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복의 갈애 / 군복의 충동 – 토가시 세이야

군복의 갈애10점
토가시 세이야 지음, 이아미 옮김, 스즈카와 마코토 그림/영상출판미디어(주)
군복의 충동10점
토가시 세이야 지음, 스즈카와 마코토 그림, 이아미 옮김/영상출판미디어(주)

군복의 갈애는 엘티시아와 그레이시스의 이야기. 군복의 충동 쪽은 엘티시아의 친구인 라이자와 그레이시스와는 복잡한 관계인(웃음) 펠릭스의 이야기. 그렇다면 아마도 한 편이 더 나올 만 한데 어떨지 모르겠다.

올해들어 TL들을 이것저것 읽었지만 이 토가시 세이야는 군복 입은 남자들을 섹시하게 잘 다뤄서 좋지만, 무엇보다도 주인공들이 행동력이 있어서 훌륭하다. 일본 TL을 읽을 때 제일 답답한 것이, 여자주인공이 생각도 행동력도 없고, 겨우 뭔가 진실에 가까운 것을 생각해 내도 그걸 물어볼 생각을 안 해서 멀쩡한 사건을 꼬이게 만드는데, 엘티시아는 처음에 나오는 묘사만 보면 얌전하고 맹해보이는 캐릭터지만 원치 않는 결혼을 피하기 위해 그레이시스에게 무려 미약을 먹이고(물론 자기가 덮치진 못하고, 그레이시스에게 약을 먹이고 그의 침실에 숨어드는 형태지만), 라이자는 자신의 은인을 찾기 위해 펠릭스와 함께 행동하다가, 결정적인 단서가 나왔을 때 펠릭스에게 제대로 질문을 던지는 것이 좋았다. (그랬으니 여기서 이야기가 전환이 되는거지, 마지막의 마지막 페이지까지 비밀을 못 밝혀내고 남자가 답을 말해줘야 아는 캐릭터가 너무 많다. TL을 읽을 때 제일 힘든 부분이 그 점이다.) 악역에게 잡혀가도 따박따박 말대꾸를 다 하면서 연인에게 도움이 될 만한 정보는 다 체크하는 아가씨를 보니 속이 다 시원하다. 그래, 아무리 TL의 여주라도 생각도 하고 행동도 해야 매력적이지! 그리고 둘 다 번역이 괜찮다. 궁중 배경인데 깬다 싶을 정도로 현대적인 대화가 난무하지 않는다는 것도 장점.

새벽강가에 해오라기 우는 소리 – 국역 기문총화

새벽강가에 해오라기 우는 소리 -상10점
김동욱 옮김/아세아문화사

예전에 한권짜리로 읽었던 기억이 있는데, 이번에 대학원 과제와 논문을 위해 세 권짜리 완역본으로 다시 읽었다. 역자는 성균관대 교수님. 고전 번역 쪽은 성균관대 쪽에서 나온 건 대체로 믿을 수 있기도 하고 완역본이기도 해서, 어떤 번역본을 고를지 고민할 까닭은 없었다.

기문총화는 학교 다닐때 흔히 배운 “패관문학”, 보고 들은 이야기를 모은 야담집이다. 선조~정조 시대의 이야기가 나오고, 삼국유사에 나올 법한 이야기들도 종종 보인다. 그래서 19세기에 엮인 것으로 추정된다고. 어릴때는 이런 조선시대 야담집들(어우야담이나 용재총화 같은 것들)을 낄낄 웃으며 볼 수 있었는데, 요즘은 읽으면서 생각이 많다. 아, 이 부분은 정치적으로 한쪽으로 너무 쏠렸구나. 저 부분은, 아무리 이걸 엮은 사람이 양반계층이라 하더라도 노비 목숨을 너무 파리목숨처럼 여기는걸. 아니, 이거 강간이잖아, 하면서 복잡한 마음이 들기도 하고. 물론 어릴때 읽은 건 어우야담이니 용재총화니 해도 죄 다 축약본이긴 했지만.

기문총화는 대체로 임란 이후에서 정조 무렵 인물들 일화와 각종 야담들을 모으고 있다. 멀게는 조선 초기나 그 이전 시대의 고사를 다루기도 하나, 여튼 19세기 이야기도 나오다 보니 그 무렵의 야담집으로 보이고. 일화부터 시작해서 꽤 흥미로운 단편소설같은 이야기들까지 다양하다. 세 권을 내리 읽어도 하루면 충분하고. 눈에 거슬리는 부분들도, 그 당시의 시대상을 충실하게 재현하고 있다는 점에서 생각하면 당연한 것이기도 하고. 여튼 요즘 읽을 게 많아서 힘들고 즐겁다.

이야기를 만든다는 것, 괴물을 기른다는 것

마트에서 어느 분이 쓰러지셨다. 간질발작 같았는데 직원들이 바로 발견하고 119에 연락도 하셨다. 눈이 의식이 있는 것 같아서 수치감에 속상하실것 같아 얼른 자리를 피했다. 그러면서도 생활밀착형 좀비물 오프닝 같은 걸 생각해버린 자신이 한심했다.

