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읽기-071] 동물농장 (조지 오웰) 민음사 세계문학 5

동물농장
동물농장
동물농장

절대 권력은 절대 부패한다.

돼지들, 특히 나폴레옹의 변화를 따라가며 생각했던 말이다. 애초에 이 소설이 풍자하는 것이 스탈린 시대의 소련이라 해도, 이 명제만은 지금의 시대에도, 그리고 앞으로의 시대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청렴할 것 같았던 정치인이 대통령이 되자마자 트러블을 일으키고, 털어 먼지 한 점 안 나올 것 같던 이도 털다보면 온갖 것들이 다 나오는. 조지 오웰의 1984가, 가상의 1984년이 아닌 지금 현재에도, 그리고 인터넷이 더욱 발달할 미래에도 여전히 적용될 이야기인 것과 마찬가지로, 이 동물농장이 풍자하는 세계 역시 그렇다.

메이너 농장의 주인 존스는 봉건 정치를 상징하는 인물이다. 농장의 주인으로 농장주인다운 행보를 하는 그는, 사악하고 가축들을 못살게 하는, 수탈자, 착취자, 봉건주의 황제적인 인물로 그려진다. 그렇다. 혁명으로 그 자리에서 끌려나간 러시아의 니콜라이 2세 황제가 바로 그의 모델이다. 그런 존스에게 수탈당하던 가축들 앞에, 칼 마르크스와도 같은 메이저의 주장이 떠오른다. 자유와 평등이 보장되는 이상적인 사회. 이 사회에 대한 논의를 모든 가축들이 다 이해할 수 있도록 쉽게 만들어본 끝에, 혁명을 의미하는 다음과 같은 중심 명제가 나온다.

 네 발은 좋다, 두 발은 나쁘다.

이제 네 발과 두 발의 영역이 어디까지인지에 대한 논의가 이어지고, 농장주 존스는 동물들에게서 쫓겨난다. 이 일을 주도한 것은 두 마리의 영리한 돼지, 스노볼과 나폴레옹. 스탈린을 모델로 한 나폴레옹과, 그에게 축출당하는 트로츠키를 모델로 한 스노볼은 일곱 계명을 만들어 모든 구성원이 평등하게 대우받는 공동체를 만든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나폴레옹을 중심으로 한 돼지들이 권력을 쥐고 지배 계층이 되고, 돼지들을 믿고 목숨바쳐 일하던 복서는 팔려가며, 양떼들은 여론을 호도하며 돼지들의 말을 절대 진리인 듯 되풀이한다. 그리고 처음의 그, 네 발은 좋고 두 발은 나쁘다는 말은 어느새 사라지고, 부패를 일삼고 여론을 호도하며 만행을 저지르는 돼지들의 모습은 점점, 그들이 쫓아낸 인간들의 모습을 닮아간다.

그러나  그렇다고 하여, 이 소설을 지금의 우리 사회에 그대로 대입해도 좋을까. 이 이야기는 스탈린주의를 풍자한 것이고, 지금은 시대가 변했다. 이 소설을 작금의 현실에 그대로 대입하다 보면 자칫 “그놈이 그놈이니 정권교체 같은 것도 필요없다. 누가 올라가도 우리 괴로운것은 마찬가지다.” 식으로 잘못된 확장이 벌어질 수도 있으니까. (그리고 현재 정권을 쥔 사람들이 원하는 해석 역시 그쪽일 것이고.) 이 이야기는, 막 왕정이 무너지고 처음으로 새로운 사상이 도입된 시대다. 당장, 민주공화정인 우리나라와 왕정인 태국만 비교해도, 어떤 정치적 사건에 대한 반응은 완전히 다르더라. 입헌군주정이 도입되고 수십 년이 지났는데도. 동양적인, 군주에게 충성하는 개념과 입헌군주정이 맞물린 그 묘한 분위기 속에서, 우리나라 역시 50년 전, 어째서 이승만이 대통령이 될 수 있었고 어째서 사람들이, 군사독재를 당연히 받아들일 수 있었는가를 생각할 수 있었다. 왕이라는 구심점이 있는 것도 아니고 머리를 잃어버린 채, 자율성을 아직 갖추지 못하고 강력한 지도자를 원하는 민중에게는 새로운 독재자가 나타날 뿐. 지금의 우리에게 있어 주의한 것은, 양떼들과 같은 여론을 호도하는 무리들일 뿐. 이미 우리는, 동물농장의 세계가 여전히 재현되기는 하되, 우리들 스스로 떨쳐낼 수 있는 세상에서 살고 있으니. 절대적인 대입은 역시 곤란하다. 그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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