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스트버스터즈

개봉 첫날이니까 네타를 피하고 싶으면 읽지 말 것. 일단 첫 문단은 네타 없는 이야기부터 시작할테니 알아서 피해주세요.

예전 고스트버스터즈 영화라든가, 혹은 애니메이션 시리즈라든가, 어느쪽에서도 나는 이건이 제일 멋있다고 생각했다. (그랬을 사람 많을걸?) 그는 수줍음을 타는 천재 공돌이 너드이고, 훌륭하게 맛이 간 매드 사이언티스트인 주제에 묘하게 신사적인 남자였다. 그리고 이번에, 그 멤버들을 여성으로 바꾸고 리부트한 새로운 고스트버스터즈에서, 나는 홀츠먼이 등장한 순간 소리없이 주먹울음을 터뜨릴 뻔 했다.

앞머리를 올려 세워 얼굴을 길어보이게 하고, 두껍고 특이한 안경을 쓰고, 신무기를 척척 찍어내는 박사인데 이건 어디로 봐도 매드 사이언티스트고, 농담은 잘 하면서도 처음으로 한 편, 한 팀, 가족, 친구들이 생긴 것에 가슴떨려하면서 그 말은 잘 못 꺼내는 공돌이 너드 홀츠먼!!!!! 이 언니는 거대한 청교도 유령과 맞설 때 등 뒤에서 간지나는 쌍권총 형 무기를 꺼내 액션을 펼치기까지 한다. 와, 언니, 멋있어요. 사랑에 빠질 것 같아. 고스트 버스터즈의 최애캐였던 이건이 이런 멋진 언니로 되돌아온 것에 감동했다.

그리고 감동도 잠시. 이건 역을 맡으셨던 배우님이(돌아가셨다) 에린네 대학 사무실 복도에 놓인 흉상(…..)으로 발견될 것을 보며 나는 이루 말할 수 없는 표정을 짓고 말았다.

에린과 애비는 고등학교 시절 동창이었고, 예전에 함께 유령에 대한 연구를 책으로 낸 사이. 에린은 종신교수 임용을 코앞에 둔 상태로 과거의 흑역사인 그 책이 아마존에서 팔리고 있다는 것을 알고 애비를 찾아갔다가, 정말로 유령을 목격하고 만다. 그리고 “유령은 있었어!!!!”하는 영상이 유튜브에 올라오며 교수 임용이 물 건너간 것은 물론 해고되고, 애비와 홀츠먼의 팀에 합류한다.

이 에린과 애비는, 마치 피터와 레이를 둘로 합쳤다가 다시 나눈 것 같은 느낌. 예를 들어 에린은 레이처럼 온갖 호구잡히는 노릇은 다 하지만, 미남을 밝히는 것은 피터에서 가져온 성격 같달까. 물론 원작에서 대장 노릇을 하던 피터는 애비가 그 성격의 대부분을 이어받았고. 그리고 여기, 뉴욕의 지하철 직원이던 패티가 합류한다. 이 패티는 유일하게 과학자가 아니라는 점, 흑인이라는 점, 그리고 방향은 다를 뿐 제각각 맛들이 간 저 인간들 사이에서 그나마 상식인이라는 점에서 윈스턴의 속성을 거의 그대로 가져왔고.

그리고 “전화받은 여비서”의 포지션에, 케빈으로 분한 크리스 햄스워스가 등장한다. 한마디로 요약하면 “금발 거유 백치 비서”의 남자 버전. 전화도 제대로 못 받고 커피도 제대로 타지 못하는데다 로고를 만들랬다니 유령 로고에 가슴이나 그려넣고 있는 이 케빈은 무려 빙의를 당하고서야 똑똑해진다. 아아, 그 빙의 말인데. 저런 아름다운 얼굴과 저런 완벽한 피지컬에 그런 두뇌를 가졌으면 그냥 빙의된 채 평화롭게 하렘왕이 될 수도 있었는데 왜 꼭 굳이 세계를 멸망시키겠다는 거니, 하고 악역을 동정하게 된다. 아니, 그냥 평화롭게, 여자들을 만나고 돈을 벌고 인기인이 되어서 행복하게 살라고! 햄식의 미모와 그대의 지능이 만나면 다 가질 수 있어!

그럼 케빈에게 빙의당한 악역이 누구냐 하면, 호텔 직원인 로완이다. 기분나쁜 말을 혼자 중얼거려 여자들이 피해다니고, 직장에서도 좋은 평가를 얻지 못하는 일종의 불운한 천재로, 직장인 호텔의 지하실에 틀어박혀 제4의 문을 열고 유령들로 뉴욕을 뒤덮을 계획을 세우고 있는데, 그 계획에는 자신의 죽음도 포함되어 있었다…… 고 하면 거창하지만, 하는 짓을 보면 예전 시사인 기사 중에 “이제는 국가 앞에 선 일베의 자식들”인가, 여튼 일베 사용자 분석 기사가 떠오른다. 이 상큼하게 웃기는, 성별이 전환되었을 때의 포인트와 덕후포인트 양쪽을 유쾌한 영화에서 자기 입으로 남들 앞에서 여성혐오 발언을 공공연히 내뱉는 유일한 캐릭터가 “로완에게 방의당한 케빈”이라는 것도 포함해서. 여튼 로완이 케빈에게 빙의되자, 케빈은 자기가 움직이는 대로 경찰과 군인들을 움직이게 만드는데 이 부분이 엔딩 크레딧에 통째로 들어간다. 고스트버스터즈를 보고 나오자마자 트위터에 제일 먼저 쓴 글이 “여러분 고스트버스터즈 보세요 금발거유미남이 엔딩 크레딧에서 춤신춤왕을!!!!!!!”이었는데, 크리스 햄스워스가 흰 티셔츠에 청바지를 입고 춤추는 장면을 보는 게 흔한 일은 아니지.

