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읽기-010] 주홍 글자(너새니얼 호손) 민음사 세계문학 159

주홍 글자

주홍 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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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젊은 부인이 사생아를 낳는다. 원래 간음은 극형으로 다스리게 되어 있었지만, 2년동안 소식이 없는 남편이 아마도 조난당해 사망했을 것으로 추정하여 부정함의 표지신 주홍빛 A를 가슴에 달고 치욕을 당하며 살아가라는 명령이 내려진다. 조난을 당하고 인디언들 틈에서 살아가던 남편이 돌아온 것은 바로 이 때였다. 그는(헤스터의 남편 이름은 끝까지 나오지 않는다.) 로저 칠링워스라는 가명으로 마을에 정착하며, 본래 갖고 있던 의학 지식에 인디언에게서 배운 약학을 더하여 의사 노릇을 하고 살아간다.

 “나같이, 사색을 즐기는 사람이, 여러 훌륭한 도서관에서 살아가는 책벌레에 지나지 않는 사람이, 지식에 굶주린 꿈을 꾸느라고 가장 좋은 세월을 허송하다가 이미 시들어 버린 사람이, 당신처럼 젊고 아름다운 여자와 무슨 연분이 있었겠소! 태어날 때부터 불구인 내가 타고난 지적 능력을 사용하여, 내 육체적 결함을 젊은 여자의 환상을 통해 감추어 보려고 한 게 얼마나 부질없는 망상이었는지! 세상은 참으로 재미가 없었소! 내 가슴은 많은 손님을 맞아들일 만큼 컸지만 외롭고 싸늘했으며, 아늑한 화롯불 하나 없었소. 하지만 난 거기에 불을 피우고 싶었소! 그리 엉뚱한 꿈은 아닌 성싶었지. 비록 늙고 성격이 침울한 데다가 불구이기는 했지만, 사방에 넓게 흩어져 있어 인간이라면 누구든 주워 모을 수 있는 그 소박한 행복을 나도 얻을 수 있으려니 했었소. 헤스터, 그래서 난 내 가슴속에서도 가장 깊은 방으로 당신을 끌어들여 당신이 있음으로 해서 생긴 포근한 온기로 당신을 따뜻하게 녹여 주려고 했던 거요! 잘못을 먼저 저지른 쪽은 나요. 마치 꽃봉오리 같은 당신의 청춘을 꾀어 이미 시들어 버린 나와 위선적이고 부자연스러운 관계를 맺게 했으니.”

배신당한 남편은, 자신의 아내를 유혹하여 사생아를 낳게 한 간부를 용서할 마음이 없다. 그는 아이의 성정은 부모에게서 온다고 말하며, 펄의 성격에서 헤스더의 성격이 아닌 부분을 가진 남자를, 성자처럼 보이지만 이해할 수 없는 열정을 가진 젊은 목사를 지목하고 그 곁에 머무르며 조금씩 피를 말려 간다.

사랑하지 않았던 남편이 돌아왔다. 그 사이에 그녀는 젊은 목사를 사랑하고, 아이를 가졌는데. 그런데다 그녀는 원치 않았던 결혼 대신 자신이 선택한 그 남자를 진심으로 사랑하고 있다. 가슴에 주홍글씨를 달고 살아가게 된 지금에 와서도.

 “우리들이 저지른 일에는 그 나름대로 신성함이 있었어요. 우리들 자신이 그것을 느꼈잖아요! 우린 서로에게 그렇다고 얘기했었지요! 당신은 그것을 잊으셨나요?”

감옥에서 나오는 그 순간에도, 자신의 재능인 자수로 화려하게 수놓은 주홍 글자 A를 가슴에 달고 귀부인처럼 당당하게 사람들을 돌아보고, 자신의 손재주로 남자 없이도 자신과 아이를 부양하며, 자신이 아닌 다른 사람들을 돌보고 가장 어려운 이들에게조차 멸시를 받으면서도 자선을 아끼지 않는 헤스터 프린. 그녀는 처음에는 간음(Adultery)한 여자가 아닌 유능(Able)한 여자, 가난하고 병든 이들에게 도움을 주는 여자로 알려지게 된다. 그녀는 자신의 여성성으로, 자신의 능력으로, 그리고 아이 아버지의 이름을 밝히지 않고 스스로 모든 죄를 쓰고 서 있는 용기로 죄 지은 이들에게 굳게 닫힌 청교도 사회에 정면으로 도전한다.

