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읽기-077] 밤으로의 긴 여로 (유진 오닐) 민음사 세계문학 69

밤으로의 긴 여로

유진 오닐에 대해 내가 알고 있는 것은 불행히도 대단히 단편적이었다. 아서 밀러와 함께 미국 희곡계의 양대 거목이라는 사실과, 50대였던 찰리 채플린이 유진 오닐의 십대 딸과 결혼했다는 가십 정도(이걸 책속의 책에서 읽었던가…..). 이 희곡도 제목만 들어보았을 뿐이다. 부끄러운 일이다.

작가는 한 번은, 자신의 삶을, 젊은 시절을, 자신의 어린시절과 가족들의 이야기를 쓰게 되어 있다. 부끄럽고 피맺힌 고백. 가족사의 비밀과 비극, 미운오리새끼같은 시절을. 그것을 발표하였느냐 발표하지 않았느냐의 차이일 뿐, 누구나 한 번은 거쳐가는 과정. 설령 퓰리처상을 네 번이나 받고 노벨 문학상까지 받았다 해도, 유진 오닐의 삶은 고독했고 가족사는 지난하기 이루 말할 수 없었다. 그 가족사를, 그 근원이자 뿌리이고 알파며 동시에 그에게는 오메가였을 부모형제와의 이야기를, 그가 쓰지 않고 어찌 견뎠으랴 싶고, 무대에 올리지 말아달라는 그의 부탁 역시 이해가 갔다. 글로써 서술하는 것과, 그것이 피와 살을 가진 사람의 모습을 하고 움직이는 것은 또 다른 이야기. 등장인물의 이름만 바뀌었을 뿐, 이 이야기는 유진 오닐의 가족사이자, 작가 본인이 “피와 눈물로 점철된 오랜 슬픔의 연극”이라고까지 말한 처절한 고백에 가깝다.

1912년, 티론 가의 거실에서 아침부터 밤까지 이어지는 이 하루동안, 늙은 배우이자 인색하고 땅만 사들이는 아버지 제임스와 마약에 중독된 어머니 메리, 알콜중독자인 형 제이미, 그리고 병약하고 신경질적이며 시에 재능이 있는 에드먼드(유진 오닐 본인을 모델로 함. 참고로 에드먼드는 유진 오닐의 죽은 형 이름이며, 극중에서는 에드먼드의 형제 유진이 일찍 죽은 것으로 나옴) 이들 네 사람이, 서로의 아픈 상처를 드러내는, 고통스럽고 광기어린 이야기다. 우울하고 슬픈 이 이야기에서, 아들들은 인색한 아버지를 비난하고, 알콜중독에 빠진 형은 마약에 의지하는 자신의 어머니를 마약쟁이라고 비난한다. 그러면서도, 어머니가 마약에서 벗어날 수 있다면 자기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그런 서글픈 희망에 의지하여 살아간다. 그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 제이미는 절망한다. 메리는, 웨딩드레스를 끌고 내려와 아직 행복하고 꿈 많았던 소녀시절의 환상을 본다. 수녀가 되려고 했던 처녀시절, 그리고 제임스 티론과 사랑에 빠지고 그와 결혼할 때 까지의 기억. 그 꿈에 머무른 채 어머니는 중얼거린다. “그래 기억나, 나는 제임스 티론과 결혼했었고 얼마동안은 꿈처럼 행복했었지.”

작가의 비극적인 가족사, 라는 것은.

가족신화라는 것은, 들여다보면 아프다. 아프지만, 그 사람들은 그렇게 절규하지 않고는 살아낼 수 없었던 거다. 직접 쓰지 않으면 간접적으로라도, 자신의 상처를 내보이지 않고는 견딜 수 없었다는 것이. 그럼에도, 가족의 이야기이기 때문에 발표하지 말아달라고 당부했을 그 마음이, 생각할수록 괴롭기만 하다. 그는 결국 죽은 뒤 이 작품으로 네 번째 퓰리처 상의 영예를 얻게 되었지만, 그것이 과연 그가 원한 결론이었을지는 알 수 없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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