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읽기-044] 영혼의 집 (이사벨 아옌데) 민음사 세계문학 78, 79

영혼의 집
영혼의 집
영혼의 집

바라바스가 바다를 건너 우리에게 왔다.

뜬금없는 한 문장으로 시작되는 이야기는, 그 한 줄의 회고, 일기의 첫 구절로 단숨에 4대 50년에 걸친 세월을 뛰어넘는다. 신여성이었던 니베아, 미래를 예언하는 영험한 클라라, 신분을 뛰어넘은 사랑을 했고 그 사랑으로 살아가는 블랑카, 그리고 새로운 민주주의의 시대와 피노체트의 쿠데타라는 역사의 소용돌이를 살아가는 알바. 그녀들의, 사위이자 남편이고 아버지이며 할아버지인 에스테반 트루에바라는 한 남자의 완고한 인생, 그리고 모계를 따라 내려가는 네 여자의 인생이 씨줄과 날줄처럼 엮이어 내려간다. 그런 점에서 이 이야기는, 여성주의 영화의 대표작으로 꼽히는 네덜란드의 영화 “안토니아스 라인”과도 그리 멀리 떨어져있지 않은 이야기다. 다만 안토니아스 라인의 그녀들이 스스로 아이 아버지를 선택하면서도 결혼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롭게 살아가며 당당하게 살아간다면, 그보다는 조금 이른 시대를 살아가는 트레스 마리아스의 그녀들은 에스테반 트루에바라는, 물론 그 시대를 감안하면 꼴통 보수라고 매도할 수 만은 없지만 가부장적이고, 자식이나 아내의 인생을 자신의 뜻대로 할 수 있다고 생각하며, 딸의 연인은 인정하지 않으면서도 자신은 들판에서 마을 처녀들을 강간하고, 나이가 들어서는 보수당을 지지하며 국회의원까지 지낸다. 그리고 그런 그와의 갈등은, 여자들에게는 고통인 동시에 삶이 되어간다.

클라라는, 자신이 그를 사랑하지 않을 것임을 알면서도 운명임을 알고 그와 결혼하고, 원래 클라라의 언니 로사와 결혼할 뻔 했으나 로사가 급사하고 몇년 뒤 클라라와 결혼하게 되는 에스테반은 그녀와의 첫날밤에 그녀를 기쁘게 해 주려 로사가 귀여워하던 검은 개의 가죽을 침실에 깔아놓는다. (그 괴악한 센스라니) 블랑카는 트레스 마리아스의 소작인의 아들이자 나중에는 좌파 혁명가수로 이름을 떨치는 페드로와 사랑에 빠지고 알바를 임신한다. 에스테반은 페드로 테르세로의 손가락을 자르고, 블랑카를 프랑스 백작과 결혼시키려 한다.  (2권에야 등장하지만) 알바는 에스테반이 혐오하는 운동권 학생인 미겔과 사랑에 빠지고, 할아버지인 에스테반이 가져다 놓은 바로 그 검은 개의 가죽 위에서 연인과 사랑을 나눈다.

딸들 뿐만이 아니다. 클라라의 두 아들들 역시, 고집센 보수주의자 에스테반과는 닮았으면서도 또한 다른 길을 간다. 굳은 의지의 소유자로 의사이자 마르크르 주의자, 그리고 살바도르 아옌데의 동지이기도 한 하이메는, 추진력은 에스테반에게서 물려받았으되 자유를 추구하는 그 영혼과 사람들을 사랑하는 마음은 클라라에게서 배웠을 것이다. 니콜라스는 클라라의 영험함과 정신적인 면을 닮았고, 요가나 영적인 문제들을 깊이 공부한다. 어느 쪽이라도, 에스테반으로서는 답답했을 일이다.

1권까지는, 아직 한 가문의 연대기에 불과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설적인 재미와 남미 문학 특유의 마술적 리얼리즘 때문에 책을 손에서 놓을 수가 없을 정도다. 2권의 그 폭발력과 흡인력을, 그리고 알바에게 이어진 그 모든 성격과 핏줄의 이야기를 하기 위해 여기까지 차곡차곡 이야기를 쌓아왔는가 하고 몇 번이나 감탄했다. 그리하여서, 모든 것이 클라라의 그 일기로 돌아가는 이 이야기는.

블랑카는 아버지가 시키는 대로 프랑스 백작과 결혼하지만, 백작은 사실 변태성욕자였다. 완고한 에스테반의 “성”에는 조금씩 균열이 일기 시작한다. 두 아들들 역시 뜻대로 자라지 않는다. 그와 같은 보수주의자이기는 커녕, 한쪽은 의사가 되었으면서도 자기 먹고 살 일을 생각하기보다는 늘 민중의 일을 생각하는 사회주의자고 다른 한 쪽은 신비주의에 몰두한다. 사실 보수당 상원의원인 에스테반의 입장에서는 답답해서 견적도 나오지 않을 상황이다.