의식이 없는 분이 쓰러진 것과 달리 의식이 있는 채 발작을 일으킨 분을 보면, 119에 연락한 것만 확인되면 자리를 뜨게 된다. 자기 몸을 자기 의지로 움직일 수 없는 상황에서 남들이 빙 둘러 바라보는게 어떤 감정일지 모르겠다. 한편으로 지하철이나 버스 뒷자리에서 들려오는 무심한 대화들이나, 그냥 낙엽들이 굴러가는 모습에도 혼자 이야기를 짜맞추는 본능이 그럴때도 말릴 틈 없이 튀어나오는 건, 가끔은 나쁜 병 같다. 관찰도 상상도 때와 장소를 가려야 하는데.

이야기를 만드는 사람은, 자기 마음 안에 커다란 괴물을 하나 기르고 있는 게 아닐까 생각한다. 어쩌면 하나가 아니라 떼일 수도 있고…… 여튼 온갖 것을 잡아먹지. 심한 경우에는 그 자신의 인생까지도. 이 이야기를 트위터에서 했더니 빨간반지님이 “페테르부르크의 대가에서 작가가 자기 아들이 죽은 뒤 나는 내가 언젠가 이 이야기를 글로 쓰리란 걸 알고있다, 라고 생각하는 묘사가 나오죠. 그게 공감되서 소름끼쳤던 적이 있어요.”하고 말씀해 주셨는데, 아마도 그럴 것이다. 그러고도 남을 것이다.

평생의 변명거리를 손에 넣다

소비패턴이라든가 수입이라든가 3년 전과는 많이 달라졌고, 마침 복직을 하는 시기라서 “소비를 더 늘리지 않으면 저축을 예전만큼 늘릴 수 있는 시기”이기도 하다 보니 예전에 재무설계를 받았던 데서 다시 추가상담을 받기로 했다. (전에 받았던 분과는 다른 분께 요청했다. 전에 상담해주신 분이 무척 잘 해주셨지만, 한번정도는 다른 분도 만나봐야 균형을 잡을 수 있지 않나 싶어서.) 그러다가.

“옷을 많이 사시는 것도 아니고 화장품을 많이 사시는 것도 아닌데 어째서……”
“어, 음. 실은 1년에 책은 XXX만원 정도 구입해요.”
“책을.”
“예. 뭐 그것 말고도 마음의 양식거리(덕물품)를 조금…….”

그러나 이분은 역시 프로셨다.

“문화생활비라고 생각하면 이건 금액이 커요. 하지만.”
“하지만?”
“……님은 그 책을 읽고 연구해서 연간 XXXX만원 정도의 추가 수입을 내시는 거예요. 회사는 다니고, 글 써서 그만큼 더 버는 거니까. XXX만원 투자해서 XXXX만원 버는 거면 투자치고는 아주 알토란 같은 거고요, 그건 다 비용이라고 생각하시면 되겠네요.”
…….우와.

나, 오늘 뭔가 평생의 변명거리를 손에 넣은 것 같다.

“그래도 사놓고 안 읽거나 하시는 건 아니죠?”
“아니, 안 읽을 책을 왜 사요. 지금 애가 뛰어놀 공간도 없어서 죽겠는데.”
“다 읽으시면 됐어요, 뭐.”

올레.

트라우마에 맞서기

쓰는 소설을 수정해야 하는데 손을 못 대다가
이 소설 제안을 받았을 때 부터 하려던 일을 하러 갔다.
(사실 단편이고 이야기가 머릿속에 다 있는데 두드릴때마다 뭔가가 머리에 급제동을 걸며 날 괴롭혀 왔다)

트라우마에 맞서기.

거의 20년만에 와봤는데.
학교는 성냥갑처럼 초라하고
올라가서 혼자놀던 바위는 언제 문화재 지정이 되어서 만져볼 수도 없고
예전에 가던 만화가게는 파출소가 되어 있고 (아마 그 자리가 아닐수도 있는데 대충 눈어림으로)
생각해보니 나는 이 작디작은 학교에서
공부나 잘했지 요즘같으면 일베나 하고 있었을 놈들에게 시달려서 그렇게 자해를 하고 살았지.
가소롭고 초라하고 아무것도 아닌 것들.
여기서 그리운 건 저 검바위와 도서실 뿐이었다.
도서실은 신발 신고 올라가자니 청소할 애들에게 미안하니 밖에서만 돌아봤고
검바위도. 보긴 했지만 만져보진 못했다.

나가려던 길에 예전에 e에게 고백받았던 벤치….인지 그 자리에 다시 벤치를 꽂은건지 모르지만 있어서 잠깐 들여다 봤다. 난 고등학교 때 고백을 서너번 받았고. 여튼 가장 기억에 남는 건 e였으니까.