전작의 주인공들이 까메오로 출연한 것은 물론이다. 피터 역의 빌 머레이는 “유령은 없다”며 고스트버스터즈의 활약을 공공연히 폄하하는 물리학 교수로, 레이 역의 댄 애크로이드는 전임자가 감옥에 가서 학과장이 된, 막장 대학(애비의 연구실이 있었던)의 교수로 나와 새로운 고스트 버스터즈의 발목을 잡고 힘들게 한다. 나와서 노하우를 전수하는 현자가 아니라, 꼰대 중의 꼰대로 전편의 주인공들을 등장시키다니, 이거야말로 “리부트”가 무엇인지 화끈하게 보여주는 게 아닌지. 그리고 맨 마지막에는 전편의 히로인이었던 시고니 위버도 나온다. 홀츠먼의 스승님으로.

(여기 추가로, 전작의 윈스턴이 패티의 장의사 삼촌 – 영구차를 빌려준 – 으로 나오고, 호텔 로비 직원이 전작의 비서였다는 제보를 받았습니다. 맞아요, 그 언니 어디서 봤다 했는데!)

(그러고 보니 크리스 햄스워스도 그렇고 시고니 위버도 그렇고, 빙의 전에는 그냥 그렇다가 빙의당하며 급 섹시해지는 캐릭터였다고 세이와 잠깐 이야기)

그건 그렇고 뉴욕이 유령으로 뒤덮이고 호텔이 날아가고 그 아래로 제4의 문이 열리고 난리가 난 마당에, 영업중인 샌드위치 가게가 있다니. 마치 씨엘 1권에서 이비엔이 “눈부신 가슴선”을 유지하려면 영양을 공급해야 한다며 샌드위치 사먹던 생각이 난다. 아니 그 난장판에 빵이 넘어갑니까.

주인공들이 여성으로 변경되며 불만을 표시하는 이들도 있더라고 들었는데, 세이에게 물어보니 “심리가 중요한 것도 아니고, 코믹 액션 영화인데 상관없지 않냐”는 반응. 세이는 패티가 지하철역에서 인사하는데 다들 무시하고 지나가는 장면, 이 인물의 속성과 상관없이 굉장히 흔한 장면이었지만, 패티가 여자이고 흑인이라서 더 무시당한게 아닐까, 하고 묻기도 했다. 아, 그리고 남자가 봐도 빙의 당한 후의 햄스워스는 좋았다고. 그렇지, 이렇게까지 관객이 주인공의 빙의를 바라는 영화도 없었던 것 같긴 했다.

아니, 정말 훌륭하고 유쾌한 덕후영화였어요. 고스트바스터즈. 영화든 애니든 어렸을때 보신 분들은 다 즐겁게 보실 수 있을듯요. 마시맬로를 기억하시거나 시고니 위버가 빙의되고서 섹시했다고 기억하시는 분 모두 다. ♡

ps) 먹깨비도 연애를 하는 더러운 세상. (먼산)

ps2) 마지막 장면은 2편이 있다는 암시인거죠? 그렇다고 말해줘요.

ps3) 마시맬로…… 놈 비슷한 게 나오긴 하는데 그건 전편이 더 예쁩니다. 으흑, 우리 오동통하고 큼직하고 아무에게도 해 끼치지 않을 것 같은 마시맬로를 돌려줘 ㅠㅠㅠㅠㅠㅠㅠㅠ

ps4) 전편에서의 그 아지트 건물에…… 집세가 비싸서 못 들어가고 중국집 2층에서 시작하는 멤버들…… 아아, 어느 나라나 부동산이란……. ㅠㅠㅠㅠㅠㅠㅠㅠ

스타트렉 : 비욘드

커크는 중립적인 입장에서 한 종족의 평화의 표식을 적대 종족에게 건네려 하다가 공격을 받았고(셔츠도 찢어졌고), 스팍은 끝내 전해주지 못한 해당 평화의 표식(고대 무기의 기동부)을 라이브러리에 보존해 두었다. 엔터프라이즈의 팀웍은 완벽하지만, 전작에서 이어졌던 커크와 스팍의 과거가 조금 그늘을 드리우는 가운데, 엔터프라이즈는 요크타운에 들어선다. (물론 어딜 가도 불만이 많은 본즈는 부서질 스노볼 같다고 악담을 하며 내리는데……) 엔터프라이즈로서는 간만에 맞는 휴식이며, 술루는 남편과 딸과 재회한다. 스팍은 중장 진급 예고를 받고, 스팍은 스팍 대사의 죽음에 대해 듣고, 유품을 전달받으며 자신이 뉴 벌칸을 위해 일해야 한다는 고민에 빠진 채 우후라에게 작별을 예고한다.

