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읽기-050] 벨킨 이야기/스페이드 여왕 (알렉산드르 세르게비치 푸시킨) 민음사 세계문학 62

벨킨 이야기 스페이드 여왕
벨킨 이야기 스페이드 여왕
벨킨 이야기 스페이드 여왕

벨킨 이야기는 명망높은 귀족 출신이지만 태만하고 낭만적인 문학청년 이반 페트로비치 벨킨의 원고, 라는 형태로 구성된, 다섯 편의 소설이다. 사실 읽는 내내, 이 다섯 편의 소설이 묶여있는 형태 때문에 자꾸 금오신화를 떠올리기는 했지만, 혹은 작가가 다른 가공의 작가를 설정하여 이야기를 서술하였다는 점에서 셜록 홈즈 시리즈를 떠올리기도 했지만, 이 소설은 판타지도, 모험도 아닌, 인생의 미묘한 우연과 아이러니, 그리고 뜻밖의 반전을 주로 다루고 있다. 그리고 이들 이야기조차도, 벨킨이 “주변에서 일어나거나 들은” 이야기라는 형태를 띠고 있다.

“발사”는 한 찌질하고 편협하며 질투심 강한, 그리고 자의식이 필요 이상으로 발달한 남자의 이야기다. 침울하고 독설을 뱉는, 어쩐지 소설 속의 비극적 주인공같은 인상을 지닌 실비오라는 남자는, 연대에서, 그리고 여자들 사이에서 성공을 거두는 신입 장교에게 열등감을 느껴 결투를 할 기회만 찾는다. 결국 원하던 결투를 벌이지만, 상대는 여유있게 실비오를 상대하고 그의 열등감은 더욱 심해진다. 세월이 더 지나고, 그는 다시 한 번 상대를 찾아내어 결투하지만 이때도 상대를 쏘지 못한다. 이유는 “상대의 얼굴 속에서 두려움을 보았”기 때문.

“나는 당신이 당황한 모습을, 당신이 겁먹은 모습을 보았소. 나는 당신으로 하여금 나를 겨누게 했소. 당신은 나를 잊지 못할 거요.”

승자도 패자도 없는 결투. 실비오가 정말로 백작의 얼굴에서 두려움을 읽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실비오는 이런 식으로 일방적으로 자신의 승리를 선언한다. 그야말로, 요즘 인터넷상의 찌질한 놈들이 주장하는 “정신승리”나 다름없다. 열등감을 보상받으려는 것 치고는 참으로 치조하다. 그런 실비오는, 바이런 등 낭만주의자들이 참전했던 그리스 독립 투쟁, 입실란티 봉기에 참전했다가 전사한다. 무모한 낭만은 찌질함과 다르지 않다는, 그런 현실일까.

“눈보라”는 사랑하는 연인과 낭만적인 비밀 결혼을 하려던 귀족 처녀 마랴의 이야기다. 가난한 소위 블라지미르와의 야반도주를 계획하지만, 눈보라 때문에 계획이 틀어진다. 그리고 도망치기로 한 다음 날이 되어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그러나 눈보라 속에서 마랴 가브릴로브나는 이미 운명의 장난처럼, 상대가 누구인지도 모르고 기병 대위 부르민과 결혼한 상태였다. 그리고 이 이야기는 그들의 사랑으로 전개된다. 예상치 못한 반전인 동시에, 상투적인 사랑. 프랑스 소설로 사랑을 배운 여자의 사랑다운 이야기다.

탐욕스럽고 음울한, 스크루지를 연상하게 하는 장의사 아드리얀 프로호로프가 꿈 속에서 망자들을 만나고, 죽은 자들을 통해 그동안 살갑게 대하지 않았던 딸들과의 화해를 시도하는 “장의사”는 그야말로 크리스마스 캐롤의 장의사 버전이다.  소박하며 검소한 지주 이반 페트로비치 베레스토프의 아들 알렉세이와 화려함과 허황된 지주 그리고리 이바노비치 무롬스키의 딸 리자와의 사랑 이야기를 다루는 “귀족 아가씨-농사꾼 처녀”는 여자에 관심없는 척 하지만 사실은 바람둥이인 알렉세이와 농사꾼 처녀이면서 귀족인 척 하는 리자라는 두 인물을 통해 인간의 이중성과 대립, 그리고 유쾌한 결말을 보여준다.

딸을 사랑한 아버지, 그러나 아름답고 명민하게 성장한 딸이 기병대위 민스키의 유혹에 넘어가자 절망하며 딸의 처참한 몰락을 예견하는 “역참지기”는 끈적거리고 싫었다.

“오늘은 비단에 빌로드를 두르고 있지만, 내일이면 보세요, 술꾼들과 함께 거리를 쓸고 다닐 테니. 종종 두냐도 아마 곧 파멸할 거라는 생각이 들면 어쩔 수 없이 그녀가 무덤으로 가길 바라는 죄를 짓게 되지요.”

다행히도 딸은, 아버지의 그런 저주와 달리 파멸에 이르지 않았다. 오히려 그녀는 화려한 귀부인이 되어 아버지의 무덤을 찾아간다. 역참지기가 바라보던 그림, 그의 방에 걸려 있는 아버지와 아들 그림의 결론과는 정 반대로.

벨킨 이야기와는 별도의 단편인 “스페이드 여왕”은 노름의 유혹과 출세와 돈에 집착하는 게르만과, 그를 둘러싼 당시의 인간상들을 보여준다. 확실한 승리를 보장하는 3장의 카드에 얽힌 비밀을 알아내기 위해 비열한 행동을 하고 사람이 죽었는데도 개의치 않는 그는, 죽은 부인의 바람, 게르만이 양녀와 결혼하기를 바란다는 그 소망을 무시하고 패를 쥐다가 결국 파멸하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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