여튼 아무것도 아니다.
20년동안 짓눌려 있을 만한 가치가 없었다.
이제 이건 이 자리에 두고 가야지.
마침 좋은 기회다. 글을 쓸 지면이 있고.

그렇다고는 해도.

자신의 트라우마가 실은, 이제는 초라하고 아무것도 아니며 볼품없는 것이라는 것을 눈으로 확인하고 돌아왔는데도, 사람의 마음에는 여전히 통증이 남는다. 쓰라리다.

하지만 아파할 이유는 없다. 내 기억속에 남아 있던 작디작던 경서동 성당도, 그 길건너의 분식집도, 만화가게도, 태양각도, 학교 후문 앞의, 칼국수를 주문하면 아저씨가 엄지손가락을 반쯤 집어넣은 채로 가져다 주시더라는 그 분식집도, 문구점 두 개도, 내가 넥스트와 노이즈와 조용필 16집 테이프를 하나씩 사서 모았던 그 작은 음반가게도, 길 건너의 작은 교복점도, 아무것도, 없다. 거기 남아있는 것은 더는 나를 악몽으로 짓누를 수도 없을 만큼 그냥 그저그런 시시한 학교일 뿐. 98년과 99년의 대입 기록이 무려 비석으로 남아있는 것을 보고 비웃고, 학교가 생각보다 작았다는 것에 새삼 놀라고, 논밭이 전부 빌라가 되어 버린 것에 경악하고, 푸세식 화장실이 흔적도 남지 않은 것을 보고, 검바위를 보고, 내가 알았던 것들 중에 남아 있는 것은 이 검바위와, 본관 건물과, 도서관 건물밖에 없다는 것을 다시 한 번 확인하고, 이제 십년쯤 더 지나면 그때의 선생님들도 전부 은퇴하시겠거니, 그렇게 생각하고. 그때쯤 되면 지금 보고 있는 것들도 또, 남아있지 않을 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고, 더는 무엇도 나를 짓누를 수 없다는 것을 생각하고.

나는 거기 가는 내내 겁을 먹고 있었다.
머릿속의 무언가가 또다시 끊어질까봐.
그게 어느정도 팽팽하게 당겨오긴 했지만, 이제 그 시절의 어떤 것도 나를 괴롭힐 수 없다는 걸 안다. 눈으로 보고 왔고, 확인하듯 찍어왔다. 나는 이제 괜찮다. 거긴 이제 아무것도 없다. 어쩌면 그때 그 시절 열심히 읽었던 은하영웅전설이나(웃음) 로마의 1인자 같은 책들도 슬슬 낡아 바스라져 도서관 밖으로 밀려났을지도 모른다. 그만큼의 시간이 흘렀다.

가사 도우미 님을 구하다

일과 육아를 다 하자니 정신이 없는데다 복직하면 집안일에 손도 못 댈게 뻔한 상태라서(게다가 논문도 있어요, 지금은. 아이고, 하느님 부처님.)
결국 주에 한번 반나절씩 일해주실 가사도우미님을 구했다.

첫날이었는데, 문 열고 들어오셨다가 거실에 책 쌓여있는 것을 보고 뒤로 주춤주춤 물러서시는 걸 보았다.
표정이 정말로 “도망치면 안돼”였다. ㅠㅠㅠ
죄송합니다.

“가정집에….. 무슨 책이…… 이 방은 왜 책만 가득한 거예요! 이 방을 아기 방으로 만들 생각을 해야지.”
“……면목이 없습니다.”

“그릇은 이게 다 뭐예요?”
“아, 그게 자취할때 쓰던 거 정리 안하고 살림을 합쳤더니.”

“왜 그동안 답이 없었는지 간단히 설명하면, 이 집의 공간에 비해 짐이 너무 많았기 때문이에요.”
“그런가요……”
“일단 저기 거실에 쌓여있는 책을 봐요. 보통의 가정집은 방 두개를 책으로 채우고 침실과 거실에 책을 저렇게 쌓지 않아요. 방 하나 분량의 책을 내다버리지 않으면.”
“책은 제가 일하는 데 필요한 거라서 못 버려요. 하지만 그릇은 안쓰는 건 다 버리면 되니까 주말에 싹 갖다버릴께요.”
“꼭 버리세요.”
“예. 그리고 서재는 손 안 대셔도 돼요.”
“정말요?”
“예, 저긴 제가 일하는 데라서 잘못 건드리면 저 큰일나요. 그러니까 실질적으로 여기랑 여기만 인간이 살 수 있는 형태로 유지해 주시면.”
“(안도하는 표정) 아휴, 그런 거라면.”

사실은 서재를 들여다보고 “도망가야 겠다, 이 집은 안돼”라고 잠깐 생각하셨다고 한다.
하아.
굉장히 면목없는 시간이었다. ㅜㅜㅜㅜㅜㅜㅜㅜ

하지만 이분의 청소 솜씨는 정말 신의 경지다. 이걸 해결하는 것만으로도 삶의 질이 올라가고, 세이는 좀 더 쉬고 책 읽을 시간을, 나는 글을 더 쓸 시간을 확보할 수 있을 것 같다. 아아. 부디 별 탈 없이 오래오래 와 주세요. ㅠㅠㅠㅠㅠㅠㅠ

고스트버스터즈

개봉 첫날이니까 네타를 피하고 싶으면 읽지 말 것. 일단 첫 문단은 네타 없는 이야기부터 시작할테니 알아서 피해주세요.