한편 이 시기, 한 우주선이 요크타운에 구조신청을 한다. 엔터프라이즈는 그 요구조건에 맞았고, 커크와 크루들은 그녀를 따라 성운으로 들어갔다가 공격을 받고, 행성으로 추락한다. 크루들은 탈출하지만 상당수가 죽고, 탈출한 대부분은 적에게 생포된다. 이 과정에서 적이 노리는 것이, 라이브러리에 보존된 무기의 일부임이 밝혀진다. (이 탈출셔틀은 비기닝에서는 없었던 것이다. 트위터에 돌아다니는 트리비아를 보니 조지 커크의 전사 이후로 추가된 기능이라는 듯) 부상을 입은 채 적의 우주선을 몰고 불시착한 본즈와 스팍, 그리고 스카티와 커크와 체콥을 제외한 다른 크루들은 다 나포되거나 사망한 상태. 이때 엔터프라이즈가 마치 오븐에서 잘못 꺼낸 불타는 피자같은 꼴로 떨어지는데, 엔터프라이즈는 뭐 원래 부서지라고 있는 아름다운 우주선이니까 보는 나야 그러려니 하지만 스카티가 얼마나 가슴이 아팠을까 싶었다.

그러나 몽고메리 스카티에게는 곧 새로운 장난감이 주어지지. ^_____^

스카티는 제이라(소피아 부텔라다!!!!!! 킹스맨에서 가젤 역 맡았던 그 배우다.)와 만나고, 그녀가 “내 집”이라고 부르는 USS 프랭클린, 워프 4급엔진이 붙었고, 예전에 실종되어 역사책에서나 볼 수 있었던 스타플릿 함선을 함께 수리하게 된다. 이 무슨, 덕후 개발자를 넥슨 컴퓨터박물관에 강제 납치한 것 같은 전개란 말인가.

그리고 제이라의 덫에 걸렸던 커크와 체콥이 합류하며, 이들 일행은 이 프랭클린을 이용하여 중상을 입은 본즈와 스팍을 먼저 데려오고, 나포된 다른 크루들을 구출할 계획을 세운다. (이 과정에서 본즈와 스팍이 이번 영화의 개그를 모조리 담당하게 된다. 스팍은 본즈가 자기 목숨을 구해주는데도 따박따박 말대꾸를 하고, 본즈는 “혼자 죽진 않겠군”하고 중얼거리는데 스팍 먼저 프랭클린으로 트랜스워프되어 버린다거나. 크루들이 잡혀있는 곳이 저기가 맞는지 고민하는데 스팍이 “우후라에게 준 목걸이의 방사선”을 검지해 보라고 하자 본즈가 “여자친구에게 방사능 물질을 줬다고?” “여자친구를 스토킹?”하는 모습도 볼 수 있었고. 잠깐, 그 목걸이는 스팍의 “어머니의 목걸이”라고 했고 “벌칸 행성의 돌”이라고 했다. 다시 말하면 그 목걸이는 사렉이 자기 아내에게 선물했다는 것일 텐데. 사렉 이 벌칸…… 이성적인 벌칸 좋아하네!!!!!! 여튼 둘이 이번 편의 개그는 전부 도맡아 했다. 그것 말고 기억나는 개그는 스카티가 그 와중에 홍차 마시고 있는 것 정도였을까. 아이고, 영국인이여.)

한편 나포된 크루들 중에는 술루와 우후라가 포함되어 있었는데, 사실 술루가 우후라보다 계급도 높으니까, 이 상황에서 술루가 크롤과의 교섭에서 이들 크루들을 대표하는 역할을 맡더라도 어색하진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우후라가 그 대표격인 입장을 뭍았고, 커크가 그 자리에 있었다면 했을 법한 대사를 치며, 크롤을 도발하고 그의 정체를 간파하기도 한다. 이렇게 단체로 납치되었을 때, 수많은 창작물에서 여성 캐릭터는 인질로 잡혀 고통받아 “그들이 감추고 있던 비밀”을 결국 꺼내놓게 만드는, 소위 “발목 잡는 캐릭터”역할을 한다. 하지만 이번에는 그 “발목 잡는 캐릭터”의 역할을, 의외로 술루가 맡게 된다. 우후라가 납치되어 있고, 스팍이 자신의 연인이니까 부상을 무릅쓰고 구하러 간다는 전개는 있지만, 우후라는 커크가 “아버지가 타던 것과 같은 기종의 모터사이클”을 몰며 종횡무진 적을 교란하는 사이 스팍이 있는 데 까지 제 발로 나온다.

그리고 아, 저, 민메이 어택.

……이쯤 되면 민메이 어택에 당한 외계종족 목록을 따로 만들어야 할 것 같은 기분이 들지만, 여튼 커크와 크루들은 USS 프랭클린을 몰고 나와 요크타운을 공격하는 크롤과 맞서고, 민메이 어택이라고 설명해야 할 만한 방식으로 적의 대부분을 물리친다. (정확히는 VHS로 적의 신호를 교란하는 것이긴 한데……) 그리고 요크타운 내부까지 들어간 크롤과 다른 두 기의 전투기를, 프랭클린 함으로 들이받아 멈추게 한다.

커크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생물학 무기로 요크타운을 날려버리려던 크롤을 막고, 크롤과 프랭클린 함과 관련된 케이스는 정리된다. 커크는 중장으로 승진하면 함장으로 우주에 나갈 수 없으니 “그게 무슨 재미입니까.”하며 승진을 거절하고, 스팍은 스팍 대사의 유품을 살펴보던 중 그가 크루들과 함께 찍었던 사진을 보며 남기로 한다. 그리고 엔터프라이즈가 다시 건조되며 엔딩. 요 직전에 커크가 죽은 크루들을 위해 추도사를 하는데, 그때 체콥(안톤 옐친. 개봉 얼마 전 사고로 사망했다)을 화면 가운데에 비춰준다. 크레딧 올라가면서 레너드 니모이와 안톤 옐친에 대해 짧은 추모가 마지막에 떠오르기도 하고.