생각해 보면, 이 나라의 역사가 그렇기는 하였지만 이 책….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제레미 아이언스 주연의 영화를, 역사적 배경 없이 그냥 좋다고 권했던 나의 중, 고등학교 때 선생님들은 과연 이 나라 역사를 알고서 권한 것인지, 아니면 읽어보거나 영화를 보고서 권하기는 했던 것인지 참 의문이다. 그때까지만 해도, 지금 나랑 어울려 노는 대딩이들은 상상도 못 할 만큼, 9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공산주의=나쁜 것 이라는 식으로 가르쳤으니까. (일부 운동권 출신 선생님들 제외하고) 뭐, 그 와중에도 머리 좀 굵었다는 애들은 체 게바라니 파리 코뮌이니 떠들어대면서 낭만을;;; 꿈꾸는 헛짓거리들을 하고 있었고.

나는? 그런데서 낭만을 찾지는 않았다. 한국 상황이 이 지경이니 공산주의에 대해 입도 뻥긋 못 해도 이탈리아에서는 공산당이 멀쩡한 정당 중 하나로 있었다는 것도 알고 있었고. 무엇보다도 “신부님 우리들의 신부님”같은 불온서적(?)이 멀쩡하게 초등학교 도서관에 꽂혀 있던 걸. 다만 고등학교 때 부터 체 게바라가 급속도로 유행하는 것을 보며, 그게 교과서라든가 그런 데 상당히 나쁜 놈으로 나오는 피델 카스트로와 한통속이라는 점을 상기하며, 혁명도 얼굴빨이라는 생각을 좀 하긴 했다. 고등학교 때 문집을 갖고 있는데, 거기다가 파리 꼬뮌의 한마리 비둘기 운운하던 녀석은 지금 그거 읽으면서 이불에다 하이킥 하지 않으려나 몰라. (먼산)

여튼, 사회주의나 공산주의에 대한 반감이 아니라 이걸 권하던 교사들에 대한 의문을 잠시 품으면서. 아니, 그때는 민중 운운하는 것도 위험하다는 듯이 굴던 선생님들 꽤 많았다니까. 정말이라고요. ㅎㅎ 민주주의의 반대는 공산주의가 아니다. 공산주의의 대립어가 자본주의겠지, 아마. 공산주의에 종종 세트로 묶여 다니는 것이 사회주의고. 민중 운운하며 선거를 통해 사회주의 정부를 세운 아옌데와, 박정희를 존경한다는 소문이 있는 군사독재의 달인, 동시에 요즘 MB님이 좋아하시는 신자유주의 경제학을 바탕으로 17년동안 독재정책을 펴며 반공주의를 강조한 피노체트. 1990년대의 교사들이, 아옌데와 피노체트, 라는 두 사람의 이름을 떼어놓고 “사회주의 정부를 세운 정치가”와 “사회주의 정부를 몰아내고 반공을 국시로 한 정치가”라고 놓았을 때 누가 낫다고 했을지는 좀 의문이 든다. (사실 난 대부분의 교사의 지성이라든가 자질에 대해 회의적이다. 당신은 혹시 환빠 국사교사를 만나본 적 있는가? 아니면 윤리교사가 여자애들 허벅지 만지는데 혈안이 되어있는 것은? 오죽하면 그 윤리교사의 별명이 윤락이었다, 윤락. 평균적으로 괜찮았던 분들은 이과 과목 선생님들.)

여튼, 블랑카의 연인이자 알바의 친아버지인 페드로는 혁명가수로 이름을 떨치고, 알바는 자라 사회주의의 힘을 믿는 운동권 학생 미겔과 사랑에 빠진다. 그런 그녀들과, 하이메는 아옌데를 지지한다. 사회주의자인 아옌데가 집권하자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그 전복을 꾀하는 보수당의 골수세력인 에스테반과는 아예 길을 달리한다. 미국은 칠레가 제 2의 쿠바가 되는 일을 막기 위해 원조를 끊고(사회주의 집권기에 경제가 어려웠다는 것은 미국쪽의 농간이 크다) 그리고 마침내 피노체트의 구데타가 일어난다. 알바에게 자신의 이상을 불어넣던 숙부 하이메는 대통령궁으로 달려가지만, 아옌데는 최후까지 저항하다가 소총으로 자살하고, 하이메는 행불자 처리되며 고문으로 목숨을 잃는다. 알바는 미겔을 숨겨준 혐의로 체포되고, 감옥에서 강간을 당하는 등 고난을 겪는다. 그 고난의 뒤에는 바로 에스테반 가르시아, 에스테반 트루에바가 젊었을 때 강간한 처녀의 손자로, 트루에바 가문에 대한 복수심을 품고 있는 남자가 있었다.

상원의원이었지만 이제는 힘을 잃은 에스테반은 예전에 자신이 알고 지내던 창녀였지만 지금은 고위층에까지 두루 힘을 쓸 수 있을 만큼 출세한 트란시토 소토의 도움을 받아 알바를 구해낸다. 그는 알바에게 지나간 죄를 모두 고백하고, 트레스 마리아스로 돌아와 클라라를 그리워하며 숨을 거둔다. 알바는 클라라의 일기를 펼치며, 가문의 지난 세월을 돌이켜본다. 그 클라라의 일기에, 바로 그 말이 있다.

바라바스가 바다를 건너 우리에게 왔다. 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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