는, 그러니까 1년에 10억원씩 벌어들인 작가라는 것이 중요하다.
아이구, 배야.
여튼, 저는 모리 히로시같은 거창한 취미생활(철덕이라고 합니다)까지는 없으니까, 제가 그 능력이 되면 회사를 그만두고 글을 썼겠지요……. 가 아니라, 이 책은 기본적으로 첫 작품부터 엄청난 히트를 쳤던, 그 바닥의 존잘님이 쓰신 책이라는 것, 그러니까 신인작가, 그것도 한국의 신인작가에게 “당신이 글을 쓰면 글값으로 얼마를 받을 것이고 그게 수출이 되면 얼마를 받게 될 것인지”를 알려주는 책은 될 수 없다는 것을 미리 말해둔다. 하지만 명함에다가 거창하게도 “성실한 입금 확실한 원고”라고 박고 다니는 나같은 인간에게는 무척 유쾌하고 즐거우며 부러워서 몸부림이 쳐 지는 책이긴 했다.
전에 말했나 모르겠는데 북스피어의 박람강기 시리즈는 역시 믿고 보는 책이라서. 후기에도 나와 있지만 유미리의 “가난뱅이 신 : 아쿠타가와 상 작가 빈궁생활기”도 읽어보고 싶은데. 언젠가 정말 내 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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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수지 – 모리 히로시, 이규원 역, 북스피어”에 대한 2개의 응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