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읽기-081] 1984 (조지 오웰) 민음사 세계문학 77

1984

처음 읽었을 때는 공포를 느꼈다. 그것이 중학교 1학년 때의 일. 그때 적어 두었던 독서 감상 노트에, 1984는 기분 나쁜 책이라는 메모가 붙어 있었다. 우리 모두가 빅브라더, 아니, 학교와 부모에게 지배당하고 있으니까. 중2병적인 감상일지 모르지만, 그것이 사실이라는 점에는 지금도 딱히 반박할 방법이 없다. 트위터에 글 한줄 잘못 올렸다가 회사에서 잘리는 사람도 있다. 구글로 남의 신상을 터는 것은 일도 아니다. 하나의 공포의 대마왕 빅브라더가 아니라, 인터넷 전체가 거대한 빅브라더로 존재하는 시대. 정보가 힘이 되는 시대에, 권력은 곧 정보가 된다. 인터넷이 활성화되며 정보는 과잉 상태를 맞았지만 여전히 많은 정보는 통제되고 있고, 진짜 중요한 정보들은 힘이 있는 사람의 것이며, 사실 우리들에게 무한 공급되는 정보는 쓰레기에 가깝다. 예를 들어 스포츠 신문의 가십 기사, 아시안 게임에서 정작 메달을 딴 선수는 디씨인사이드에 메달 인증을 하고 있는데 얼짱 선수들의 꽁무니만 따라다니며 취재하는 기자들. 낚시성 글제목이며, 입사하면 선정적인 내용 뽑는 법만 배우는 듯한 질 떨어진 기자들이 과연 요즘 추세가 그렇기 때문이라고 단언할 수 있을까. 바늘은 바늘꽂이에 감추면 눈에 띄지 않는 법, 진짜 정보는 그렇게 쓰레기 정보들 사이에서 눈에 띄지 않게 된다. 우리들 모두에게 그 쓰레기 정보들로 집단 최면을 걸어 둔 채.

그리고 여튼, 중학생 때는 서른이 넘으면 이런 것 신경 안 쓰고 살 수 있을 줄 알았다. 교사라든가 부모라든가 어른들 같은 것 말이다. 어리석은 생각이다. 서른이 넘어도, 그다지 달라지지 않는다. 자유 의지를 갖고 살려고 죽을 힘을 다해 눈을 똑바로 뜨고 고개를 들고 살아도,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생각이 온전히 내 자유 의지라고 어떻게 확신할 수 있는가. 있는 머리로 생각이라는 것을 하고 살려고 굳은 심지를 갖고 노력을 해도, 가비지를 넣으면 가비지가 나온다. 그것이 진리. 쓰레기 정보 과잉의 시대에서, 아무리 머리를 굴리고 줏대있게 살려 해도 우리는 결코 자유롭지는 못할 거다.

그건 그렇고, 다시 읽다가 미묘하게 흥미를 느낀 부분이 있었다. 비교적 앞부분, 1984의 세계에서는 반역자이고 증오의 대상이지만, 우리 식으로 말하면 빅 브라더에 맞선 민주투사 쯤 되는 골드스타인을 향해, “2분간 증오”의 시간을 갖던 도중 윈스턴이 느낀 감정이, 미묘하게 눈에 확 들어왔다.

 그는 이제야 왜 그녀를 그토록 증오하는지 좀 더 확실하게 알 것 같았다. 그녀를 증오하는 것은 그녀가 젊고 아름다운데다 섹스에 무관심하기 때문이었다. 그녀와 동침하고 싶지만 절대로 응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양팔로 안아달라는 듯 매혹적이고 나긋나긋한 허리에 순결의 상징인 역겨운 진홍색 띠가 감겨 있기 때문이었다.

그는 조금 전까지 골드스타인을 증오할 것을 강요당했고, 그러면서 미묘하게, 남모르게, 빅브라더와 당, 사상경찰을 향해 증오를 품었다가, 그 증오를 바로 뒤에 앉은 검은머리의 아름다운 여자에게 돌린다. 참, 어디서 많이 보는 시추에이션 아닌가? 당연히 정부를 향해 품어야 할 반감을 여자들에게 돌리는 것이라든가 하는 것. 그래, 된장녀가 어쩌고 하고 욕하고 있어도, 그건 네 여자가 될 리 없는 여자니까 욕하는 것이지. 그런 식으로 넘기는 이야기들을 생각했다. 약자는, 자신을 억압하는 자가 아니라 자기보다 더 약한 자에게 그 증오와 분노를 투사하며 살아간다. 그런 것이 비겁이다. 그런 자신을, 일단 깨닫는 것에서 시작하는 것이 더 합리적이지 않을지. 그런 생각을 했다. 지금 시국, 북한의 공격으로 민간인까지 죽은 지금 상황에서 일반화해서 올리기에는 참 뭣한 내용이지만, 비단 그런 식으로 인터넷에서 남녀갈등을 만들어내는 문제, 남성이 여성을 공격하는 것을 스포츠로 만드는 문제 뿐이 아니더라도, 약자에게 증오를 투사하는 것, 신포도 기제, 그런 비겁이 대세인 인터넷은 이미, 정보의 바다가 아니라 1그램의 정보를 얻기 위해 1톤어치의 쓰레기를 감수해야 하는 쓰레기 밭인 것이 사실이다. 그리고 어떤 면에서는, 언론과 권력을 쥔 자들이 그런 증오 투사를 위해 희생양들을 끊임없이 만들어 내는 것도 사실이고. 어느정도는 국가가 그런 걸 조장하고 있는 것 처럼 보이는 부분도 있고. 정권 유지를 위해서 약자들을 싸움붙이는 거야 고래로부터 계속되어 온 일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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