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NS는 거대한 학교

십대 말에서 이십대 초반은 나우누리가, 이십대 후반은 이글루스가 함께했다면, 삼십대는 트위터와 함께 하고 있다는 느낌이다. 개인 블로그가 생각을 쌓아놓는 일기장의 역할을 하고 있다면, 이와 같은 SNS는 어떤 의미에서 거대한 학교다.
 
사람의 생각은, 사상은, 지식은, 어릴때 가정에서 형성된 기반에 학교에서 쌓아올린 것들, 그리고 사회생활 초반에 경험한 것들에 의해 방향성이 결정되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얼마 전 트위터에서, 내가 첫 직장을 다니던 어느 날, 어느 달인가에 그 달의 10일이 되도록 책을 한 권도 안 산데다, 집에 오자마자 가방을 던져놓고 개그콘서트의, 조금이라도 생각이 있다면 눈살을 찌푸렸을 만한 개그를 보며 낄낄 웃다가 문득 정신을 차린 이야기를 했는데, 그랬다. 그렇게 일상에 지쳐 더 읽고 더 생각하려는 끈을 놓아버리면, 인간의 성장은 거기서 멈추는 게 아닐까 생각한다. 그렇다고 혼자의 생각만으로 자라다 보면 자칫, 굽어버린 채 그대로 자라 결국 제 살을 파고드는 새의 발톱처럼 단단한 아집에 빠졌을 것이고. 피곤해도 사람을 만나고, 새로운 생각과 부딪쳐야 했을 것이다. 예전이라면 독서 모임이라도 나가거나 하면서.
 
SNS는 그렇지 않다. 직접 사람을 만나지 않지만, 계속 새로운 생각들과 만난다. 그 만남이 없었다면 내가 생각하는 인권이란 학교에서 가르친 내용에서 업데이트가 되지 않았을 것이요, 좀 더 다양한 클래식 음반을 찾아서 들을 생각도 하지 못했을 것이며, 외국의 멋있는 정치인에 대해서도 알지 못했을 것이다. 무엇보다도 나는, SNS를 통해 알게 되고 더러는 맞부딪치거나 더러는 비슷한 주제로 이야기를 하며 가까워진 사람들 중 정말 멋있고 존경할만한 사람들을 많이 보았다. 오프라인으로 만나 이야기를 나누면서 그런 마음이 더 커지기도 했다. 그 분야의 전문가에게 직접 질문을 하고 답변을 듣는 일도 있었고, 비슷한 일을 하는 사람을 만나 정보를 공유하게도 되었다. 세 사람이 모이면 그 중에는 내 스승이 될 만한 사람이 있다는 말은, 그렇게 모니터 너머 다양한 사람들과 교류하게 되면서야 비로소 이해하게 되었다.
 
내 발톱은 계속 자라고 있지만, 그 발톱은 사람들과 함께 덕질하며 땅을 파거나 서로 맞부딪치며 적당히 닳아져서, 구부러져 나를 찌르지 않은 채 적당히 계속 다듬어지고 있다. 멈추지 않은 채로. SNS는 그런 점에서 새로운 키워드를 계속 제시하는 의욕 넘치는 젊은 선생이자, 아집에 고꾸라지지 않게 붙잡아주는 학생주임이기도 하다. 물론, 그 학교에서 만난 친구들의 대부분은 함께 떠들썩하니 즐거운 미친 자들이지만. 🙂

지금 상태로 죽으면 좀 곤란해서

연초부터 마치 복선처럼 상수도가 나가고 화장실에 불이 나고 하다못해 우리 리지(가 아니라 작업용 컴퓨터)도 사망하고 난리가 나는 가운데 저는 계속 몸이 안 좋았어요. 마치 온 우주가 전력으로 저의 마감을 방해하는 것 같았습니다. 그러던 중 월요일에는 피가 쏟아져서 급히 병원에 가기도 했고, 2주쯤 뒤에도 상태가 이러면 당일 입원 혹은 1박2일 입원해야 할 수 있으니 시간 빼놓아라, 그런 이야기를 하고 왔어요. 그런 이야기를 달이슬 쇼핑몰 사장님과 하다가 한의원을 한군데 소개받았어요. 산후에 일어나는 많은 문제 대해 정말 잘 하시는 곳이라고. 갈까 말까 긴가 민가 하다가 오늘 새벽, 저는 글쓰다 죽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어요. 뭐, 물론 작가의 로망 중에는 글쓰다 죽는 것도 있다고는 하지만 그런건 인생의 대작을 쓸 때의 일이고 제가 그때 쓰던 건 시험삼아 써 보던 로맨스…… 가 아니라 에로소설이었다는 것이 문제였죠.

갓뎀. 이런걸 유작으로 남길 수는 없어서 필사적으로 살았습니다. 음.

아직 꼬꼬마의 어린이집 적응이 덜 끝났지만, 그래도 꼬꼬마가 얌전한 편이라 아침에 꼬꼬마를 어린이집에 맡겨놓고, 그 한의원에 갔어요. 구를 몇 개나 넘어서, 아예 시 경계를 넘어가서요. 갔고, 다이어리의 달력을 펴놓고 이야기를 하다 보니 글을 쓰는 것은 물론 이런저런 공부를 하는 것까지 들통났고, 복직을 해야 한다고 고백도 했고, 혈압을 재고 진맥도 하고 침도 맞았어요. 아, 그렇지. 머리에다가도 침을 여러개 꽂았는데 상큼하게 자극이 되어서 거기 누워서 마음을 비우진 못할 망정 새 스토리를 떠올리며 혼자 미친년처럼 낄낄거렸다는 것이 문제입니다. 식생활에 대해 말씀을 듣고, 책도 두 권 선물받았어요. 그건 그렇고 “하루에 한두시간 햇볕을 쬐라”고 하셨는데 저는 햇볕이라고 하시길래 “비타민 D 매일 먹는데요.”라고 대답해 버렸습니다. 의도하진 않았는데 한의사 선생님의 동공지진을 볼 수 있었어요. 약을 짓고, 아마도 약 다 먹으면 또 가 봐야겠죠. 산부인과에 2주 뒤에 가 본 뒤의 경과도 보고하기로 했습니다.

이렇게 살면 죽을 것이며 고기도 줄이고(특히 치맥) 초콜릿도 끊고 현미에 나물만 해서 먹어야 한다니, 그냥 치맥과 초콜릿을 먹으면서 “어떻게 하니, 나 죽는단다.” 그럴까 좀 생각을 했는데 제겐 써야 할 것도 많고 낳아놓은 책임을 다하기 위해 앞으로 자살같은 것은 하지 않기로 결심하게 만든 꼬꼬마도 하나 있으니 어쩔 수 없겠네요. 세이가 오늘은 반가를 달고 나와서 꼬꼬마를 집에 데려다 놓았다길래, 저는 안심하고 알라딘 헌책방과 교보와 영풍을 돌며 방탕하게 돈을 쓰고, 침 맞으며 떠올린 아이디어를 모 팀장님께 썰을 풀고, 종로에 간 김에 영풍에서 길 하나 건너면 있는 재담미디어에 커피를 들고 놀러갔다가 존잘님의 블로그를 소개하고, 집에 와서 쉬었습니다. 아니, 쉬려다가 우리집에는 현미도 없고 나물도 없어서 장을 보러 나가야 하나 고민하다가, 냉장고를 박박 긁어 풀처럼 생긴 것은 모조리 넣고 데쳐서 참기름과 간장 좀 쳐서 볶아버렸습니다. 여튼 아무리 글쓰다 죽는 게 작가의 로망이라고 해도 지금은 곤란하죠. 일단 에로소설을 쓰다가 죽으면 어떻게 눈을 감을 것이며, 여기서 죽으면 끌어내기도 힘들어요, 사방이 책이라서. 그리고 꼬꼬마가 적어도 고등학교 졸업할 때 까지는, 살아야 하니까 힘을 내 보겠습니다. 음.