예전 고스트버스터즈 영화라든가, 혹은 애니메이션 시리즈라든가, 어느쪽에서도 나는 이건이 제일 멋있다고 생각했다. (그랬을 사람 많을걸?) 그는 수줍음을 타는 천재 공돌이 너드이고, 훌륭하게 맛이 간 매드 사이언티스트인 주제에 묘하게 신사적인 남자였다. 그리고 이번에, 그 멤버들을 여성으로 바꾸고 리부트한 새로운 고스트버스터즈에서, 나는 홀츠먼이 등장한 순간 소리없이 주먹울음을 터뜨릴 뻔 했다.

앞머리를 올려 세워 얼굴을 길어보이게 하고, 두껍고 특이한 안경을 쓰고, 신무기를 척척 찍어내는 박사인데 이건 어디로 봐도 매드 사이언티스트고, 농담은 잘 하면서도 처음으로 한 편, 한 팀, 가족, 친구들이 생긴 것에 가슴떨려하면서 그 말은 잘 못 꺼내는 공돌이 너드 홀츠먼!!!!! 이 언니는 거대한 청교도 유령과 맞설 때 등 뒤에서 간지나는 쌍권총 형 무기를 꺼내 액션을 펼치기까지 한다. 와, 언니, 멋있어요. 사랑에 빠질 것 같아. 고스트 버스터즈의 최애캐였던 이건이 이런 멋진 언니로 되돌아온 것에 감동했다.

그리고 감동도 잠시. 이건 역을 맡으셨던 배우님이(돌아가셨다) 에린네 대학 사무실 복도에 놓인 흉상(…..)으로 발견될 것을 보며 나는 이루 말할 수 없는 표정을 짓고 말았다.

에린과 애비는 고등학교 시절 동창이었고, 예전에 함께 유령에 대한 연구를 책으로 낸 사이. 에린은 종신교수 임용을 코앞에 둔 상태로 과거의 흑역사인 그 책이 아마존에서 팔리고 있다는 것을 알고 애비를 찾아갔다가, 정말로 유령을 목격하고 만다. 그리고 “유령은 있었어!!!!”하는 영상이 유튜브에 올라오며 교수 임용이 물 건너간 것은 물론 해고되고, 애비와 홀츠먼의 팀에 합류한다.

이 에린과 애비는, 마치 피터와 레이를 둘로 합쳤다가 다시 나눈 것 같은 느낌. 예를 들어 에린은 레이처럼 온갖 호구잡히는 노릇은 다 하지만, 미남을 밝히는 것은 피터에서 가져온 성격 같달까. 물론 원작에서 대장 노릇을 하던 피터는 애비가 그 성격의 대부분을 이어받았고. 그리고 여기, 뉴욕의 지하철 직원이던 패티가 합류한다. 이 패티는 유일하게 과학자가 아니라는 점, 흑인이라는 점, 그리고 방향은 다를 뿐 제각각 맛들이 간 저 인간들 사이에서 그나마 상식인이라는 점에서 윈스턴의 속성을 거의 그대로 가져왔고.

그리고 “전화받은 여비서”의 포지션에, 케빈으로 분한 크리스 햄스워스가 등장한다. 한마디로 요약하면 “금발 거유 백치 비서”의 남자 버전. 전화도 제대로 못 받고 커피도 제대로 타지 못하는데다 로고를 만들랬다니 유령 로고에 가슴이나 그려넣고 있는 이 케빈은 무려 빙의를 당하고서야 똑똑해진다. 아아, 그 빙의 말인데. 저런 아름다운 얼굴과 저런 완벽한 피지컬에 그런 두뇌를 가졌으면 그냥 빙의된 채 평화롭게 하렘왕이 될 수도 있었는데 왜 꼭 굳이 세계를 멸망시키겠다는 거니, 하고 악역을 동정하게 된다. 아니, 그냥 평화롭게, 여자들을 만나고 돈을 벌고 인기인이 되어서 행복하게 살라고! 햄식의 미모와 그대의 지능이 만나면 다 가질 수 있어!