굉장히 신나고 흥겹고 옛 TV 시리즈 두 편 이어서 보는 것 같은 느낌이었고, 제이라의 맹활약이라든가, 우후라가 나오는 모든 장면들이라든가, 인원 비중으로 치면 예전 시리즈를 그대로 따라간다는 것이 오히려 “낡은” 태도가 되어버린 게 사실이긴 한데, 질적인 측면에서는 헐리우드 SF에서 활약하는 여성 영웅의 패턴을 더 늘려주고 있어서 좋았다.

하나 더. 히카루 술루는 언제나 그렇듯 준비된 함장인데(함장 대리를 맡으라고 하면 “여기가 원래 내 자리였어” 스런 표정으로 그 자리를 차지하곤 하지. 게다가 처음 보는 우주선을 몰 수 있냐고 물으도 “농담이시죠, 함장님?”하고 여유만만하게 몰아보이는(게다가 그의 사랑하는 가족이 위기에 처한 상황인데도), 커크가 함장을 그만둘 생각이 없으니 중장 승진도 거절하는 장면을 그대로 술루에게 보여주고 싶었다. 자기 인생 계획 짱짱하게 세워놓고 그대로 인생행보 밟아나가는 계획성 좋고 머리 좋고 손재주도 좋고 야심도 있는 남자의 앞에, 영원히 함장을 그만 둘 생각이 없는 똥차…… 아니, 똥차는 아니지만 여튼 차 한대가 길을 가로막고 있는 셈이잖아. 음.

그러고 보니 스타트렉 : 다크니스가 2013년 영화였다니. 세월 정말 빠르다 싶다. 🙂

ps) 오늘 영화보러 갔다가 기분 나쁜 일이 좀 있었다. 내가 앉아 있고, 한 칸 건너 옆에 다른 여자분이 앉아 있었다. 그런데 두어 줄 앞에 앉아 있던 남자가 갑자기 일어나서 주위를 둘러보더니, 굳이 여기로 와서 나와 그 여자분 사이에 와서 앉는 것이었다. 앉자마자 다리 쩍벌은 기본이고! 뭐 이런 개저씨가 다 있는지! 영화 시작 직전이었지만, 다행히 평일 오전이라서 빈 자리가 많았고, 나도 그 여자분도 얼른 다른 자리로 가서 앉았다.

아니, 그런데. 영화 보러 와서 굳이 낯선 여자 둘 사이에 끼어 앉고 싶은 개저씨라도 트레키일 수는 있잖아. 근데 이 아저씨는 그냥 잤음. 심지어는 스팍이 우후라의 목걸이 이야기를 하고 본즈가 기겁하는 그, 영화를 보던 사람 대부분이 폭소를 터뜨린 시퀀스에서조차 자고 있었음. 얼마 전 스타트렉 시사회 끝나고 어떤 남자는 “여자가 진정한 스타트렉 팬일 리 없고 다 배우 팬일 것이다”라는 식으로 글을 쓰던데, 어떤 남자는 스타트렉을, 여자들 사이에서 낮잠 자러 보러 오고 말이죠. 나오다가 직원에게 이야기를 했더니 직원도 인터넷에서만 본 이야기가 여기서도 일어나다니 하고 좀 당황해 했다. 그렇다고 영화 시작 전에 이걸 체크할 수도 없고. 그런 사례가 있거나, 혹은 영화관에서 성희롱 당하는 상황에 대비해서 의자 밑에 호출 벨을 다는 것도 불가능하진 않겠지만 “다른 관람객에게 폐가 된다”고 클레임 넣는 사람이 없을 것 같질 않으니 영화관에서 쉽사리 적용할 수 있는 부분도 아닐 테고.

아이민 주스 클렌즈 이틀동안 도전

날은 더운데다, 아기를 재우고서 저녁을 먹어 버릇 하다 보니 점점 저녁식사 시간이 늦어졌다. (슬슬 아기와 함께 저녁을 먹는 방향으로 전환하고 있는데 아직 과도기다.)
그러던 어느 날, 23시에 저녁을 먹기를 연속 사흘째 하고 나서 속에 탈이 났다. 사실 경험상 이렇게 탈이 났을 때는 보리차나 마시면서 하루이틀 굶으면 좀 가라앉긴 하는데.
지난 한 달, 애 먹을 것은 살뜰하게 챙겨 먹여도 정작 우리 먹을 건 제대로 챙겨먹지 못했던 게 생각나서, 이왕 굶을 거 이걸 하자고 결정.

클렌즈 굿모닝으로 하루, 클렌즈 라이트로 하루. 총 이틀을 주스로 때운 뒤 보식은 닭죽으로 하기로 하고 주스를 주문했다. 때운다고 하기에는 가격이 좀 나갔지만 말이다.

