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읽기-079] 왑샷 가문 연대기 (존 치버) 민음사 세계문학 192

왑샷 가문 연대기

다락방은 활기를 잃어버린 여름 냄새가 났고, 여름의 빛과 소리가 그대로 보존되어 있는 것 같은 곳이라는 말에, 책장 끝에서 묻어나는 고풍스런 냄새에 다시 한 번 놀랐다. 미국을 배경으로 한 소설이라고 하면, 편견일지 모르지만 그런 고풍스럽고 느긋한 맛은 별로 없다는 생각을 먼저 하게 된다. 신대륙….. 이라는 다분히 유럽 중심적이고 편견어린 표현이 어느정도 맞아떨어지는 것인지 모르지만, 그 나라의 문학은 그만큼 젊고, 느긋함보다는 현실적인 면이 많으며 좀 더 사소설적이고, 젊음의 고뇌에 가깝지 않은가 싶은 느낌이 들었으니까.

이 길지 않은 역사의 나라에, 케네디와 재키는 백악관을 카멜롯의 환상이 남은 곳으로 만들려 했고, 유럽에서는 귀족도 무엇도 아니었던 이들은 미국에서 신흥 부르주아가 되어 영국의 귀족들 이상으로 스노브한 짓들을 해 대었으며(순수의 시대) 옛 가치와 새 가치가 만나는 시대에 대해 사람들은 연대기와 같은 어떤 것을, 한 사람의 인생 여정을 죽 따라가는 소설들을 써내려갔다. 당장 최근에 읽은 것으로 마음에 드는 에덴의 동쪽부터, 예전에 읽었지만 참 마음에 안 드는 저 그 유명한 다락방의 꽃들 시리즈까지. (먼산) 그리고 이번 책은, 아예 연대기다.

어촌 마을 세인트 보톨프스, 쇠락했지만 낭만이 남아 있는 이 마을의 한 집안인 왑샷 가문. 이곳 사람들의 이야기가 그야말로 연대순으로 펼쳐진다. 부를 손에 넣고 마을에서 권력을 휘두르는 오노라는 마을이 점점 쇠락하고 시대가 변하는데도 전통만을 고집하고, 여자와 바닷가를 좋아하는 낭만주의자 리앤더는 시대의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고 조금씩 세상과 벽을 쌓으며, 오노라의 유산 상속에서 제외된 리앤더의 두 아들 모지스와 코벌리는, 자수성가 할 때 까지 마을로 돌아오지도 멀라는 오노라의 명령대로 도시로 떠난다.

미묘하게도, 똑같이 신대륙 소리를 듣는데도 아옌데 등의, 남미의 마술적 사실주의가 결합된 한 집안 혹은 한 사람의 연대기는 좀 더 고풍스러운 맛이 나는 것은 그야말로 내 입맛의 문제일 지 모르지만.

이 소설은, 그 묘사라든가 문체의 묵직함과 고풍스러움과 상관없이, 유럽이나 남미의 비슷한 류의 문학, 한 사람, 혹은 한 가문의 일대기를 따라가는 소설들 만큼의 묵직한 메시지를 담고 있지는 않다. 다만, 흩어지는 것들의 아쉬움, 흘러가는 세월의 무상함, 아버지 리앤더로 상징되는 지나간 좋고 아름답고 쇠퇴하는 시절과, 두 아들, 모지스와 코벌리가 도시에 나가면서 도래하는 새로운 시대, 현대적인 시대의 대비를 담으며, 한 시대의 흐름을 한 집안을 통해 조용히 보여주려 한 시도만은 알겠다. 이제, 아들들이 도시로 나가며 문체는 조금 전까지의 고풍스러운 맛을 버리고, 하드보일드하다싶게 건조하게 바뀐다. 번역의 힘일까? 설마, 번역만으로 이정도의 메시지를 담지는 못할 것이다. 문체의 변화만으로도 시대의 흐름을 느끼게 하는 것은, 아마 원작의 힘일 것이다. 그 건조한 문제와 함께, 사람들은 도시로 나오고, 인간관계에서 단절을 느끼며, 쓸데없는 낭만들은 지난 시대의 일로 여겨지며 그 힘을 잃어간다. 그리고 왑샷 가문은, 그 연대기라 불러도 좋을 만한 번성을 이루어간다.

하지만 당연하게도, 그 옆에 꽂혀 있는 왑샷 가문 몰락기가 있는 한 이 책 후반에서 절정 찍고 꺾어지리라는 것 정도는 책 등만 봐도 알 수 있었다는 것이 문제. 하지만, 구세대가 몰락하고 새로운 가치가 도래한다는 이 이야기, 어쩐지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를 다시 읽고 싶어졌다. 이 책을 읽은 것이 결혼식 며칠 전이라, 하도 정신이 없어서 – 독후감을 쓸 정신도 없었더래서 – 당분간은 좀 기다려야 할 것 같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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