그럼 케빈에게 빙의당한 악역이 누구냐 하면, 호텔 직원인 로완이다. 기분나쁜 말을 혼자 중얼거려 여자들이 피해다니고, 직장에서도 좋은 평가를 얻지 못하는 일종의 불운한 천재로, 직장인 호텔의 지하실에 틀어박혀 제4의 문을 열고 유령들로 뉴욕을 뒤덮을 계획을 세우고 있는데, 그 계획에는 자신의 죽음도 포함되어 있었다…… 고 하면 거창하지만, 하는 짓을 보면 예전 시사인 기사 중에 “이제는 국가 앞에 선 일베의 자식들”인가, 여튼 일베 사용자 분석 기사가 떠오른다. 이 상큼하게 웃기는, 성별이 전환되었을 때의 포인트와 덕후포인트 양쪽을 유쾌한 영화에서 자기 입으로 남들 앞에서 여성혐오 발언을 공공연히 내뱉는 유일한 캐릭터가 “로완에게 방의당한 케빈”이라는 것도 포함해서. 여튼 로완이 케빈에게 빙의되자, 케빈은 자기가 움직이는 대로 경찰과 군인들을 움직이게 만드는데 이 부분이 엔딩 크레딧에 통째로 들어간다. 고스트버스터즈를 보고 나오자마자 트위터에 제일 먼저 쓴 글이 “여러분 고스트버스터즈 보세요 금발거유미남이 엔딩 크레딧에서 춤신춤왕을!!!!!!!”이었는데, 크리스 햄스워스가 흰 티셔츠에 청바지를 입고 춤추는 장면을 보는 게 흔한 일은 아니지.

전작의 주인공들이 까메오로 출연한 것은 물론이다. 피터 역의 빌 머레이는 “유령은 없다”며 고스트버스터즈의 활약을 공공연히 폄하하는 물리학 교수로, 레이 역의 댄 애크로이드는 전임자가 감옥에 가서 학과장이 된, 막장 대학(애비의 연구실이 있었던)의 교수로 나와 새로운 고스트 버스터즈의 발목을 잡고 힘들게 한다. 나와서 노하우를 전수하는 현자가 아니라, 꼰대 중의 꼰대로 전편의 주인공들을 등장시키다니, 이거야말로 “리부트”가 무엇인지 화끈하게 보여주는 게 아닌지. 그리고 맨 마지막에는 전편의 히로인이었던 시고니 위버도 나온다. 홀츠먼의 스승님으로.

(여기 추가로, 전작의 윈스턴이 패티의 장의사 삼촌 – 영구차를 빌려준 – 으로 나오고, 호텔 로비 직원이 전작의 비서였다는 제보를 받았습니다. 맞아요, 그 언니 어디서 봤다 했는데!)

(그러고 보니 크리스 햄스워스도 그렇고 시고니 위버도 그렇고, 빙의 전에는 그냥 그렇다가 빙의당하며 급 섹시해지는 캐릭터였다고 세이와 잠깐 이야기)

그건 그렇고 뉴욕이 유령으로 뒤덮이고 호텔이 날아가고 그 아래로 제4의 문이 열리고 난리가 난 마당에, 영업중인 샌드위치 가게가 있다니. 마치 씨엘 1권에서 이비엔이 “눈부신 가슴선”을 유지하려면 영양을 공급해야 한다며 샌드위치 사먹던 생각이 난다. 아니 그 난장판에 빵이 넘어갑니까.

주인공들이 여성으로 변경되며 불만을 표시하는 이들도 있더라고 들었는데, 세이에게 물어보니 “심리가 중요한 것도 아니고, 코믹 액션 영화인데 상관없지 않냐”는 반응. 세이는 패티가 지하철역에서 인사하는데 다들 무시하고 지나가는 장면, 이 인물의 속성과 상관없이 굉장히 흔한 장면이었지만, 패티가 여자이고 흑인이라서 더 무시당한게 아닐까, 하고 묻기도 했다. 아, 그리고 남자가 봐도 빙의 당한 후의 햄스워스는 좋았다고. 그렇지, 이렇게까지 관객이 주인공의 빙의를 바라는 영화도 없었던 것 같긴 했다.

아니, 정말 훌륭하고 유쾌한 덕후영화였어요. 고스트바스터즈. 영화든 애니든 어렸을때 보신 분들은 다 즐겁게 보실 수 있을듯요. 마시맬로를 기억하시거나 시고니 위버가 빙의되고서 섹시했다고 기억하시는 분 모두 다. ♡

ps) 먹깨비도 연애를 하는 더러운 세상. (먼산)

ps2) 마지막 장면은 2편이 있다는 암시인거죠? 그렇다고 말해줘요.

ps3) 마시맬로…… 놈 비슷한 게 나오긴 하는데 그건 전편이 더 예쁩니다. 으흑, 우리 오동통하고 큼직하고 아무에게도 해 끼치지 않을 것 같은 마시맬로를 돌려줘 ㅠㅠㅠㅠㅠㅠㅠㅠ

ps4) 전편에서의 그 아지트 건물에…… 집세가 비싸서 못 들어가고 중국집 2층에서 시작하는 멤버들…… 아아, 어느 나라나 부동산이란……. ㅠㅠㅠㅠㅠㅠㅠㅠ