클렌즈 굿모닝

  1. Beauty & the beet : 비트, 당근, 케일, 셀러리라는, 웬만해선 한번에 다 입에 대고 싶지는 않은 조합인데 의외로 맛있었고, 음료 자체는 냉장고에서 갓 꺼낸 것인데도 그렇게 속이 차가워지는 느낌은 들지 않았다. 이유인즉 사과, 레몬과 생강이 들어가서. 특히 생강이 좀 많이 들어갔는지 뒷맛도 약간 알싸해서, 케일과 셀러리 냄새가 거의 안 났다.
  2. Body & kale : 케일과 시금치. 여기에 파인애플, 사과, 레몬이 들어가서 맛이 상큼함. 처음 먹은 것과는 달리 먹고 속이 좀 차가워지긴 했다.
  3. Pink wonderland : 적양배추, 사과, 배, 파인애플. 어지간해서는 맛없어지기 힘든 조합인데다 위장에도 부담이 적었다. 이건 마시면서 술마신 다음날 먹으면 개운하겠다는 생각을 잠깐 했다.
  4. My funny carrot : 제일 맛있었다. 당근, 오이, 사과, 레몬, 생강의 조합. 당근과 오이를 같이 갈아도 의외로 재미있구나 싶었다. 다음에 믹서기에 시험삼아 같이 갈아봐야지. 근데 맛있긴 맛있으면서도, 당근은 역시 기름 넣고 가열하는 게 흡수율은 더 높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잠깐 했다.
  5. Take five : 밀싹, 보리싹, 케일, 청포도, 사과. 이쯤되면 색을 맞추기 위해 사과도 아오리를 넣었으면 재미있겠다 싶었다. 밀싹이 들어있어서, 이건 하루 넘기면 위험해 보였다. 사실 그래서 다음날 먹을 클렌즈 라이트의 이 제품은 냉동팩으로 둘둘 감아서 냉장고에 넣었다.
  6. I mean green : 자기네 브랜드 이름을 딴 녹즙. 아마도 시그니처 상품인것 같은데 케일, 셀러리, 파슬리, 오이, 사과, 레몬, 생강. 잠 자기 전에 속이 좀 따뜻해진 채 마무리할 수 있어서 나쁘지 않았다.

클렌즈 라이트

  1. Straight on red : 비트, 당근, 사과, 레몬. 전날 마신 뷰티 앤 더 비트의 간략한 버전같다. 일어나자마자 마시는 것이다 보니 생강이 들었으면 좋았을텐데, 하고 투덜거렸다. 속이 따뜻해지는 관계로.
  2. Dance with my father : 케일, 로메인, 근대, 청포도, 사과, 레몬이 들었다. 꼬꼬마 돌보면서 서둘러 마셔서 정확히 맛이 기억나진 않는데, 마시고 나서 “로메인? 상추를 갈아 먹었단 말야?”하고 생각하다가 사실 케일로도 쌈을 싸먹는다는 걸 떠올리긴 했다.
  3. Body & kale : 전날 마신 거니까 생략.
  4. Tropical shower : 오렌지, 파인애플, 레몬, 자몽이 담겼다. 사실 하루 절식하면서 주스만 마실 때 제일 사람이 유혹에 약해지는 게 이 오후 2~3시에 마시는 회차다. 목마르고, 피곤하고, 늘어지고, 배고프고. 특히 어제 마신 굿모닝과는 달리 이 라이트 프로그램은 칼로리 자체도 적다. 그런데 딱 맛있고 활력이 생길만한 걸 적당할 때 넣어줘서 좋았다.
  5. Take five : 전날 마신 거니까 생략.
  6. I mean green : 전날 마신 거니까 생략.

작년 이맘때에 했던(지금 뒤져보니 기록은 안 해놓았던 것 같다) 휴롬주스 클렌즈 이틀동안 한 것과 비교하면, 이쪽이 가격은 조금 저렴하고 만족도는 더 높았다. 간단히 말해서 이거 이틀치+수박주스까지 주문한 가격이 자작년에 휴롬의 비슷한 패키지로 이틀 한 것 보다 조금 저렴했다. 휴롬은 근처 매장에서 직접 수령해 왔지만 이쪽은 배민프레시로 배달시켰더니 당일날 아침에 꽁꽁 얼어붙은 냉동팩에 감싸인 채 잘 도착했다. 맛도 그렇고. 내년에 또 한다면 여기서 주문해야지.

작품과 상품

작품을 만드는 것은 작가의 일이다. 하지만 그 작품을 팔 수 있는 형태의 상품으로 만드는 것은, 편집부라든가 출판사라든가 웹툰 담당자라든가, 다른 사람들의 힘이다.

소설을 쓰니까 텍스트만 넘겨 놓은 것에 화사한 표지가 붙어 팔려나갈 수 있는 형태로 만들어지는 것도, 만화를 스토리만 쓰니까 콘티 단계까지 해 놓은 것이 작화를 받고, 책으로 웹으로 서비스가 되는 것도. “상품”은 웬만해선 혼자 만들 수 없는 것이다.

회사마다 개입하는 정도는 다 다르지만(글쓰는 노예처럼 쓰고 있는 곳도 있고 제가 편집자를 달달 볶으며 놀려먹고 괴롭히는 데도 있고 다양합니다 다양해) 서비스 가능한 형태로 만들고 영업하고 배본하고 포털에 넣는 것, 회사가 하는 일들에 대해 생각한다.
나는 그 일이 결코 작지 않다고 생각한다.
자기가 이야기를 처음부터 끝까지 생각해서, 이 일을 상품으로 만드는 것을 편집자와 의논하는 것도 있지만
기획 단계부터 편집자가 아이디어를 낸 것들, 혹은 미디어믹스로 기획한 것들에 대해서는 특히 그렇다.