누군가에게 일을 소개해 줄 때

조금씩, 내 일이 아닌 일거리들이 들어올 때가 있다. 글을 쓰러 갔는데 혹시 그림 그릴 만한 사람을 아느냐는 질문을 받기도 하고, 더러는 지금 하고 있는 게 많아서 일을 다 받지 못할 때도 있다. 금전적으로는 좋은 제안인데 너무나 내 취향과는 거리가 먼 일이어서 못 할 때도 있고. 간혹 인터넷에서 굉장한, 그리고 데뷔를 꿈꾸고 있는 존잘님을 만날 때도 있다.

그런 일들을, 신중하게, 도움이 될 만한 사람에게 연결하고 있다. 원작이 따로 있는 것을 소설로 바꾸는 일이라면 그걸 할 만한, 그리고 마감 어기지 않을 만한 사람에게 연결해 주고, 글을 찾는데 그림 그릴 사람도 찾는다면, 동업자나 아는 사람에게 알음알음 연결해 주기도 한다. 존잘님을 만나면 조용히 물어보고, 그 존잘님을 원할만한 데에다가 슬그머니 연락처와 만화 올려놓은 블로그나 텀블러의 링크를 보내주고 있다. 더 좋은 사람들을 만나고, 알게 되고, 더 잘 할 수 있는 사람들에게 연결해주는 일이 나름 즐겁다. 나는 할 수 없지만 흥미로운, 그리고 더 잘 할 수 있는 사람이 있는 일을 연결해주고서 1, 2년 뒤 그 결과물을 보는 것도 두근거리고 즐겁고. 웹으로, 혼자의 노력으로 이어가던 연성이 제대로 된 원고료를 받게 되면 기쁘기도 하다.

사실은 내 것이 아닌 일거리들이 들어올 때, 내가 그래도 완전 초보는 벗었구나 하는 생각을 한다. 눈팅만하고 있었지 직접 말 걸어보는 것은 처음인 분께 “실은 제가 님의 만화를 좋아하는데, 제가 아는 여기저기 회사에 소개 드려봐도 될까요.”하고 말할 때는, 춘앵전에 나오는 신대우의 대사가 떠오를 때도 있다. “누구보다도 먼저 내가 보고 있었다는 작은 우월감”에 대해서. 여튼 내가 다 물고 있다고 될 일도 아니고, 존잘님의 작품은 혼자 보는 것보다는 여럿이 보는 게 더 좋은 것이다. 물론, 내 일도 2007년 2월 이후 지금까지 늘 그랬듯, 끊어짐 없이 계속 들어와줘야 하겠지만. 여튼 정작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은 잘 못하면서, 이런 것은 기쁘다. 대가 없이, 아마도 “저 사람의 다른 것을, 저 사람이 돈을 받는 형태로 보고 싶다”는 순수한 소망에 가까운 것이라서 그럴까.

대체 그런 도끼를 어디다 쓴단 말인가 – Alt.SF 휴/폐간에 부쳐

지난달에 내 블로그에서 개인적으로 악스트의 듀나 인터뷰에 대해 생글생글 웃으며 불쾌함을 표현한 적이 있었다. (악스트의 듀나님 인터뷰를 읽고) SF적 텍스트 퍼포먼스니 어쩌니 해도 그 글의 결론은 그거다. “그게 인터뷰냐.”라고. 오죽하면, 그걸 모욕으로 읽지 않기 위해 “그래, 문단꼰대 아재가 외계인을 만난 이야기로구나”로 받아들이려 노력씩이나 했겠는가.

악스트의 질문들은 적절치 못했다. 배수아와 정용준의 질문들은 그들이 아무리 SF에 익숙치 못하다 한들, 작가를 인터뷰할 때 적어도 그 사람이 쓴 책을 구경이라도 하고 나와야 하지 않는가 하는 의문을 떠올리게 했다. 백가흠의 질문들은 더욱 심각한 것이, 20년 넘게 익명성 뒤에 서 있던 작가에게 굳이 성별을 묻고, 그의 성과들을 깎아내리려 애쓰며, 나중에는 “너 나 알지! 우리 본 적 있지!”로 요약 가능한 부끄러운줄 모르는 인정욕구 전시로 흘러간다. 사람을 면 대 면으로 두고 인터뷰를 할 때도 대개는 편집부와 의논해서 산으로 가지 않게 큰 틀을 정하고 가는 것으로 아는데, 무려 이메일로 인터뷰를 하면서도 악스트 편집부는 이 총체적으로 난국인 질문에 대해 한 번 걸러 낼 생각을 하지 않았던 것인가? 하긴, “이 인터뷰 그냥 나가면 곤란하다”는 말을 곱게 돌려서 보낸 듀나의 메일까지도 포함해서 이 인터뷰를 당당히 실어버린 것을 보면 그냥 싸우려고, 소위 “어그로를 끌려고” 작정을 한 것일 수도 있다는 생각도 든다.

만민이 평등하다는 것이 상식으로 알려진 이 현대 사회에서, 비록 아직도 사람들은 상대방의 직장을 묻고, 결혼 여부를 묻고, 남의 가족관계에 오지랖을 떨어댄다고 해도, 적어도 문예지라는 것은 최소한의 품위와 지성을 갖춰야 한다고 생각한다. 앞서 말한 “성별을 묻고, 깎아내리고, 익명성을 벗겨내려 애쓰다 못해 자신의 인정욕구 전시로 흘러가는” 일련의 질문들은, 상대방을 나와 동격으로 놓고 하는 질문이 아니다. 그런 질문은, “나보다 아래라고 생각하는 사람에게 하는 질문”인 것이다.

그렇다면 듀나는 과연 백가흠보다 아래쪽으로 놓여야 할 사람인가? 아직 불행히도 수직사회인 한국에서, 나이라든가 학번, 먼저 그 바닥에 들어온 년도 같은것은 사람을 줄세우는 데 꽤 중요한 잣대로 쓰이는데, 듀나가 공저자로 나온 첫 책은 1994년에 나왔고, 단독저자로 나온 첫 책은 1997년에 나왔다. 설령 수직사회의 논리에 맞춰 생각하더라도, 백가흠이 듀나에게 일방적으로 그런 식의 무례를 저지를 만한 상황은 아닌 것이다.

물론 이렇게 말하면, “등단하고 데뷔는 다르다”고 말하는 설익은 문창과 학생들이 있을 수도 있겠다. (설익은 문창과 학생에게 몇년간 시달려 봐서 하는 소리다.) 그런데 정말로 순문학계의 등단과 장르문학계의 데뷔가 다른 것이라면, 자신과 단순히 수직으로 서열화 할 수 없는, 다른 카테고리의 사람에게 서열질을 한 것이 된다. 말하자면 농구선수와 야구선수를 놓고 똑같이 공을 쓴다는 이유만으로 우열을 가리려 든 셈이다. 불행히도 문단이라는 이름의 농구선수들은 다른 종목들은 자기들보다 작은 공을 갖고 논다는 이유만으로 야구든 축구든, 이 아니라 다른 장르 전반을 두고 자기들이 우월하다고 생각해온 지 오래 되었다는 것은 잘 알고 있지만, 개인 대 개인이라면 몰라도 이렇게 공적인 성격을 띠는 인터뷰에서 하기에는 참으로 치졸한 일이긴 했다. (이것도 못 알아듣는 사람들이 있을까봐 하는 말인데 실제로 농구선수가 축구나 야구선수를 비웃는다는 뜻이 아니다!!!!!)

