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읽기-007] 달과 6펜스(서머싯 몸) 민음사 세계문학 38

달과 6펜스
달과 6펜스
달과 6펜스

베토벤을 모델로 한 “장 크리스토프”가 전기가 아니듯이, 고갱을 모델로 한 “달과 6펜스”역시 전기는 될 수 없다. 그 사람 삶을 모델로 하였으되, 실제와는 다르다. 이 말로 이야기를 시작하는 것은 예전에 이 이야기의 모델이 고갱이라고 했더니 다짜고짜 고갱을 비난하는 사람도 본 적 있어서다. 그럴 이유 없다. 그래서도 안 된다고 생각하고.

아내와 두 아이들과 비교적 유복하게 살고 있던 평범한 증권 거래인 스트릭랜드는 어느날 그림을 그리기 위해 가족을 버리고 집을 나간다. 이 이야기의 전반부는 바로 아내를 버리고 간 스트릭랜드의 이야기, 중반은 스트릭랜드가 자신을 도우려 한 동료 화가 스트로브의 아내 블란치를 유혹하고, 그녀의 누드화를 그리고 떠나버리며 블란치가 자살하는 과정, 후반은 타히티로 떠난 스트릭랜드가 원주민 여자 아타와 결혼하여 행복을 찾았으나 문둥병에 걸리고, 오두막집의 벽에 그의 전 생애를 쏟아부은 듯한 걸작을 남기고 숨을 거두기까지의 이야기로 구성되 있다. 이 과정을, 작중 화자는 처음에는 스트릭랜드 부인의 부탁을 받아, 그 다음에는 스트로브의 지인으로서, 스트릭랜드의 마지막 역시 타히티에서 그의 임종을 지킨 닥터 쿠트라의 입을 통해 관찰하거나 이야기를 전해들은 것을 담담하게 풀어낸다. 그야말로 죽은 뒤 유명해진 화가 스트릭랜드의 생전의 모습을 사람들에게 전하려는 듯이.

전반부의 인물들, 스트릭랜드 부인이나 그 친척들은 그가 본래 속해있던 안정적이고 유복한 삶의 이면인 속물화된 모습들을 집중적으로 보여준다. 2류 문인들과 친교를 맺으며 예술을 이해하는 듯한 모습을 보여주던 스트릭랜드 부인은 그가 여자와 바람이 난 것이 아니라 그저 그림을 그리기 위해 집을 떠났다는 말에 순식간에 그를 포기해 버린다. (즉 그녀는 예술의 이해자가 아니라 겉치레로 여겼을 뿐이다.) 그러나 그녀는 스트릭랜드가 유명해지자 자신이 그의 아내였음을 자랑스럽게 여기며 그 복제화를 집에 걸어두기도 한다. 심지어는 스트릭랜드가 타히티에서 만난 아내, 아타와 그 아이의 그림을.

중반부의 스트로브는 명작을 알아보는 눈은 있었으나 자신은 범속한 것 밖에 그릴 수 없었고, 그 아내인 블란치는 관능만을 추구하다가 자살로 생을 마감한다. 작중 화자가 만난 다른 인물들 역시, 진짜 “부름”을 받듯이 찾아오는 어떤 정열, 혹은 자신의 진짜 소명을 따른 이들을 비웃고 조롱하며, 틀에 박힌 속물적 삶에 만족한다. 이런 사람들, 돈의 속물적 속성이 드러난, 현실적인 입장에서는 이 길이 일단 맞지만 좀 더 높은 곳에서 내려다보면 가장 적은단위인, 6펜스짜리 동전들과도 같은 이 사람들에게서 벗어난 스트릭랜드는, 모양만으로는 비슷하지만 그들의 손이 닿지 않을 어떤 높은 경지에 매달려 있는 달을 향해 손을 내민다. 그의 손이 마침내 닿은 곳이, 타히티였다. 문명과 속세의 때가 덜 묻은 곳. 이 곳에서 원주민 여인 아타의 헌신적인 사랑을 받지만, 그는 문둥병에 걸리고 자신의 죽음과 직면하게 된다.

그리고 죽음 앞에서도, 실명 앞에서도 그는 포기하지 않고 오두막집에 벽화를 그렸다. 예술을 모르는 닥터 쿠트라조차도 감동할만한 그림. 그런 그림을 그려놓고도, 그는 자신이 죽은 뒤 벽화와 함께 집을 태워달라고 유언한다. 그가 죽은 뒤 마침내 그를 인정하고, 그의 그림에 어마어마한 가격을 매겨 거래하는 모든 이들을 조롱하듯이. 그리고 이 과정은, 그가 한 화가로서 어떤 경지를 이룩한 것인 동시에, 도에 이르는 길과도 일맥상통한다. 왕자로 태어났던 싯다르타가 부와 영광을 버리고 구도의 길에 이르는 과정, 이기적이고 헛된 꿈에 사로잡힌 것 같지만 그렇게 솔직하게 자신의 세계를 버리고 자신의 꿈을 좇는 과정을 통해 보여주는 것은, 현실과 이상, 차안과 피안, 구질구질한 현실과 정신의 승리. 가족을 버리고, 한 여성이 자살했음에도 죄책감을 갖지 않는 스트릭랜드의 모습이 비록 우리가 생각하는 “훌륭한 사람”의 모습과는 한참 떨어져 있다고 해도, 이 이야기는 고갱을 모델로 한 어떤 유사 전기적인 소설이 아니라, 도에 이르는 여정과, 그 깨우침에 대해 범속한 이들이 받아들이는 모습을 그린 하나의 우화로써 보아도 좋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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