옆집의 영희 씨 – 정소연, 창비 청소년문학 79

옆집의 영희 씨

옆집의 영희 씨

어떤 “이야기”를 읽고 정소연이라는 이름을 처음 기억했던 것은 죄송스럽게도 그분의 글이 아니라, 만화 “우주류”를 읽었을 때였다. 그분의 홈페이지에 처음 들어갔던 것은 난데없게도, 소설로 검색한 게 아니라 오로라 만년필의 리뷰를 찾아서 들어갔을 때였다. 아마 메일로 처음 연락을 했던 것도, 그분의 홈페이지에서 본 아마도 봉랍에 대한 내용이 어디 쇼핑몰에 올라가 있었다고 알려드렸던 때였을 것이다. 그때 나는 “작가 정소연”이나 “번역가 정소연”의 이름은 알고 있었는데 그 홈페이지가 그분 홈페이지인줄은 또 모르고 있었고. (……) 좀 바보같은 이야기다. 음.

어지간히 열심히 읽고 돌아다닌다고 자부하는데도 그렇게 될 수 밖에 없었던 변명을 늘어놓자면, 이분은 소설을 많이 내놓지 않는다. 수는 적지만, 한 편 한 편을 주옥같이 다듬어서 세상에 내놓는다. 그래서 상당히 예전에 읽었던 소설로 기억하는 것조차도 이번에 책으로 엮여 나온 것을 다시 읽어보면 다 새롭고 눈부시다. 만화버전을 먼저 보고 놀랐고, 원작이 된 소설을 뒤늦게 읽고 전율했던 “우주류”도, 프루스트의 ‘가지 않은 길’을 떠올리게 하는 “앨리스와의 티타임”도. 작가로서의 정소연의 시작이었던 “마산 앞바다”도. 아이를 낳고 나서는 읽으며 다른 의미를 다시 발견하게 되는 “입적”과 “처음이 아니기를”도, “개화”도 “가을바람”도. 한국사회에서 어떤 의미로든 “소수자”로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들이 자연스럽게, 그리고 빼곡하게 담긴 이야기들을 들여다보며, “한국에서 한국말로 SF를 쓴다는 것”과 “한국에서 소수자를 다룬 이야기를 쓴다는 것”, 두 가지 모두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정소연 님은 번역가로도 활발히 활동하고 계신데, 그동안의 번역작들, 그리고 정소연님이 세상을 좋게 만들기 위해 하는 여러 일들에 대해 소식을 듣다 보면, 세상에는 저런 사람도 있구나, 하고 질투가 난다. 소설 하나만으로도 질투가 나는데, 세상에. 처음부터 끝까지 잔잔하게 빛나는 이야기들을 읽고, 그리고 다시 그 작가를 바라본다. 질투를 지워버리면 “이보다 더 좋을 수가 없다”. 잔잔하고 조금은 쓸쓸한 느낌으로 풀어나간, 작가 본인의 목소리처럼 나직하지만 힘이 느껴지는 이야기들을 읽다 보면, 행간에서 현명하고 지혜로운, 나이를 짐작할 수 없는 누군가가 따뜻하게 슬밋 웃고 있는 느낌이 든다. 쓸쓸하지만, 혼자는 아닌 이 이야기를 읽는 기쁨이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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