스타트렉 : 비욘드

커크는 중립적인 입장에서 한 종족의 평화의 표식을 적대 종족에게 건네려 하다가 공격을 받았고(셔츠도 찢어졌고), 스팍은 끝내 전해주지 못한 해당 평화의 표식(고대 무기의 기동부)을 라이브러리에 보존해 두었다. 엔터프라이즈의 팀웍은 완벽하지만, 전작에서 이어졌던 커크와 스팍의 과거가 조금 그늘을 드리우는 가운데, 엔터프라이즈는 요크타운에 들어선다. (물론 어딜 가도 불만이 많은 본즈는 부서질 스노볼 같다고 악담을 하며 내리는데……) 엔터프라이즈로서는 간만에 맞는 휴식이며, 술루는 남편과 딸과 재회한다. 스팍은 중장 진급 예고를 받고, 스팍은 스팍 대사의 죽음에 대해 듣고, 유품을 전달받으며 자신이 뉴 벌칸을 위해 일해야 한다는 고민에 빠진 채 우후라에게 작별을 예고한다.

한편 이 시기, 한 우주선이 요크타운에 구조신청을 한다. 엔터프라이즈는 그 요구조건에 맞았고, 커크와 크루들은 그녀를 따라 성운으로 들어갔다가 공격을 받고, 행성으로 추락한다. 크루들은 탈출하지만 상당수가 죽고, 탈출한 대부분은 적에게 생포된다. 이 과정에서 적이 노리는 것이, 라이브러리에 보존된 무기의 일부임이 밝혀진다. (이 탈출셔틀은 비기닝에서는 없었던 것이다. 트위터에 돌아다니는 트리비아를 보니 조지 커크의 전사 이후로 추가된 기능이라는 듯) 부상을 입은 채 적의 우주선을 몰고 불시착한 본즈와 스팍, 그리고 스카티와 커크와 체콥을 제외한 다른 크루들은 다 나포되거나 사망한 상태. 이때 엔터프라이즈가 마치 오븐에서 잘못 꺼낸 불타는 피자같은 꼴로 떨어지는데, 엔터프라이즈는 뭐 원래 부서지라고 있는 아름다운 우주선이니까 보는 나야 그러려니 하지만 스카티가 얼마나 가슴이 아팠을까 싶었다.

그러나 몽고메리 스카티에게는 곧 새로운 장난감이 주어지지. ^_____^

스카티는 제이라(소피아 부텔라다!!!!!! 킹스맨에서 가젤 역 맡았던 그 배우다.)와 만나고, 그녀가 “내 집”이라고 부르는 USS 프랭클린, 워프 4급엔진이 붙었고, 예전에 실종되어 역사책에서나 볼 수 있었던 스타플릿 함선을 함께 수리하게 된다. 이 무슨, 덕후 개발자를 넥슨 컴퓨터박물관에 강제 납치한 것 같은 전개란 말인가.

그리고 제이라의 덫에 걸렸던 커크와 체콥이 합류하며, 이들 일행은 이 프랭클린을 이용하여 중상을 입은 본즈와 스팍을 먼저 데려오고, 나포된 다른 크루들을 구출할 계획을 세운다. (이 과정에서 본즈와 스팍이 이번 영화의 개그를 모조리 담당하게 된다. 스팍은 본즈가 자기 목숨을 구해주는데도 따박따박 말대꾸를 하고, 본즈는 “혼자 죽진 않겠군”하고 중얼거리는데 스팍 먼저 프랭클린으로 트랜스워프되어 버린다거나. 크루들이 잡혀있는 곳이 저기가 맞는지 고민하는데 스팍이 “우후라에게 준 목걸이의 방사선”을 검지해 보라고 하자 본즈가 “여자친구에게 방사능 물질을 줬다고?” “여자친구를 스토킹?”하는 모습도 볼 수 있었고. 잠깐, 그 목걸이는 스팍의 “어머니의 목걸이”라고 했고 “벌칸 행성의 돌”이라고 했다. 다시 말하면 그 목걸이는 사렉이 자기 아내에게 선물했다는 것일 텐데. 사렉 이 벌칸…… 이성적인 벌칸 좋아하네!!!!!! 여튼 둘이 이번 편의 개그는 전부 도맡아 했다. 그것 말고 기억나는 개그는 스카티가 그 와중에 홍차 마시고 있는 것 정도였을까. 아이고, 영국인이여.)

한편 나포된 크루들 중에는 술루와 우후라가 포함되어 있었는데, 사실 술루가 우후라보다 계급도 높으니까, 이 상황에서 술루가 크롤과의 교섭에서 이들 크루들을 대표하는 역할을 맡더라도 어색하진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우후라가 그 대표격인 입장을 뭍았고, 커크가 그 자리에 있었다면 했을 법한 대사를 치며, 크롤을 도발하고 그의 정체를 간파하기도 한다. 이렇게 단체로 납치되었을 때, 수많은 창작물에서 여성 캐릭터는 인질로 잡혀 고통받아 “그들이 감추고 있던 비밀”을 결국 꺼내놓게 만드는, 소위 “발목 잡는 캐릭터”역할을 한다. 하지만 이번에는 그 “발목 잡는 캐릭터”의 역할을, 의외로 술루가 맡게 된다. 우후라가 납치되어 있고, 스팍이 자신의 연인이니까 부상을 무릅쓰고 구하러 간다는 전개는 있지만, 우후라는 커크가 “아버지가 타던 것과 같은 기종의 모터사이클”을 몰며 종횡무진 적을 교란하는 사이 스팍이 있는 데 까지 제 발로 나온다.