예를 들어 나는, 내 소설들, 특히 SF 쪽에 대해서는 이것이 “내 것”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만화의 경우는 여기에 내 동업자들은 물론이고, 남의 원작을 각색했거나 내 원작을 제공했던 것들은, 모두 편집자가 함께 만든 것이라고 생각하는 쪽이다. 나아가 대패본 말고 정식으로 외국에 나가게 되는 것들에 대해서는, 편집자를 넘어 그 뒤에, 내가 만나지 못한 영업부서를 생각하게 된다. 아마도 그 분들이 없었다면 레디는 대패본으로만 남았을 뿐 미국 도서관협회 영어덜트 목록 같은 데는 결코 못 들어갔겠지.
물론 냉정하게 말하면 “바로 그 일을 위해 월급을 받는 분들”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이야기가 이야기로 완성된 것은 물론 작가의 몫이다. 이건 부정할 수 없는데.
이건 상품으로서 완성되어 작은 성공이나마 만들어 냈을 때의 이야기다. 그랬을 때는 그걸 같이 만들고, 예쁘게 다듬어 상품으로 만들고, 여기저기 포털에 넣고 외국에 팔려고 한 분들이 그 성공에 함께 있었음도 생각해 볼 필요가 있을 것 같다는 말이다.

낮에 좀 착잡하고 마음 아프며 속이 좀 쓰린 일이 있었는데, 그 이야기는 이 이야기로 갈음한다. 누가 여기서 날 더 쑤시지 않는 이상 이 일은 더 언급하지 않을 생각이다.

알라딘 굿즈로 “된장녀” 되기 (비웃음)

이상한 남자를 퇴치하기 위해 스타벅스 카드에 구멍 뚫어서 가방에 매달기라도 해야 하나 아니면 샤넬 립스틱을 사서 “샤네루- 빔!!!!”을 쏠까 (웃음) 하다가.
생각해보니 몇년만 있으면 알라딘 굿즈만 들고 다녀도 된장녀 소리를 들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아니, 우리나라 사람 중에는 자기가 돈 안 쓰는 분야에 남이 쓰면 존나 고나리질 하고 싶어 하는 사람이 발에 채이는데다.
안 읽어서 반지성인지 반지성주의라 안 읽는건지 모르지만 업데이트 안 하는게 인생의 자랑인 사람이 수두룩하지.
당장 지금도 회사로 책 택배 같은 것 받으면
무슨 책을 그렇게 사냐.
읽기는 다 하냐
그 책값이면 술이 얼마냐 하시는 분들 많잖아요?

그런 농담이 위트있는 줄 아시고. 그런데다 여자들은 쓸데없는 책만 읽는다고 생각하시는데 정작 본인은 재테크 말고는 책 안보고…….

대학에 한번 더 다니거나 대학원에 다니는 것도 “돈지랄”이라고 면전에서 들어 본 적이 있다보니. (비웃음)

내가 못 끌고 다니는 차 남이 끌고 다니면 욕하고
내가 탐내는 시계보다는 싸지만 여튼 계집이 가방을 탐내면 욕하고
내가 마시는 술값보다는 싸지만 여튼 계집이 커피를 마시면 욕하던바로 그 남자사람들이, 조금만 더 지나면
자기들은 안 하는 문화생활 하는 여자들에게 시비를 걸다걸다 못해
여자가 책만 사도 된장녀라도 할 듯.

그 날이 오면 알라딘 굿즈로 머리부터 발끝까지 감고 다녀야지. (웃음)

어떻게 좀 안 될까요 – 아소우 미코토, 학산문화사

어떻게 좀 안 될까요 110점
아소우 미코토 지음/학산문화사(만화)

전부터 보고 싶었는데 요즘 집에 새 만화책 들일 공간이 없어서(특히 올해는, 논문 준비한다고 장만한 책들 때문에 냉장고 열기도 힘들어졌다) 미뤄두다가, 최근 리디북스에 8권까지 올라와서 읽기 시작. 뒷권도 빨리 올라오면 좋겠다.

제도가 바뀌며 그해 따라 정말 많은 변호사가 배출되는 바람에, 일할 사무실을 찾지 못해 쩔쩔 매던 주인공 카이세 라쿠코(랏코)가 예전에 호스티스로 일하던 가게에서 취직자리 내기를 했던 변호사 스가와라의 사무실에서 일자리를 얻으며 시작되는 이야기. 유능 냉철한 선배 변호사 쇼지 히로아키에게 일을 배우며, 순정만화가의 작품답게 작은 로맨스가 싹터오르기 시작하지만 두 사람은 아직도 둔한 상태. 이런 두 사람의 관계에, 예전에 쇼지와 결혼할 뻔 했으며, 서로 취미도 비슷한 유능한 변호사 나카도 시오리와, 나카도의 후배이자 라쿠코의 연수원 동기인 아카이도가 끼어들며 의뢰인과 사건을 사이에 두고 밀고 당기는 사각관계가 이어진다. 여기에 사법고시를 통과한 것이 아니라 법학교수로서 일정 이상 근무하여 변호사 자격을 얻어 두었다가, 아내의 죽음을 극복하고 제자인 쇼지의 성장을 바라보기 위해 변호사 사무실을 개업했던 스가와라 변호사라든가, 그의 제자로, 미혼모로 아이를 가졌을 때 스가와라의 도움을 받아 아이를 지켰던 사무장 쿠보타라든가, 다양한 캐릭터들이 법률사무소와 일상에서 벌어질 수 있는 온갖 법률분쟁을 사이에 두고 드라마를 짜 내려간다. 연구를 많이 한 듯 보이는 전문직 드라마인데, 이 안에서 로맨스를 생기있게 담아내는 것이 특히 훌륭하다. 다음 권을 빨리 읽고 싶은데 리디북스 뭐하나요. 지금 종이책은 10권인가 11권까지 나온것 같던데.