뭐, 그로 인해 트위터에서 SF 독자들과 작가들이 좀 시끄럽게 떠들긴 했지만, 덕분에 악스트 4호는 매진되었다. dcdc나 곽재식 등의, 악스트에 대한 기고가 실리기도 했고, 악스트의 듀나 인터뷰 기사 자체에 대해서도 몇몇 언론에서 기사를 다루기도 했다. 이만하면 성공적인 마케팅이었다고 볼 수도 있었다. 꽤나 불쾌한 마케팅 방법이긴 해도.

그리고 Alt.SF(이후 알트SF)에서도 관련 기사를 냈다. 이 기사에는 악스트의 듀나 인터뷰 중 백가흠의 “질문”부분이 상당부분 인용되었으며, 이에 대한 비판을 주 내용으로 하고 있다.

보통 사람들이 인터뷰 기사를 본다고 하면 인터뷰이의 답변을 보고자 함이지, 인터뷰어의 질문을 보고자 함이 아니다. 또한 한 기사에서 다른 기사를 비판하기 위해 인용하는 것은, 인용한 내용 이상으로 그에 대한 비판이나 해석이 들어가 있다면 공정이용으로 볼 수 있는 경우가 많다. 하다못해 은행나무에서 알트SF에 보낸 메일에서도, 알트SF가 저작권을 침해했다고 나와 있는 부분은 없다. 애초에 분명히 저작권 문제가 있는 부분이었다면 저작권위원회에서 그에 대해 언급했을 것이다. 그러나 은행나무는 이를 두고 알트SF에게 “법원에 일임”이라는 부분을 굳이 강조해 가며 메일을 보냈다. 은행나무에서 정말로 저 저작권위원회의 메일을 “알트SF가 잘못했으니 법정으로 끌고 가라”는 뜻으로 인식했는지, 아니면 그저 단순히 압박하기 위해서 그렇게 했는지는 모르지만, 전자라면 명색이 문예지에서 한국말도 못 읽는가, 라고 묻고 싶고 후자라면 치졸한 협박이라고밖에 말할 수 없겠다. 무엇보다도, 펜과 키보드를 휘두르는 사람들이 다른 언론의 비판기사에 대해 펜과 키보드로 맞서는 게 아니라 법을 들먹이는 태도를 보이는 것 자체가, 이길 자신이 없다는 뜻으로 읽히는 것을 알고 계시는지 모르겠다. 아, 설마 앝트SF가 언론이 아니라 “개인 블로그”라고 생각해서 그렇게 한 것일까? 그렇다면 “기사에 대해 항의한 개인을 협박한”것과 “개인미디어 또는 1인미디어라는 모르는”것 중 어느 쪽이 더 남부끄러운 일일지에 대해 생각해보고 싶다. 참고로 개인미디어는 1996년, 1인미디어는 1998년부터 언론에서도 쓰인 단어다.

무엇보다도 알트SF는 2010년부터 지금까지 격월로, 한국에 소개된 SF와 한국 작가의 SF에 대해 할 수 있는 한 모두 언급하려 애쓴 매체였다. 물론 전문적인 비평보다는 집요한 독자의 감상에 가깝고, 취향을 타며, 독설과 비꼼이 적지 않게 들어가 있으며, 삽질이라 불릴 만한 실수들이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고, 그 의견은 정론과는 거리가 있는 거친 것이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카이브로서의 가치와, 장르 팬의 힘을 스스로 증명한 팬진이었다.

듀나 인터뷰에 대해서는 이미 나와버린 것, 사과할 것은사과하고, 팬들의 반응에 대해서는 받아들일 부분은 받아들이며, 화해할 것은 화해하고, 다음번에야말로 다른 SF 작가 모시고 좀 더 제대로 준비한 인터뷰를 하는 것으로 만회할 수도 있었다. 악스트가 알트SF를 언론이라고 생각했다면 공정이용으로 넘어갈 부분이요, 일개 팬이라고 생각했다면 더욱이 그런 식으로 나오지 않았어야 했다. 하지만 악스트는 최악의 수만 골라서 둔 끝에, 한국 SF에서 지난 20년을 꾸준히 지켜온 작가를 그런 식으로 모욕한 것도 모자라, 독설과 미묘한 삽질들이 있을지언정 꾸준히 한국에 출간된 SF와 한국 SF에 관심을 보여준 웹진을 문닫게 만들고 말았다. 장하다, 문단. ^^

휴간 안내 | alt.SF

몇달 전 보았던 악스트의 창간사는 인상적이었다. 장르쪽 사람들도, 새로 창간하는, 생각을 깨는 도끼가 되고 작가들을 위한 잡지가 되겠다는 악스트에 기대했던 사람들이 적지 않았던 것으로 안다. “책은 우리 안의 얼어붙은 바다를 깨는 도끼여야 한다.”는 카프카의 글을 인용하고, “우리는 우리이기 위해 도끼를 든다”며, 위로와 격려의 판이 되겠다고 했던 악스트는 결국, “도끼를 들고 춤을 추어도 좋겠다”더니 도끼를 들고 망나니처럼 휘두르면서 자기들이 이해하지 못하는 장르를 깨부수는 데만 일조하고 말았다.

대체 그런 도끼를 어디다 써야 할 지 모르겠다.

기록할 가치가 있는 홈페이지의 아카이빙에 대해

지난번에 더킹 3권의 부록만화를 읽다가 도메인 연장에 대한 글을 보았다. 그리고 문득, 교월드가 사라진다면 무척 쓸쓸할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 어차피 그 홈페이지의 콘텐츠 중 상당부분은 이미 10년 가까이 업데이트 되고 있지 않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냥 그 자리에 있어서 좋은 것들이 있다. 어느날 접속해 봤는데 더이상 홈페이지가 남아있지 않은 것은 물론, 그 자리에 광고 사이트 같은 게 붙어 있다면 참 서글프겠지.

보존가치가 있는 수작업 원고들에 대해서는 보존을 위한 작업들이 이루어지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렇다면 종이에 펜으로 일기를 쓰기보다는 자기 홈페이지나 블로그에 기록을 남기는 시대에, 그런 것에 대한 보전은 어떻게 이루어져야 할까. 그 생각을 했다. SNS까지는 너무 사적이고 내밀하니 관둔다고 치더라도, 적어도 공홈 정도는 유지보수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 의외로 홈페이지란 그렇게 어마어마하게 데이터를 먹는 것도 아니고, 요즘처럼 저장매체 가격 저렴해진 시대에 홈페이지들을 자료로서 남겨두는 것이 그렇게 비용이 많이 드는 일일지는 모르겠고….. 도메인을 유지하는 데는 돈이 들겠지만, 그건 처음 1, 2년은 기존 도메인을 두고 장기적으로 서브도메인 같은 것으로 변환해서 유지하는 방향으로 가도 될 것이고. 아직은 그런 생각을 하기 이른 시기일지 모르지만, 이미 데뷔 초창기부터 홈페이지로 독자들과 소통하던 작가님 한 분이 도메인을 몇년 더 연장해 두어야 할 것인가로 고민하는 시기가 되어버렸다. 그런 일에 대해서도 생각하고 준비해 둘 때가 되지 않았을까 싶기도 한다.