그리고 아, 저, 민메이 어택.

……이쯤 되면 민메이 어택에 당한 외계종족 목록을 따로 만들어야 할 것 같은 기분이 들지만, 여튼 커크와 크루들은 USS 프랭클린을 몰고 나와 요크타운을 공격하는 크롤과 맞서고, 민메이 어택이라고 설명해야 할 만한 방식으로 적의 대부분을 물리친다. (정확히는 VHS로 적의 신호를 교란하는 것이긴 한데……) 그리고 요크타운 내부까지 들어간 크롤과 다른 두 기의 전투기를, 프랭클린 함으로 들이받아 멈추게 한다.

커크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생물학 무기로 요크타운을 날려버리려던 크롤을 막고, 크롤과 프랭클린 함과 관련된 케이스는 정리된다. 커크는 중장으로 승진하면 함장으로 우주에 나갈 수 없으니 “그게 무슨 재미입니까.”하며 승진을 거절하고, 스팍은 스팍 대사의 유품을 살펴보던 중 그가 크루들과 함께 찍었던 사진을 보며 남기로 한다. 그리고 엔터프라이즈가 다시 건조되며 엔딩. 요 직전에 커크가 죽은 크루들을 위해 추도사를 하는데, 그때 체콥(안톤 옐친. 개봉 얼마 전 사고로 사망했다)을 화면 가운데에 비춰준다. 크레딧 올라가면서 레너드 니모이와 안톤 옐친에 대해 짧은 추모가 마지막에 떠오르기도 하고.

굉장히 신나고 흥겹고 옛 TV 시리즈 두 편 이어서 보는 것 같은 느낌이었고, 제이라의 맹활약이라든가, 우후라가 나오는 모든 장면들이라든가, 인원 비중으로 치면 예전 시리즈를 그대로 따라간다는 것이 오히려 “낡은” 태도가 되어버린 게 사실이긴 한데, 질적인 측면에서는 헐리우드 SF에서 활약하는 여성 영웅의 패턴을 더 늘려주고 있어서 좋았다.

하나 더. 히카루 술루는 언제나 그렇듯 준비된 함장인데(함장 대리를 맡으라고 하면 “여기가 원래 내 자리였어” 스런 표정으로 그 자리를 차지하곤 하지. 게다가 처음 보는 우주선을 몰 수 있냐고 물으도 “농담이시죠, 함장님?”하고 여유만만하게 몰아보이는(게다가 그의 사랑하는 가족이 위기에 처한 상황인데도), 커크가 함장을 그만둘 생각이 없으니 중장 승진도 거절하는 장면을 그대로 술루에게 보여주고 싶었다. 자기 인생 계획 짱짱하게 세워놓고 그대로 인생행보 밟아나가는 계획성 좋고 머리 좋고 손재주도 좋고 야심도 있는 남자의 앞에, 영원히 함장을 그만 둘 생각이 없는 똥차…… 아니, 똥차는 아니지만 여튼 차 한대가 길을 가로막고 있는 셈이잖아. 음.

그러고 보니 스타트렉 : 다크니스가 2013년 영화였다니. 세월 정말 빠르다 싶다. 🙂

ps) 오늘 영화보러 갔다가 기분 나쁜 일이 좀 있었다. 내가 앉아 있고, 한 칸 건너 옆에 다른 여자분이 앉아 있었다. 그런데 두어 줄 앞에 앉아 있던 남자가 갑자기 일어나서 주위를 둘러보더니, 굳이 여기로 와서 나와 그 여자분 사이에 와서 앉는 것이었다. 앉자마자 다리 쩍벌은 기본이고! 뭐 이런 개저씨가 다 있는지! 영화 시작 직전이었지만, 다행히 평일 오전이라서 빈 자리가 많았고, 나도 그 여자분도 얼른 다른 자리로 가서 앉았다.

아니, 그런데. 영화 보러 와서 굳이 낯선 여자 둘 사이에 끼어 앉고 싶은 개저씨라도 트레키일 수는 있잖아. 근데 이 아저씨는 그냥 잤음. 심지어는 스팍이 우후라의 목걸이 이야기를 하고 본즈가 기겁하는 그, 영화를 보던 사람 대부분이 폭소를 터뜨린 시퀀스에서조차 자고 있었음. 얼마 전 스타트렉 시사회 끝나고 어떤 남자는 “여자가 진정한 스타트렉 팬일 리 없고 다 배우 팬일 것이다”라는 식으로 글을 쓰던데, 어떤 남자는 스타트렉을, 여자들 사이에서 낮잠 자러 보러 오고 말이죠. 나오다가 직원에게 이야기를 했더니 직원도 인터넷에서만 본 이야기가 여기서도 일어나다니 하고 좀 당황해 했다. 그렇다고 영화 시작 전에 이걸 체크할 수도 없고. 그런 사례가 있거나, 혹은 영화관에서 성희롱 당하는 상황에 대비해서 의자 밑에 호출 벨을 다는 것도 불가능하진 않겠지만 “다른 관람객에게 폐가 된다”고 클레임 넣는 사람이 없을 것 같질 않으니 영화관에서 쉽사리 적용할 수 있는 부분도 아닐 테고.