작가와 긍지

탑툰 쪽의 신인작가가 올린 만화를 보고 무척 안타까웠다. 아니, 작가가 얼마나 자존심이 없으면 자기가 한 것도 아닌 일로, 독자들의 죽창 앞에 자기가 납죽 엎드리는 만화나 그리고 있는가. (그 이전에, 독자들이 죽창을 든 폭도란 말인가? 말이 되는 소리를 해야지.) 대체 거긴 신인작가에게 자존심을 갖고 작품활동을 하라는 말 한 마디 안 해 주었단 말인가. 대체 작가의 멘탈관리를 어떻게 하고 있는 건가. 아무리 생각해도 담당PD가 잘못했네. -_-+ (그건 그렇고 이 일련의 이야기에서 굉장히 그쪽 회사 및 계열이 자주 거론되는 느낌을 받는데 그냥 느낌인가?)

여튼 누가 그 작가에게 말 좀 해 줘요. 당신은 세상에 없던 것을 만들어내는 사람이고 그 일에 자존심좀 갖고 살라고. (한숨) 아니 왜 자기가 잘못한 것도 아닌데 남에게 무릎을 꿇고 그래요. 작가가 무슨 회사야. 거대 운명 공동체야. 우린 그냥 각자의 작품의 주인이고, 포도송이처럼 알알이 매달려 있는 것 뿐이라고. 왜 다른 작가의 행보를, 미국에서 한인 유학생이 뭔가 범죄를 저질렀다고 해서 미국 대사관 앞에서 머리를 조아리는 사람을 본 것 같은 기분으로 봐야 하는지 모르겠지만 여튼 마음이 안 좋다. 그 작가에게 자기 작품의 주인이자 왕으로서 긍지를 갖고 살라고 말해주고 싶은 마음이 여기까지 넘쳐날 뿐이다. (먼산)

만화가 파티(in 야인시대 캠핑장)

부천 국제만화축제의 일환으로 그 옆의 야인시대 캠핑장에서 열린 만화가 파티(라고 말하면 거창하지만 그냥 한 팀씩 텐트 빌려놓고 고기 구워먹는 모임)에 다녀왔다. 실은 내가 신청해서 간 것은 아니고, 선생님께서 텐트를 빌려 놓았으니 가족 동반하고 오라고 불러주셔서 가 볼 수 있었다. 우리는 햇반을 준비했고, 다른 팀은 카레를 가져왔고, 주최에서 고기와 야채를 준비해 주신 데다, 옆 텐트에서 감자와 라면도 나눠주셔서 무척 푸짐하게 잘 먹고, 즐겁게 놀고 돌아왔다. 그러고 보니 올해는 첫날에 전시들 보고, 리셉션 따라가다가 어마어마한 선생님들께 인사도 드렸다.

만화의 날이라든가, 부천 만화축제 오프닝 리셉션이라든가, 이런저런 만화 관련 행사와 그에 수반되는 밥 먹는 모임에 참석하는 것은 벌써 몇 년째인데, 사실 올해 들어서야 좀 익숙해진 느낌이 든다. 어색하고, 내가 와 있을 자리가 아닌 것 같고, 여기서 뭘 하지 하고 혼자 쩔쩔매고. 어쩌면 내가 만화가나 만화 스토리작가로 먼저 데뷔한 게 아니라, 소설로 먼저 시작해서 이쪽으로 넘어왔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년에 한두 번 행사에 참석하는 것이 필요할 지도 모르고, 가능하면 익숙해지는 게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것도 무척 최근의 일이다.

SF쪽의 행사는 아주 소소한 모임부터 SF어워드까지 어느 행사에 가도 딱히 어색하고 꿀리는 느낌을 받진 않는 것을 보면, 아는 사람이 좀 더 많아지면 이쪽도 즐거울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들었다. 만약 이게 정말 필요하고 익숙해지면 좋은 일이라면, 내 동업자들부터 슬슬 밥먹는 모임에 같이 가자고 꼬드겨서 같이 다녀볼까 하는 생각도 하게 되었다. 당장 올해 만화의 날에, 작년처럼 락현쌤이라도 꼬드겨서 데려와야지.

그나저나 야인시대 세트장+캠핑장 부지에 신세계 백화점이 들어올 테니(이것도 이야기하면 긴데…… 구월동에 있던 신세계 부지가 원래 인천시에서 빌려 쓰던 건데, 시에서 매입하라는 걸 신세계에서 안 사고 버티고 있었던 것을 그만 롯데가 사 버렸다. 그래서 전국에서 드물게 롯데를 꺾고 있던 이 구월동 신세계를 잃게 된 신세계는 여기, 부천과 인천의 경계인 만화박물관 뒤쪽을 노리게 되었고…… 라는 썰이 있다) 내년에는 이 행사도 없어질 지 모르겠다. 행사가 아주 없어지기 전에 참석해 볼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 불러 주셔서 감사합니다.

여름이라 야채피클

입맛은 안 나고, 그렇다고 매일 뭔가 별식을 해 먹을 수도 없고, 식비 생각도 해야 하는데 채소는 많이 먹어야 해서 요즘은 각종 야채피클들을 만들고 있다.