그런 그녀가 두려워하는 것은 청교도인 이 도시의 높은 분들이 아이를 빼앗아가는 것, 그리고 자신의 남편, 지금은 로저 칠링워스라 불리는 그 남자가 결코 자신과 아서 딤스데일을 놓아주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 그리고 섬세한 딤스데일의 양심을 괴롭히는 딤스데일이 그를 조금씩 죽음으로 몰아가는 것을 알고, 헤스터는 (아마도 그들이 예전에 밀회했을 법 한 그 숲에서) 딤스데일에게 칠링워스가 자신의 남편이라는 사실을 밝힌다.

“그 사람의 복수야말로 내 죄보다도 더 무서운 죄요. 냉혹하게도 그 사람은 신성한 인간의 마음을 범했소. 헤스터, 당신과 나는 그런 짓을 한 적이 한 번도 없었소!”

성자처럼 보이는 딤스데일. 사람들에게, 노부인들과 젊은 처녀들에게, 나이 지긋한 신사들에게, 거룩한 목사로 존경받는 그야말로 따지고 보면 이 이야기 전체의 원흉이라 할 만 하다. 그는 두려움에 헤스터의 죄를 나누어 지지 못했고, (헤스터야 남편을 사랑하지도 않았고 2년이나 소식이 없었으니 그렇다고 쳐도) 신성한 결혼을 존중해야 할 목사로서 유부녀와 간음하였으면서, 그 남편 되는 이의 복수에 대해 위와 같이 반응한다. 솔직히 말하면 입을 찢어놓고 싶게 한심했다. 어찌 보면 그가 먼저 칠링워스의 마음을 범한 셈인데도. 언제 읽어도 찌질한 남자로구나 하고 한숨을 쉬며, 숲 장면을 읽어나간다. 이곳에서 몇십 마일만 가면 청교도의 윤리관과는 다른 사람들(인디언 등등)이 있고, 그렇지 않으면 바다 건너 영국으로 가도 된다. 어디든 좋으니 헤스터는 함께 떠나자고 한다. 가슴에 달고 있던 주홍빛 A를 떼어버리고 이제야 자유로운 몸이 되었다는 듯이. 하지만 두 사람의 아이인 펄은 주홍 글자를 달지 않은 헤스터를 거부하고, 브리스틀로 떠나려 한 그 배에는 로저 칠링워스도 동행하려 든다. 어디까지나 죄의 그림자를 떼어놓을 수 없다는 듯이. 그리고 양심의 가책으로 쇠약해진 목사는, 처음에 어린 펄을 안고 헤스터가 올랐던 그 처형대 위로 올라가 자신의 죄를 고백하고, 펄과 헤스터의 손을 잡은 채 숨을 거둔다. 중간에 칠링워스가 목사의 가슴을 풀어 보았을 때, 그리고 마지막 장면으로 볼 때, 옷깃에 가려져 있을 뿐 목사의 처절한 양심과 죄의식은 그대로 그의 몸에 흔적을 남겨 A의 형태가 되었을 것임을 짐작할 수 있다.

복수 때문에 스스로 악마가 되어버린 남자. 그리고 죄에 쫓기면 쫓길수록 더욱 감동적인 설교를 하고, 그럴수록 괴로워하다 숨을 거둔 남자. 두 남자 모두, 여성으로서도 인간으로서도 강한 헤스터에게는 어울리지 않는 이들이었다. 죄는 두 남자를 그렇게 파멸로 몰아넣었다. 하지만 죄로 인해, 자신을 낮추고 오히려 다른 이들을 돌보며 한결같은 선행과 굳은 의지로 살아가는 헤스터는, Able, Angle의 A라는 말까지 들으며 그 죄로 인하여 오히려 자신을 구원한다. 음울한 청교도의 도시에서 벌어진 하나의 사건이 부른 파멸과 구원. 어느 쪽이라 해도, 신이 아닌 인간이 택한 일이다.

구원은 신이 아닌, 인간에게서 온다.

칠링워스는 목사의 죽음 이후 삶의 의욕을 잃었다가 숨을 거두고, 그의 유산은 모두 펄이 물려받는다. 딸과 함께 멀리 떠났던 헤스터는 나중에 홀로 돌아와, 다시 여자들의 상담을 하고 사람들을 도우며 살아간다. 어떤 면에서 이 소설은 19세기 페미니즘 문학이고, 청교도 시대를 배경으로 하면서도 더없이 인본주의적인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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