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읽기-068] 폭풍의 언덕 (에밀리 브론테) 민음사 세계문학 118

폭풍의 언덕
폭풍의 언덕
폭풍의 언덕

목록을 오랜만에 들여다보다 보니, 아직도 폭풍의 언덕 감상을 안 쓰고 있었더라. 이런, 생각해 보니 정작 갖고있고 곁에 두고 자주 들여다보는 책은 자꾸 감상을 미루게되는 것 같다. 그나마 헤세의 책들은 지난번 헤세 작품들을 몰아 읽을 때 같이 썼지만, 폭풍의 언덕은 괜히 뒤로 미루고 미루고 하다가 여기까지 온 것 같다.

폭풍의 언덕은.

단언하건대 내가 좋아하는 단 한 편의, 유일무이한 로맨스 소설이다. 나는 지금까지 이보다 더 나은 로맨스를 보지 못했고, 내 영혼을 그야말로 뒤흔들어놓은 로맨스 소설은 이게 유일무이, 오직 하나, 정말로 이것 뿐이다. 내가 제인 오스틴의 작품들을 얼마나, 그야말로 “숙제하듯이” 읽었는지 아는 사람은, 내가 그쪽 관련 일을 하게 되었을 때 조차도 한국산 로맨스 소설들을 얼마나 “의무적으로” “세금내듯이” 읽었는지 아는 사람은 이해할 것이다. 물론, 그런 만큼 이 폭풍의 언덕이 일반적인 로맨스의 상궤를 벗어나 있다는 것 또한 사실은 사실. 내게, 좋아하는 로맨스 소설 없느냐, 책 좋아하면 제인 오스틴 작품들은 어떻느냐 물어보셨던 H사의 팀장님께서는, 내가 “폭풍의 언덕”을 좋아한다고 하자 대놓고 한숨을 쉬셨으니, 이 책에 분명 영혼을 뒤흔들 격정이 내재되어 있는 것은 사실일지라도 로맨스로서는 보통에서 좀 한참 벗어나있는 게 사실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캐서린의 무덤을 파헤치던 히스클리프의 그 광기는, 처음 읽었던 열한 살 때 부터 2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선명한 이미지로 남아 있어서, 지금도 때때로 들여다보며 그 숨막히는 마음을, 폭풍 속에서 사랑하는 여자의 무덤을 파헤치고, 그녀의 손에 남편이 아닌 자신의 머리카락을 쥐어주는, 천국이 아니라 죽은 뒤, 그녀와의 재회를 기약하는 남자의 모습을 머릿속에 그리게 하는 것이다. 그 격정이, 비록 “정상”은 아닐지라도.

다만, 이 폭풍의 언덕은 민음사 판은 별로다. 단언하는데.  워낙 좋아하는 작품이라 몇 권을 갖고 있지만, 민음사 판은 그 중에서도 읽다가 턱턱 걸리는 느낌이 좀 심하다. 좋아하는 작품의 번역이 이렇게 턱턱 걸리는 것은, 독자이며 팬에게는 꽤 슬픈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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