여기 소개한 책들을 참고로, 일단 간단하게 오이, 새송이버섯, 당근, 파프리카, 양파, 토마토 같은 것들.

일단 전에 롯데마트에서 허브 비네거 드레싱들 유통기한 임박세일로 사다 둔 게 있다. 새송이버섯이나 당근은 대충 후라이팬에 구워서 이 드레싱에 폭 절여놓았다가 먹는다.

오이는 정석대로, 식초 2, 물 2, 간장 1 섞어서 피클링 스파이스 한티스푼 넣고 보글보글 끓여서, 썰어놓은 오이를 담은 통에 쭉 붓는다. 모자라면 옆의 전기포트에서 물 끓여다가 추가로 조금 더 붓고. 양파와 파프리카도 마찬가지. 납작납작하게 잘 써는 것이 귀찮아서 그렇지, 정작 만드는데는 시간이 얼마 걸리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토마토는 꿀을 넣어서 마리네이드하면 맛있다고 해서, 사과식초와 꿀을 섞어서 절여보았다. 맛있음. ㅇㅇ 그건 저기 링크해 둔 책에도 방울토마토 꿀 마리네이드라는 제목으로 나와있음.

대충 어느 것을 만들더라도 큼직한 통 두개 채우는 데 20분이면 된다. 밤에 글쓰다가 기분전환으로 그런걸 만들고 있으니 주부력이 높아지는 것 같은 착각도 적당히 든다. 오래 두고 먹을 게 아니니까 염도는 레시피보다 조금 낮춰서 쓰고 있다. 대신 식초를 더 넣고 피클링 스파이스를 좀 넣거나 하는 식으로.

중국 웹툰에 대한 두려움

어제 부천국제만화축제에 다녀왔습니다. 올해의 메인은 윤태호 선생님이었고, 낮에 SNS에는 스누피 위주로 올렸습니다만, 저는 윤태호 선생님 전시보다 스누피 옆에서 전시하던 중국 웹툰 쪽에서 시간을 보냈고 생각을 많이 했어요. 사실을 말하자면 굉장히 앞날이 걱정스러웠습니다. 한국 웹툰과 구별할 수 없는, 화려한 그림체에 다양한 소재들이 인상적이었고.

사실은 이미 이만큼 중국 웹툰이 들어와 있는 줄도 몰랐어요. 예를 들면 봄툰 오픈할 때 맨날 페북에 광고 때리던 그 “봉수황 산음공주”가 중국 웹툰이더라고요. 아니, 난 포털에서 그렇게 메인으로 민 게 중국 것일줄은 꿈에도 몰랐지. 아직 일본 만화와 구별되는 무언가가 보이진 않았지만, 일본 만화의 그림과 소재들을 제대로 이해하고 만들어낸 그림이나, 소재들 보면서 무서웠어요. 왜 안 무섭겠어. 이 퀄리티로 주 1회를 뽑아낸다는 건, 어시 없이는 불가능하겠죠. 그리고 그건 상업지가 아니라 동인지 출력하는 데도 우리와는 부수의 레벨이 다른 중국의 인구 덕분일 수도 있고. 인구가 많다보니 재능있는 사람도 그만큼 있을 테니까. 그리고 중국 눈 높음. 설마 중국이 일본만화는 안 보고 한국웹툰의 영향만 받아서 저렇게 쌓아올리진 않았겠죠.

진심으로 이 시장에서 한국이 밀릴 거라고 생각했어요. 좀전에 트위터에서 이 이야기를 하니 장수제님이, 중국은 노벨문학상도 탔고, 전통적으로 컨텐츠 강국이었다는 말씀도 하셨죠. 맞아요. 원래 토양도 좋은데다, 만화라는 매체에 대한 이해도 좋고. 다만 웹툰 포털이 최근에 생기기 시작했을 뿐인건데. 한국만화 아무거나 갖다가 중국에 소개한다고 돈이 될 리가 없다는 확신이 들었습니다. 자칫 잘못하다간 “쟤들이 웹툰 종주국이라며 저거 뭐임 ㅋㅋ” 할 수도 있겠다 싶었어요.

그냥 단순히 작품들 일러스트와 컷 몇개, 그리고 전체 줄거리 소개해 놓은 전시였는데도, 거기 돌아보면서, 내가 이 작가들이랑 “스토리 면에서만” 싸워서 이길 수 있나? 그 생각을 했어요. 그림은, 제 동업자들이 다 훌륭한 분들이긴 하지만, 이 퀄로 연재를 하려면 어시가 있어야 해요. 절대적으로! 그리고 이기는게 문제가 아니라 10년 뒤 한국에 국산 웹툰이라는 장르가 제대로 남아라도 있으려면 예전 잡지만화 스타일의 편집부가 웹툰에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원석같은 존잘님을 데려가다 상품으로 만들 수 있는, 트레이닝이 가능하고 기획력이 있는 편집부가. 전 중국 라이트노벨 두려워하고 있었는데 이젠 중국 웹툰도 걱정이네요.

…….제가 걱정한다고 웹툰 포털에 없던 편집부가 생기진 않을 테고. 갑자기 어시를 둘씩 써도 될 만큼 제 동업자들의 원고료가 오르지도 않을 테고, 정부 규제는 없어지고 업체들이 적극적으로 작가 육성에 나서지도 않을 테니……. 전 가서 공부나 해야죠. ㅠㅠ 적어도 내 동업자들이 스토리 때문에 지는 일은 없게 해야지 뭐. ㅠ

해망재 서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