개인이 할 수 있는 범주의 일은 아닌것 같지만, 그런 생각을 하고 있다고. “기록으로 남길 가치가 있는 홈페이지의 아카이브”에 대해서.

PS) 물론 많은 분들이 네이버 블로그를 쓰고 있는 상황이니…… 근데 난 네이버를, “보존할 만한 기록을 남겨두기 위한 곳”으로서는 신뢰하지 못한다. 음.

타로 카드로 본 랑야방 인물분석

이 글에는 랑야방에 대한 네타가 굉장히 많이 들어 있습니다.

랑야방 그림 합작 같은 것을 하실때 참고가 되어도 기쁘겠네요. 출처만 언급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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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전 꽂힌 중국드라마 랑야방을 보던 중, 몇몇 캐릭터의 인생과 타로 카드를 겹쳐서 생각해 보게 되었다.

다들 아시는대로 타로 카드는 대체로 22장의 메이저 카드와 4원소 속성 10장, 그리고 원소별 코트카드 4장씩 해서 총 78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여기서 이야기의 주요 틀이 되는 몇몇 인물/가문은 이 4원소와 맞물려 이해하면 알아보기 쉽다.

사실 이 아이디어를 처음 떠올린 것은 12화였나. 언궐 국구님의 젊은 시절 이야기가 잠시 나올 때였다. 언궐 국구는 지금은 나랏일에도 아들에게도 관심이 없는 듯, 도가 수련에만 몰두하고 있지만, 젊었을 때는 나라를 구하기 위해 외교에 나선 젊은 문관이자, 황제의 총신이었다.

사실 이 드라마에서 노리고 매력적으로 만든 캐릭터들은 많다. 비밀을 간직한 채, 얼마 남지 않은 목숨을 다해 정왕을 태자로 만들고 역모죄를 쓴 가문의 명예를 회복하려 하는 고결한 주인공인 매장소/임수도 그렇고, 고직하고 일관되게 정의와 정도를 향해 걸어가는 정왕도 매력적이다. 임수의 옛 약혼녀의자 투희 속성을 지니고 있는, 러브라인 뿐 아니라 중요한 부분에서 임수와 정왕을 위한 키 역할을 하는 예황군주도, 비류나 몽 통령, 악역이지만 매력적인 예왕, 그리고 모두가 매장소 안의 임수를 안타까워할때 홀로 매장소 자체를 바라보며 그를 아끼는 린신 각주까지.

하지만 내 취향은 저 언궐 국구님이었다. 두뇌파 미중년은 원래 장르 불문 소중한 것인데다, 현실계와는 달리 덕질계에서는 짝을 잃은 남자, 홀아비 속성도 좋아한다. 아들에게 매정하게 구는데 사실은 아들을 목숨보다 사랑하는 아버지도 좋아한다. 얼마나 이런 속성을 좋아하냐 하면 어릴때 쓰던 소설에서 주인공의 아버지가 이런 속성의 총집편으로 나오는 바람에 주인공의 매력이 반감되어 버리기까지 했었다. 여튼, 그렇다 보니 국구님은 등장 분량은 적어도 내 덕질 포인트가 되어버렸다.

언궐 국구+예진 = 완드

이 국구님의 젊은 시절 장면은, 광야에서 그가 복슬복슬한 털 세 개가 달린 지팡이를 짚고 적진을 굽어보는 모습으로 한 컷 지나간다. 이 장면을 보고 완드 3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완드 3은 최초의 성공을 의미하며, 국구님은 3완드로 자신의 지혜를 증명하고 성공하고 나라를 구했다. 또한 5완드(경쟁)를 통해 자신의 군주를 황제로 만드는 데도 성공했다. 만약 그가 4완드, 결혼을 통해 행복해졌다면 그의 인생은 만사가 잘 풀렸으리라.

하지만 그는 6완드와 같은 영광은 얻었지만, 7완드, 내분을 겪는다. 정통성이 부족했던 황제는 자신의 총신들은 물론 친아들까지도 경계했으며, 그로 인해 8완드와 같이 신속하게 맏아들과 임씨 가문, 적염군을 역모로 몰아버린다. 지금의 국구님은 9완드와 같이, 세상을 향해 담장을 치고 경계를 늦추지 않고 있지만, 그의 마음속에는 10완드와 같은 감당하기 어려운 감정이 남아 있었다. 매장소가 말리지 않았다면 그는 그로 인해 새로운 파국을 낳았을 것이다.

매장소를 만난 이후로 국구님은 킹완드가 되어 자리를 잡고, 분량은 적지만 이야기의 흐름을 이끌어나가게 된다. 완드는 4대 원소 중 유일하게, 그 자체로 생명과 강한 의지를 품고 있다. 그에게는 이야기 전반에서 제대로 챙기지 못했던 후계자 예진이 있으며, 페이지 완드로 생명력과 호기심이 강하던 예진은 국구님이 9-10완드에서 킹완드로 업그레이드될 무렵, 아버지와 흉금을 터놓고 비밀을 공유하며 나이트 완드로 업그레이드된다. 이 강력한 나이트와 킹이 진가를 발휘하는 장면은 역시 예왕의 반역 시퀀스다. 예진은 기꺼이 검을 들고 맞서 싸우며, 국구님도 두려워하는 황제와 신하들 앞에서 몸소 검을 들며, 황제에게 그의 젊은 시절을 일깨우고 보검을 들어 역적들을 토벌하시라 진언한다.

녕국후 일가 = 컵

녕국후 사옥은 이 드라마에서 가장 복잡한 인간 중 하나다. 그는 장공주를 손에 넣기 위해 미약을 썼으며, 결혼을 통해 신분상승을 꾀했다. 또한 아들 경예를 통해 천천산장과도 가족같이 지내며 이를 바탕으로 권력을 강화한다. 변화무쌍하게 모습을 바꾸고, 경계가 없이 잘 뒤섞이며, 감정에 충실한 녕국후와 그의 일가는 컵의 속성으로 보면 이해하기 편하다.

좋아하는 여자를 손에 넣기 위해 미약을 쓴 것은, 그가 사랑에 미숙했던 컵 2였음을 보여준다. 물론 순수한 사랑은 아니지만, 미숙한 사랑이었으니까. 그는 장공주를 사랑하지만, 장공주가 인질로 와 있던 남초국왕의 아이를 임신한 것을 무효로 만들고 싶어한다. 컵 4의 무심해 보이는 모습은 그런 그의 외면을 보여준다. 하지만 컵5와 같이, 그의 작전은 절반만 성공한다. 정확히는 같은 날 태어난 두 아이 중 천천산장의 아이가 목숨을 잃고, 경예는 살아남는다. 하지만 컵6과 같이 경예를 통해 천천산장이라는 강호 무림의 인맥을 손에 넣었으며, 이들은 무림인들 답게 한번 맺은 신의에 충실하다.

