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읽기-076] 세일즈맨의 죽음 (아서 밀러) 민음사 세계문학 218

세일즈맨의 죽음

카프카의 변신을 읽고 얼마 지나지 않아 세일즈맨의 죽음을 읽게 되니 더 미묘한 느낌이 든다. 돈벌어오는 기계로 전락한 집안의 주수입원, 가장. 이번에는 놀고먹는 부모와 누이, 그리고 뼈빠지게 일하다 벌레로 변하는 장남까지는 아니지만, 여기서는 세일즈맨인 아버지가 바로 그 역할을 담당한다.

좋은 사람이자 유능한 세일즈맨인 윌리 로우맨. 34년동안 와그너 회사에서 일해 온 남자. 그는 가정적이고 상냥한 아내와 두 아들, 그리고 몇십년간 할부금을 부어야 하지만 여튼 내 집을 갖고 있다. 아니, 있었다. 그는 분명 그런 것들을 갖고 있었지만, 예순 세 살이 된 그는 능률우선주의자인 사장에게서 무능하다는 소리를 들으며 고정된 월급 없이 성과급만을 받고 있고, 두 아들은 빗나간다. 큰아들은 서른이 넘도록 직장이 없고 형무소에 다녀오기까지 했으며, 둘째아들은 직장은 있지만 안정된 가정을 갖지 못했다. 그 오랜 세월동안 안정된 직장, 안락한 생활, 달콤한 꿈에 젖어있던 윌리의 인생은 직장에서 해고를 당하며 순식간에 무너진다.

사람들이 흔히 갖고 있는 완벽한 행복이라는 것이란 얼마나 허약한지. 그게 얼마나, 손에 꼭 잡았다고 생각한 순간 손가락 틈새로 빠져나가는 모래알같은 허상인지. 그런 것을 보면, 차라리 명예퇴직을 당하면 닭집을 차려야 하는 것인가, 미리 다가올 불안할 앞날에 대해 당겨 생각할 수 있는 우리들은 차라리 행복한 것일까, 아니면 어차피 걱정해봐야 그 걱정과 불행이 코앞까지 다가올 것만은 자명하다면, 그냥 모르는 쪽이 나은 것일까.

여튼, 자신이 갖고 있던 행복이 한 줌어치도 안되는 허상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게 된 윌리는 부서진 꿈과 행복 때문에 괴로워하며 정신착란을 일으킬 지경이 된다. 그는 보험금이라도 남겨주기 위해 자동차 사고로 자살한다. 하지만 그래봤자, 요즘 말로 개값밖에는 되지 않는 보험금. 집 할부금은 다 갚았지만, 그 집에서 살 사람은 이제 없다. 그를 동정하고 이해하는 것은 함께 늙어온 아내 뿐이다.

그래, 그래도 당신은 예순 세 살 까지 일했지. 라고 생각하며 쓴웃음짓는 것은, 우리가 그보다도 더 살벌한 세계에 살기 때문.

당신은 어리석다, 고 생각하는 것은, 우리가 이미 그렇게 파멸한 아버지들을 보았기 때문. IMF 시대에 대학을 다녔던 젊은이들은 수많은 패배와 마주해야 했고, 그 다음 세대는 88만원 세대, 비정규직의 길을 가거나 그렇지 않으면 아예 포기하고 잉여니트가 되어갔으며, 그 다음 세대는, 겨우 초등학생 중학생의 장래희망이 공무원이나 회사원이요, 대학 수업도 제쳐두고 취업 5종세트니 공무원 시험 준비니 난리들을 치지만.

우리는 그 결말을 알기 때문이다. 사오정 오륙도.

아메리칸 드림은 끝났다. 코리안 드림도 마찬가지다. 절망어린 약삭빠름이 살아남는 시대, 소시민의 꿈은 대체 어디에 놓여야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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