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읽기-043] 구운몽(김만중) 민음사 세계문학 72

구운몽

설마 구운몽도 읽지 않고 고등학교를 졸업한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의외로 있었다. 그런데다 일본 만화나 라이트노벨, 야겜 좀 해본 친구들이 하렘물의 원조니, 동시공략이니, 8가지 타입별 모에 여캐가 나오느니 하는 소리들을 하고 있긴 한데, 사실 그 말도 아예 틀린 것은 아니다. 그런데다 이 소설을 어머니를 위로하기 위해 썼다고 하면 대체 그 어머니의 취향은?! 하고 놀라는 친구들이 있는 것도 사실일 것이고. 하지만 이 소설은 분명히 말해 유교적 공명주의와 불교적인 인연관을 함께 다룬 소설이고, 여기다가 어머니가 읽기 편하시도록 아침드라마 급 당의정을 바른 소설이기는 하되, 모에니 하렘물이니 간단히 이야기할 바는 되지 못한다. ^^ (그렇게 말하는 친구들이 다들 구운몽을 읽었고 또한 반은 농담으로 하는 말이라고 믿어 의심하지 않았는데, 실제로 읽지도 않고 오오 정말 그런거냐 하는 사람들이 가끔 있어서 충격을 받았다.)

이 이야기는 육관대사의 심부름으로 동해 용왕에게 다녀오던 불제자 성진이 돌아오던 길 여덟 선녀의 희롱을 받고, 동해 용왕의 궁에서 보았던 호사와 남아로서의 공명, 그리고 여덟 선녀의 아름다움을 생각하는 것을 두고 육관 대사가 벌을 내리는 것으로 시작된다. 그게 무슨 죄이라 하겠느냐만 불교에서는 그와 비슷한 비유가 많이 나온다. 아난이 술집 여자와 어울린 것을 두고 다른 제자가 그를 비난하자, 부처님은 아난은 술집여자와 어울린 마음을 술집에 내려놓고 왔는데 너는 여기까지 가져왔다고 언급하거나, 혹은 스님이 젊은 여자를 업어 물을 건너 주었던 것을 다른 이가 비난하자, 당신에게는 아직도 그녀가 업혀 있다고 말하거나 하는 비유. 성진의 죄는 마음이 흔들린 것이 문제가 아니라 그 마음을 내려놓지 못하고 계속 곱씹으며 온 것이요, 그 죄로 성진은 사바세계에 양소유라는 이름의 사내아이로 다시 태어난다.

사바세계의 고통을 체험하는데, 하필이면 능력과 매력, 지위, 그리고 자신을 사랑하는 수많은 여인들, 신분 높게는 공주부터 낮게는 시비나 자객, 기녀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여인들과의 사랑까지 모두 누리는 것은 어떤 의미에서는 아이러니로 보일 수도 있다. 사바세계의 고통이라고 하면 보통은 가난이나 무기력, 지금의 20대들, 88만원 세대가 느끼는 열패감, 열등의식, 그런 것이 더 어울려 보이니까. 하지만 성진은 그 모든 것을 누리고 추구하였으며 최고의 지위에 올라 아내로 두 공주를, 그리고 여섯 첩까지 거느리고, 그 많은 여자들 역시 서로 투기하지 않고 화목하게 살아가는 이상적인 상황 속에서 노년을 맞는다. 그리고 절정과도 같은 노년에, 양소유는 허무가 담긴 한 물음을 남긴다.

사해로 집을 삼고 억조로 신첩을 삼아 호화 부귀 백 년을 짧게 여기더니 이제 다 어디 있나뇨?

이에 대해, 그를 꿈에서 깨워 그저 한낱 젊은 수행자 성진으로 되돌려 놓은 육관 대사는 다시 대답한다.

一切有爲法 일체유위법
如夢幻泡影 여몽환포영
如露亦如電 여로역여전
應作如是觀 응작여시관

인생이 한낱 꿈과 같으니 그렇게 집착하고 매달릴 일이 아니라는 깨달음을 얻은 성진과 팔 선녀는, 함께 도를 닦아 극락으로 갔다는 이야기. 물론 해석하기에 따라서야 모에물이니 뭐니 할 말은 많겠으나, 일본의 겐지 이야기가 그저 겐지가 다양한 타입의 미녀 및 미소녀들과 바람 피우는 이야기…… 에 그치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로, 구운몽 역시 불교적인 관점에서 바라보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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