녕국후는 컵 7의 인간이다. 그는 자신의 욕망에 눈이 멀어 죄를 짓는다. 때문에 그는 컵 9, 소망의 카드까지 닿지 못한 채, 컵 8과 같이 유배를 당하게 된다. 그는 완성으로 가지 못한 채 유배당하고 죽는다. 그의 야심으로 인해 천천산장의 사람들은 배신을 당했고, 장공주와 그녀의 아이들 역시 연좌만을 면했을 뿐이며, 천천산장의 장남에게 시집보낸 딸은 아이를 낳다가 목숨을 잃는다. 그의 야심은 결국 가족의 행복, 컵 10까지 망쳐버린 셈이다.

녕국후부의 차남이지만 경예의 출생에 얽힌 사건 때문에 실질적으로 장남 대접을 받고 있는 사필은 나이트컵이며, 아버지가 도달하지 못한 킹컵을 향해 천천히 발전하는 캐릭터다.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는 퀸컵은 장공주다. 퀸컵은 킹소드과는 대척점에 놓여 있지만, 여왕으로서는 가장 강력한 속성을 지니고 있다. 그녀는 작품 후반부에 결정적인 역할을 담당한다. 경예는 속성만으로는 페이지 컵인데, 경예에 대해서는 다시 설명하겠다.

임수/매장소 = 소드

중국판 랑야방 오프닝에서는 안개가 낀 듯한 배경에 수묵화같은 흰 나비가 날아다닌다.

나비는 변신과 영혼을 뜻한다. 즉 이 오프닝은 임수/매장소의 변신과, 그의 고결함을 의미한다. 또한 변신은 많은 경우 죽음과 재생을 의미한다. 중국에서는 어떤지 모르겠는데 우리나라에서는 봄에 처음 본 나비가 흰나비면 누가 죽는다는 이야기가 있었으니, 이 나비는 임수의 변신과 더불어 봄눈처럼 짧은 생애도 의미한다고 봐야 할 것이다. 물론 드라마가 정왕x임수를 대놓고 떠먹여주는 상황인 것을 감안하면 프시케 신화와 같은, 사랑을 의미한다고 볼 수도 있겠지만 그건 너무 멀리 갔고.

소드 카드의 본편에는 나비가 없는데, 코트 카드에는 나비가 그려져 있다. 소드는 지성과 영혼을 상징하고 원소 속성으로는 공기를 의미한다. 매장소의 지략과 신선과 같은 탈속적인 모습들은 이 소드의 전형적인 속성이다.

소드는 감정적으로 가장 고통받는 카드다. 그는 소드 2와 같이, 죽음과 삶이라는 양자택일의 갈등 속에서 변신이라는 제 3의 길을 택할 수 밖에 없었고, 소드 3과 같이 배신당했다. 소드 4의, 죽음과도 같은 휴식은 그의 고통스러운 투병=변신을 의미한다. 소드 5와 같이, 그는 대가를 치러야 했으며(무공을 잃고, 요절할 운명이 되었다) 소드 6과 같이 무리하지 않고 순리에 몸을 맡겨야만 했다.

하지만 그는 소드 7과 같이 위험을 무릅쓰고 세상에 나오기로 한다. 여전히 소드 8과 같은 속박에 휘감겨 있으며(약한 몸 때문에 마음대로 움직일 수 조차 없다) 소드 9와 같은 마음의 고통을 계속해서 감내하고 있다. 그리고 소드 10과 같이, 희망을 남기고 죽음을 맞이한다.

그는 소년장수 임수일때는 용감하고 빠르며 쾌활한 나이트소드였고, 소드의 여행을 통해 변신하여 우울하고 내면을 들여다보며 지혜롭고 냉정한, 필요하다면 모든 사람을 도구로 쓸 수 있는 냉혹한 킹소드가 되었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야심 때문이 아닌 내면의 고결함으로 인해 그렇게 행동할 것이다.

퀸소드는 지혜로우며 퀸들 중 유일하게 무력을 쓸 수 있고, 최정안님의 분석으로는 과부/독수공방 속성이 있다. 예황군주다. 빠르고 날렵한 페이지소드는 비류를 의미한다고 봐도 무방할 것 같다.

정왕 = 펜타클

펜타클은 땅 속성으로, 여성적이고 정적이며 이성적이다. 정왕의 어머니 정비마마는 바로 이 펜타클 속성 그 자체이며, 땅 속의 씨앗처럼 인내하던 그녀가 마침내 그녀가 정귀비로 승격되는 순간은 9 펜타클에 해당하며, 마침내 퀸 펜타클로 업그레이드 된다.

한편 펜타클은 가장 고지식한 속성이기도 하다. 정왕의 고지식함은 이 부분에서 비롯된다. 그는 4펜타클로 발이 묶인 상태로(동해에 군사 훈련을 하러 갔다), 타로 78장 중에서 가장 비참한 운명을 가리키는 5펜타클, 적염군의 몰락과 기왕과 임수의 죽음을 맞닥뜨리게 된다. 이후 정왕의 인생은 6펜타클의 공명정대함을 따라가지만, 7펜타클과 같이 노력한 만큼의 성과와 칭찬을 되돌려받지 못한다. (황제에게 인정받지 못한다) 그러나 그는 8펜타클과 같이 꾸준히 노력하고, 귀비가 된 어머니(9펜타클)와 함께 영광의 자리에 올라 태자가 되고, 나이트펜타클에서 킹펜타클로 업그레이드하며 황제가 되지만, 사회적 성공은 거두었으나 고독한 10펜타클과 같이 그는 임수를 잃고 고독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외로운 싸움을 계속하게 된다.

펜타클은 정적이지만 한번 움직이면 우직하게 나아간다. 그가 움직일 수 있었던 것은 가장 빠르고 동적인 소드의 킹, 매장소(임수)가 그의 등을 떠밀며 함께 나아갔기 때문이다. 하지만 마지막에 그는 혼자 남는다.

메이저 아르카나는 누구를 따라가는가

표면적으로 볼 때 이 드라마는 죽은 것으로 알려진 임수가 매장소가 되어 금릉으로 나아가 정왕의 책사가 되고 그를 왕위에 올리는 내용으로 되어 있다.

하지만 이야기의 시작과 각종 중요 포인트를 살펴보면, 이야기를 실질적으로 보이지 않게 끌어나가는 중심은 소경예로 볼 수 있다. 메이저 아르카나는 흔히 “광대의 여행”으로 불린다. 이 여행의 주인공인 광대는 처음에는 밝고 명랑하며 낙관적이다. 다소 혼란스럽고 그 앞길에는 위험도 있지만 그는 올곧고 씩씩하게 앞으로 나아간다.

경예는 매장소(마법사)와 하동대인(여교황)의 친구이며, 어머니 리양장공주(황후), 외삼촌인 황제(황제), 그의 내관이자 조용히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다른 축인 고담 대인(교황) 등을 만나며 이야기를 이면에서 이끌어간다. 그의 운명은 운명의 수레바퀴(녕국후의 몰락, 경예의 친부가 누군지 알려짐)를 기점으로 뒤바뀌며, 이후 그는 남초로 떠나 몇 화 동안 보이지 않는다. 타로에서는 영혼의 세계, 매달린 남자나 은둔자 등을 만나는 과정으로 표현된다.

그가 다시 현실의 세계로 돌아오는 것은 죽음과 악마, 탑을 경계로 하고 있다. 탑이 무너지며 현실로 돌아오는 카드의 주인공처럼, 그는 하강의 음모와 예왕의 몰락을 기점으로 성숙해진 채 금릉으로 돌아온다. 그리고 그는 전면에 나서지는 않지만, 그의 응원으로 어머니인 리양장공주가 결정적인 역할을 담당함으로써 카메라가 돌아가지 않는 부분에서 타로의 여행을 마치게 된다.

