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허 – 스콧 스미스

폐허
폐허
폐허

범죄를 무서워하고 광우병을 무서워하고 있지만, 이유없는 공포가 사실은 제일 무섭다. 읽는 내내 우리집 아래 화단에서 자라는 나팔꽃 덩굴이 덤빌 것 같아서 계속 섬찟했다. 언제 어디서 덩굴이 날아와 발목을 감을지 모른다는 것이.

남의 말이라고는 죽어도 안 들을 것 같은 두 쌍의 미국인 커플이 여행지에서 그리스인과 독일인과 친구가 되었다가, 독일인의 동생이 웬 여자를 따라 폐허 발굴현장에 간 것을 찾아 함께 정글로 떠난다. 불길한 징조는 몇 번이나 있었다. 제물로 바치려는 자들과 막으려는 자들이 언쟁을 벌였다. 그러나 그런 모습을 사진으로 찍겠다며 구도 잡는다고 뒤로 물러서다가 그만 언덕에 발을 들여놓아, 그 덩굴에 발목이 휘감긴 순간 그들의 운명은 결정되었다. (사실 덩굴 입장에서도 간만 보고 뺏기는 것은 곤란하지 않겠는가. -_-+)

버려진 텐트, 뼈가 발라진 시체. 그리고 도망가지 못하게 총을 겨누는 원주민들. 이때 어디선가 휴대전화 소리가 들린다. 희망을 갖고 찾으려 하지만 소용없다. 그리고 그들은 곧 이 주변의 덩굴들이 단백질을 분해하는 강력한 효소를 분비하고 있으며, 이곳에 올라온 사람들을 죽여 잡아먹을 것이며, 휴대전화 소리조차도 이 식물들이 흉내내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닫고 경악한다. 덩굴은 사람의 몸 속에 들어가 꿈틀거리고, 잠자는 사이 질식사시키며, 자신의 연인이 독일인과 정사를 나누는 소리를 위장하여 질투와 분노를 유발시킨다. 그리고는 그들의 일행이 조금 전 숨이 끊어졌다고 조롱하듯 독일어로 떠들어대기까지 한다. 죽은 동료의 시체를 담아 둔 슬리핑백으로 기어들어가 꿈틀거리는 것은 기본이다.

훤한 낮에 읽었으니 망정이지, 밤에 읽었으면 대단히 무서울 뻔 했다.

일행 중 한 명도 살려두지 않은 것도 마음에 든다. 그랬으면 아마 더 찜찜했겟지. 이유를 알 수 없는 초자연적인 공포 속에서 미쳐가는 모습들이, 결국은 자해를 하고 상대를 죽이는 과정들이 오싹하다. 영화화 된다고 하는데, 아무래도 영화 쪽은 한 명쯤 살려두지 않을까 싶어서 걱정이 될 정도로 마무리가 좋았다. 자해하고 갖은 지랄을 떨며 나중에는 연인을 의심해대던 미국인(그 부상을 입은 주제에 오래도 살아남았다) 이 일찍 죽었다면 일행이 조금 더 오래 버틸 수 있지 않았을까(적어도 그리스인의 동료들이 올라오는 것을 막을 수라도 있지 않았을까) 싶은 생각이 들더라.

Leave a Repl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