악스트의 듀나님 인터뷰를 읽고

이번 악스트(Axt)의 듀나님 인터뷰를 읽었다. 듀나님은 언제나처럼 오물오물 쿨하셨고(그분의 트위터를 구독하고 있다면 동의할 것이다) 그분을 인터뷰한 백가흠, 배수아, 정용준, 세 작가님들은 흑역사를 쌓으셨다. 정용준님은 진짜 이 인터뷰에 대해, 듀나라는 작가에 대해 뭔가 생각하고 질문을 던지신 것 같지 않았고, 배수아님은 준비를 하시긴 하셨으나 만렙의 무림고수에게 “님 혹시 쌍절곤 쓸 줄 알아요? 내가 보니까 잘나가는 무림인은 다들 쌍절곤을 쓰는 것 같던데!”같은 질문을 하셨고, 백가흠님은…… 그분에 대한 호감도가 바닥을 기었다고 설명해 두자. 익명의 작가에게 자꾸만 사생활에 대해 묻는 것까지야 무례하지만 그런 일들 한두 번 본 것 아니니 어떻게든 넘어간다고 치고, SF에 대해, 순문학계 문단을 통해 데뷔하지 않은 작가에 대해, 굉장한 적대심을 갖고 있는 것이 여기까지 느껴져서 숨이 탁탁 막혔다. 20년된 듀나님의 소설은 여전히 흥미로운데, 상대를 낡았다는 식으로 몰아세우는 한편 “나와 만난 적 있지 않느냐”며 공공연히 자신의 인정욕구를 전시하다니 굉장했다. 혹시 백가흠님, 듀나님한테 경쟁심을 느끼시는 건가? 아니, 경쟁심 느끼실 필요 없다. 둘다 올림픽에 나갔다고 해서 유도선수와 레슬링선수가 굳이 맞장을 뜰 필요는 없으니까.

이 인터뷰의 화룡점정은 바로, 듀나님이 보낸 메일이었다. 듀나님은 메일에서 이 인터뷰에 어떤 문제가 있는지, 듀나를 모르는 사람과 듀나를 아는 사람에게 이 인터뷰가 어떻게 받아들여질지에 대해 말하며 “웬만하면 이따위 인터뷰는 지면에 싣지 말지?”를 정중하게 돌려서 제의했으나, 악스트는 용감하게도 이 메일까지 모두 싣고 말았다. 그리고 트위터에서 열심히 웃음거리가 되고 있다. 적어도 내 타임라인의 사람들 대부분은 이 기막힌 인터뷰를 보기 위해 악스트를 살 것이니, 그런 점에서는 나쁘지 않은 기획이었을지도 모른다. 세상에, 잡지의 부흥을 위해 이렇게 몸바쳐 뒹구시다니.

처음 읽을 때는 물 없이 고구마를 삼키는 것 같은 느낌이 드는 이 인터뷰를 한번 읽고 나서, 조금 더 즐겁게 읽는 방법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나라고 남의 흑역사 대 전시를 구경하는 게 즐겁기만 한 것은 아니니까. 이 인터뷰, 특히 백가흠님이 인터뷰한 부분은 일종의 텍스트 퍼포먼스라고 생각하면 좀 즐겁다. 21세기에 살며 여전히 19세기의 마음을 갖고 있는, 상대를 이해할 마음은 없고 상대를 깎아내리려 죽을 힘을 쓰면서도 “나와 만난 적 있지! 나 알지!”하며 대놓고 인정해달라고 떼를 쓰는 한국 중년이 처음으로 외계인을 만났을 때 벌어질만한 상황을 다룬, 일종의 SF라고 생각하면. 그렇다. 우리는 문단작가와 SF작가가 합작한 일종의 퍼포먼스를, 한국인이 외계인을 만났을 때 벌어질만한 일을 본 것이다. 그렇게라도 생각해야 이 인터뷰의 질문들이 그나마 납득할 수 있는 지점까지는 오지 않겠느냔 말이다.

여튼 트위터에서도 별별 키워들이 시비를 걸어와도 초연하게 키보드를 두드리며 격파하시던 듀나님이셨지만, 이번 인터뷰 질문을 메일로 받으셨을 때 대체 어떤 기분이 드셨을지는 상상도 가지 않는다. 음. 과연 악스트에서 또다시 장르작가를 섭외해서 인터뷰를 하는 게 더 빠를까, 아니면 이런 인터뷰를 진심으로 하고 있는 악스트가 망하는게 더 빠를까에 대해 씁쓸한 생각을 하게 되는 초저녁이었다.

쌩신인 그림작가를 위한…… 악당을 피하는 소소한 방법

사실 저도 프로가 된 지 아직 10년 꽉 채운 것도 아니고, 계속 새로운 매체와 방식들이 나오다 보니 언제나 쌩신인같은 마음으로 임하고 있긴 합니다만(물론 나이도 먹었고 경험도 쌓였으며 이런저런 산전수전을 겪으며 계약서 독해력은 비약적으로 상승하긴 했습니다) 진짜 쌩신인 분들을 위해 조금은 할 말이 있을 것 같아서 다시 신새벽에 블로그에 글을 쓰고 있어요.

일단 지난번 언급했던 쌩신인 그림작가를 위한 “상태가 나쁘지 않은” 스토리작가 고르기 이후로 그림작가님들의 문의가 좀 들어오고 있습니다. 사실 작년에 웹툰업체들이 굉장히 많이 생기면서 그림작가님들 찾기가 하늘의 별 따기라, 같이 일하자는 문의면 좋겠는데 그건 아니고. 주로 이러저러한 분이 스토리를 줄 테니 같이 일하자고 제안이 들어왔는데…… 하면서 상의를 하는 이야기죠. 예, 제가 애를 업고 있다 보니 바로바로 대답해드리지 못하는 경우도 있지만, 문의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모르면 먼저 그 일을 하는 사람에게 물어보면 되는 일이에요.

그나저나 어처구니없는 사례들은 어쩌면 이렇게 천편일률 똑같은지. 누가 그런거 가르쳐서 내보내는 학원이라도 있나 싶을 정도이긴 합니다. 대체로 이런거죠.

  1. 내가 잘나가는 스토리 작가다…… 이긴 한데 만화로 낸 실적은 없이 판타지 쪽만 내신 작가님. (책 내신 분들부터 X피아 연재중인 작가도 있고. 근데 성함을 여쭤보면 대체로 뭔가 대박을 내신 작가님은 아닌것 같습니다. 제가 지난번에도 말했죠. 쌩신인 그림작가 앞에 세계구급 존잘님이 짠 하고 나타나는 건 요즘은 로설에서도 식상할 이야기입니다. 요새는 웹툰으로 이야기가 나가면 원작 매출이 올라가기 때문에 그걸 노리고 일단 웹툰화하는 작품들도 있는 것으로 알아요. 뭐 그건 좋은데, 웹툰을 그냥 자기 소설의 홍보용으로만 생각하는 작가와 일하는건 글쎄요.)
  2. 나랑 웹툰을 하자. 내가 어디 PD랑 이야기해서 연재처 따오겠다. (설령 그렇다고 해도 계약을 글작가에게만 맡겨두지 마세요, 절대로. 선배작가가 알아서 잘 하겠지? 그런거 없어요. 자기 권리는 자기가 챙겨야 합니다. 님은 도장찍는 셔틀이 아닙니다.)
  3. 내가 원작도 주고 연재처도 따왔으니 페이는 반반으로 하자. 혹은 4를 하겠다…… 근데 그림콘티 그거 먹는건가요 우걱우걱 (그림콘티를 짜진 않더라도 짤 줄은 아는 사람과 일하세요. 소설의 연출과 공간감과 만화의 연출과 공간감은 좀 다릅니다.)
  4. 내 원작을 내가 각색해서 콘티로 제공할 건데 내 원작비는 매번 고료에서 차감할 것이다…… (물론 원작비라는 게 있습니다. 그러나 매번 고료에서 뗄 만한 것도 아니고, 실제로 소설을 만화화 할 때의 원작비는 대개 어마무지하게 비싸진 않습니다……)
  5. 넌 나 아니었으면 데뷔도 못 했을 신인이 블라블라 (……그런 말을 하는 놈이 쓰레기죠.)

하지마세요.

말했죠? 지금 웹툰업체가 많이 생기면서 스토리작가는 많고 그림작가는 오히려 부족한 상황입니다. 웹툰으로 포털에 연재할 수 있을 만한 그림이고, 꾸준히 마감을 할 능력이 되신다면 더 좋은데서 더 좋은 조건으로 하실 수 있어요. 물론 4:6, 5:5를 하게 되는 경우가 있긴 있는데 그건 스토리작가가 기획과 담당을 겸하면서 그림작가를 스태프로 쓰는 경우 같은 거고, 제게 문의하신 분들은 그 케이스들은 분명 아니었고요.

그리고 작가가 데뷔를 시켜줘요? 뭐, 물론 그럴 수도 있겠죠. 편집부는 늘 좋은 작가들에 목이 말라 있고, 이미 검증이 된 다른 작가가 이 사람 괜찮다고 추천할 수는 있어요. 저도 가끔, 데뷔할 마음이 있는 야생의 존잘님들을 편집부에 소개하곤 하니까요. 저런 야생의 존잘님이 계신데 저는 저분이 원고료를 받으면서 일했으면 좋겠습니다, 그 욕망으로 하는 짓이니까요. 물론 그 작가님들 대부분은 제가 소개한 걸 모릅니다. 알아도 크리스마스 카드 받는 정도예요. 아, 소개한 작가님이 상업지로 데뷔했을 때 좋은 작가 소개해줘서 고맙다고 편집부에서 밥 얻어먹은 적은 있네요. 소개비를 받아요? 뭐, 그 작가가 에이전시를 차리고 그 에이전시에서 사람을 밀어넣는 거라면 모르겠네요. 근데 그런 거라면 그 작가와 정식으로 에이전시 계약을 맺으시는 게 맞죠.

그럼 이런 일을 막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여러 방법이 있긴 한데, 편한 방법으로는 좋은 회사를 만나시면 좀 수월하겠네요.

말했지만 그림작가님이 부족하다니까요. 아니, 부족하지 않아도. 스토리작가는 한번에 세 편 네 편도 진행할 수 있지만 그림작가는 그게 어렵습니다. 그렇다보니 업체에서도 그림작가님들 수요는 늘 있는 것으로 알아요. (그리고 그 점 때문에 일부러 그림작가를 후려치기하는 놈들도 있다고 들었습니다. 마치, 운좋게 자기보다 잘난 여자와 사귀면서 그 여자에게 “나 아니면 너같은 거 누가 사귀어 주기나 할 것 같냐”고 계속 세뇌하는 놈들과 비슷하죠. 아이고, 그냥 나가 죽으라고 권하고 싶네요.)

에이전시와 계약할 때 기준이, 제가 웹툰 쪽 알아보려고 할 때 에이전시들은 어떻게 하나 몇군데 알아본 바로는 대개, 연재처에서 지불하는 회당 고료에서 에이전시 수수료 10%를 떼고 고료를 받으며, 연재고료 외의 전자출판이나 단행본 매출에 대해서는 조금씩 차이가 있지만 단행본은 정가의 8~10%, 전자출판이나 수출이나 드라마화나 뭐 그런 것에 대해서는 제반비용을 떼고 난 매출액의 50~70%를 받게 되어 있더군요. 그리고 여기서 글과 그림이 수익분배를 하죠. 물론 에이전시 수수료에는 작가를 관리하고, 글작가와 그림작가를 연결시켜주고, 연재처를 알아봐 주고, 홍보를 해 주는 등등의 비용이 다 포함되어 있습니다. 2년 전에 알아본 것이니 현재와 조금 다를 수도 있긴 한데, 생각만큼 문턱이 높지 않으니까 가능하면 웹툰을 연재하고 있는 다른 작가들에게 좋은 업체를 물어봐서 일단 문이라도 두드려 보세요.

그리고 지금 웹툰 쪽은…… 불길한 생각을 하고 싶진 않지만 90년대 후반에 잡지들이 우후죽순처럼 생겨나던 그 시절을 떠올리게 하는데요. 그러다 보니 여기저기서 별별 사람들이 다 뛰어들기 시작하고. 수상한 업체들도 생겨나는 게 당연한 일이겠습니다만. 시장이 어려워졌을 때 발을 빼버리는 것은 물론, 작가와 작품들이 공중에 붕 떠버려도 수습하지 않거나, 더 나쁘게는 자기들의 채무를 대신하여 그걸 다른 업체로 넘겨버리거나……. 별별 상황이 다 일어날 수 있죠. 그러니 시장이 확대된 지금은 더 신중하게 움직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무엇보다도 작가와 작품을 소중히 여기고, 가능한 한 끝까지 갈 수 있을 것 같은 곳을 선택하세요.

제가 참;;;;; 그런 사례 들을 때 마다 물 없이 고구마를 먹는 것 처럼 가슴이 턱턱 막힙니다만. 말씀드리지만 그런 자들은 일부니까 다들 힘내세요. 잘 모르겠는 것은 이미 데뷔한 다른 작가에게도 물어보시고, 카툰부머처럼 데뷔한 작가들이 있는 커뮤니티에 문의해 보셔도 되고요. (지망생만 있는 곳에는 유언비어가 많습니다) 확실히 문제가 있겠다고 생각하시면 만협과 상의하시면 좋을 것 같고요.

스타워즈 : 레아 공주 – 마크 웨이드 글, 테리 도슨 그림, 시공사

스타워즈 : 레아 공주10점
마크 웨이드 글, 테리 도슨 그림, 임태현 옮김/시공사(만화)

꼬꼬마와 함께 읽은 첫번째 스타워즈 그래픽노블.

에피소드 4와 5 사이에서 레아 공주의 성장을 그린 그래픽노블이다. 4에서 레아는 반란군과 함께 싸웠고, 많은 우여곡절 끝에 데스 스타의 설계도를 빼내는 데 성공했지만 그 과정에서 모성 알데란이 파괴되는 것을 보아야 했다. 야빈 전투 이후, 레아는 수배자가 되었으며 살아남은 알데란인들 역시 제국의 보복을 받을 위험에 처했다.

이 코믹스의 레아는 바로 그 알데란 생존자들을 구하기 위해 움직인다. 코믹스의 앞부분에서 그녀는 지도자들에게 그다지 신뢰받지 못하지만, 생존자들을 구해내고, 고리타분한 순혈주의에 맞서고, 할 수 있는 한 많은 이들을 구하며 레아는 성장한 뒤 다시 반란군으로 돌아간다. 그리고 이야기는 에피소드 5로 이어진다.

물론 꼬꼬마는 아직 이 내용을 이해하지는 못하겠지만, 나는 가급적이면 여자아이가 보는 첫번째 그래픽노블의 영웅이 이 책의 레아처럼 현명하고 활기찬 소녀 영웅이었으면 좋겠다. 꼬꼬마는 아직 이 책을 읽기보다는 물어뜯고 싶어했지만, 그래도 무릎에 앉혀놓고 함께 읽었다.

플레이 Play – 김재훈, 신기주, 민음사

플레이10점
김재훈 카툰, 신기주 글/민음사

넥슨의 게임을 좋아하든, 돈슨이라고 손가락질하든 상관없이, 넥슨의 역사는 한국 온라인게임의 역사에서 적지 않은 비중을 차지할 수 밖에 없다. 일단 바람의 나라부터 시작해서. 물론 나는 김진 선생님의 오랜 팬이고, 그 게임이 나온 것은 알았어도 실제로 아이디를 만들게 된 것은 대학에 간 이후이긴 했지만, 그 존재에 대해서는 늘 알고 있었다. 일단 하우피씨와 함께, 염불보다는 잿밥(부록 CD)에 더 관심이 있긴 했어도 어쨌든 게임피아를 보고 있었으니까.

대략 2014년 정도부터, 한국 인터넷의 아버지, 전길남 박사를 띄우고, 그 다음에는 그분의 제자들이 차린 넥슨의 역사를 되짚는 게시물들을 볼 수 있었다. 뭐, 없는 말을 지어내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넥슨은 한국 인터넷의 역사를 넥슨의 역사로 만들고자 하고 있다는 느낌도 받았다. 제주도에 있는, 정말 잘 만들어졌고 자료가 많았으며 건강과 시간만 허락하면 몇시간은 더 놀 수 있었을(그때 나는 임산부였고 밖에는 눈이 내리고 있었다. 1년에 1주도 눈이 안 내린다는 그 제주도에서) 그 멋진 “넥슨 컴퓨터 박물관”도 그렇다. 넥슨은 한국 인터넷과 소프트웨어 역사의 적자가 되기로 결심한 것 같았다. 사실 박물관처럼, 만드는 데도 관리하는 데도 돈은 많이 드는데 정작 그걸로 돈은 안 벌리는 것을 만드는 데는, 우리가 이 역사의 주인공이라는 일종의 마일스톤을 박고 가려는 마음이 아니었을까 생각했다.

그리고 넥슨 컴퓨터박물관에 다녀오고 꼭 1년만에, 나는 서점에서 이 책을 발견했다.

하필 펼친 페이지가 넥슨 김정주 회장이 바로 그 송재경님을 꼬시는 것을 묘사한 만화 페이지(어째서인지 굉장히 “라면먹고갈래”같은 분위기로 그려져 있었다)였다. 솔직히 말하면 그 페이지가 마음에 들어서 책을 구입했고, 당장 급한 책은 아니어서 며칠 묵혔다가 해를 넘기기 전에, 12월 30일쯤에 차분히 앉아서(물론 등 뒤에 아기가 매달려 있었다) 읽었다.

넥슨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는 그동안 읽었던 기사 같은 것을 통해 대충은 알고 있었다. 홈페이지가 최신기술이던 그때 그 시절, 홈페이지 하청업체도 했다는 것은 몰랐지만.

바람의 나라가 만들어진 부분도 얼추 알고 있었다. 게임의 팬 이전에 선생님의 팬이니까. 설마 처음에는 50명이 동시에 접속한다고 서버가 뻗었을 줄은 상상도 못했지만.

퀴즈퀴즈가 나온 대목에서는 웃었다. 학교 다닐때 선배가 퀴즈퀴즈에 들어갈 문제 데이터를 만드는 알바를 한다면서 내게 문제 100개를 만들어달라고 부탁한 적이 있었거든. 그럼 학교 앞 해와달 분식에서 밥을 사달라고 했는데 학관에서 때운 관계로 문제를 굉장히 날림으로 만들어 준 적이 있었다. 이 퀴즈퀴즈의 “유료화”대목을 보며 돈슨이라고 낄낄거리며 읽었다. 아바타 꾸미기라니, 세이클럽에서 시작했고, 온갖 곳에서 다 아바타 꾸미는 게 유행하던 그때 그 시절 생각이 났는데, 역시 아바타 꾸미기로 돈을 버는 거라면 넥슨보다는 싸이월드가 대세였으므로 아직 돈슨이라고 낄낄거리긴 이르다. 더 읽어야 한다. 그나저나 바로 이 대목에 마비노기의 나크님이 입사한 날이 떡하니 박제되어 있었다. 어쩐지 며칠 전에 트위터에 근속기념패 같은것 인증짤이 올라오더나.

크레이지 아케이드며 메이플 스토리같은, 잠깐 했거나 동생이 하던 게임들 이야기와 함께, 기업이 커나가는 과정을 읽는다. 그러다가 무려 공무원 시험준비할때 하루에 두시간씩 무료를 풀로 채워서 하다가, 합격한 그날로 정액결제를 시작했던 마비노기가 보인다. 전에 다니던 회사의 직장상사가 숨어서 하시던 던파가 보인다. 그리고 게임과 함께 덩치가 커진 회사의 위기와 역사를 읽다 보니 단숨에 한 권을 다 읽어버렸다.

사실 이 이야기는 한 기업의 역사이고, 당연히 그 주역들이 도전의 주인공으로 멋지고 폼나게 등장할 수 밖에 없는 책이기도 하다. 그런 점을 감안해서 읽더라도, 이 책은 한 기업의 역사 이전에, 온라인 게임을 즐기며 나이들고 있는 유저가 추억을 되짚는 역사도 될 수 있을 것이다. 이 게임을 할 무렵에 무슨 일이 있었고, 내가 좋아했던 이 게임이 만들어질 때 누가 어떤 일을 했는지에 대해 아주 조금이라도 들여다볼 수 있는. 물론 그런 것 치고는, 게이머가 자기가 좋아하는 게임의 역사를 들여다보기에는 회사의 역사가 강하고, 기업의 역사와 발전을 보기 위해 읽기에는 조금 말랑말랑한 맛이 많지만.

사람도 기업도 게임도, 어느정도 업적을 찍고 나면 자신의 마일스톤을 놓고 가고 싶어할 것이다. 그것도 20주년같이, 연차만 보면 더는 “어린/젊은”기업으로 분류될 수 없는 시기가 오면. 넥슨은 더러는 우습고 더러는 귀엽게, 자신들의 역사가 한국 게임의 역사이고 한국 인터넷의 적자라는 듯이 박물관을 만들고, 만화를 만들었다. 그리고 이제, 책이 나왔다. 여전히, 맨 처음 나왔던 그 바람의 나라는 잘 돌아가고 있는 것 같고, 완전 초기모델은 제주도에서 돌고 있고, 넥슨은 다양한 과금으로 유저의 지갑을 털 궁리에 매진하며 더러는 귀엽고 더러는 재미있는 게임들을 만들고 있다.

그러니까 뭐, 이 정도의 자화자찬은 읽어줄 만 하다고 생각한다. 나도 지금까지 넥슨의 게임으로 즐거운 시간을 많이 보냈(고 카드도 많이 긁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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