아이민 주스 클렌즈 이틀동안 도전

날은 더운데다, 아기를 재우고서 저녁을 먹어 버릇 하다 보니 점점 저녁식사 시간이 늦어졌다. (슬슬 아기와 함께 저녁을 먹는 방향으로 전환하고 있는데 아직 과도기다.)
그러던 어느 날, 23시에 저녁을 먹기를 연속 사흘째 하고 나서 속에 탈이 났다. 사실 경험상 이렇게 탈이 났을 때는 보리차나 마시면서 하루이틀 굶으면 좀 가라앉긴 하는데.
지난 한 달, 애 먹을 것은 살뜰하게 챙겨 먹여도 정작 우리 먹을 건 제대로 챙겨먹지 못했던 게 생각나서, 이왕 굶을 거 이걸 하자고 결정.

클렌즈 굿모닝으로 하루, 클렌즈 라이트로 하루. 총 이틀을 주스로 때운 뒤 보식은 닭죽으로 하기로 하고 주스를 주문했다. 때운다고 하기에는 가격이 좀 나갔지만 말이다.

클렌즈 굿모닝

  1. Beauty & the beet : 비트, 당근, 케일, 셀러리라는, 웬만해선 한번에 다 입에 대고 싶지는 않은 조합인데 의외로 맛있었고, 음료 자체는 냉장고에서 갓 꺼낸 것인데도 그렇게 속이 차가워지는 느낌은 들지 않았다. 이유인즉 사과, 레몬과 생강이 들어가서. 특히 생강이 좀 많이 들어갔는지 뒷맛도 약간 알싸해서, 케일과 셀러리 냄새가 거의 안 났다.
  2. Body & kale : 케일과 시금치. 여기에 파인애플, 사과, 레몬이 들어가서 맛이 상큼함. 처음 먹은 것과는 달리 먹고 속이 좀 차가워지긴 했다.
  3. Pink wonderland : 적양배추, 사과, 배, 파인애플. 어지간해서는 맛없어지기 힘든 조합인데다 위장에도 부담이 적었다. 이건 마시면서 술마신 다음날 먹으면 개운하겠다는 생각을 잠깐 했다.
  4. My funny carrot : 제일 맛있었다. 당근, 오이, 사과, 레몬, 생강의 조합. 당근과 오이를 같이 갈아도 의외로 재미있구나 싶었다. 다음에 믹서기에 시험삼아 같이 갈아봐야지. 근데 맛있긴 맛있으면서도, 당근은 역시 기름 넣고 가열하는 게 흡수율은 더 높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잠깐 했다.
  5. Take five : 밀싹, 보리싹, 케일, 청포도, 사과. 이쯤되면 색을 맞추기 위해 사과도 아오리를 넣었으면 재미있겠다 싶었다. 밀싹이 들어있어서, 이건 하루 넘기면 위험해 보였다. 사실 그래서 다음날 먹을 클렌즈 라이트의 이 제품은 냉동팩으로 둘둘 감아서 냉장고에 넣었다.
  6. I mean green : 자기네 브랜드 이름을 딴 녹즙. 아마도 시그니처 상품인것 같은데 케일, 셀러리, 파슬리, 오이, 사과, 레몬, 생강. 잠 자기 전에 속이 좀 따뜻해진 채 마무리할 수 있어서 나쁘지 않았다.

클렌즈 라이트

  1. Straight on red : 비트, 당근, 사과, 레몬. 전날 마신 뷰티 앤 더 비트의 간략한 버전같다. 일어나자마자 마시는 것이다 보니 생강이 들었으면 좋았을텐데, 하고 투덜거렸다. 속이 따뜻해지는 관계로.
  2. Dance with my father : 케일, 로메인, 근대, 청포도, 사과, 레몬이 들었다. 꼬꼬마 돌보면서 서둘러 마셔서 정확히 맛이 기억나진 않는데, 마시고 나서 “로메인? 상추를 갈아 먹었단 말야?”하고 생각하다가 사실 케일로도 쌈을 싸먹는다는 걸 떠올리긴 했다.
  3. Body & kale : 전날 마신 거니까 생략.
  4. Tropical shower : 오렌지, 파인애플, 레몬, 자몽이 담겼다. 사실 하루 절식하면서 주스만 마실 때 제일 사람이 유혹에 약해지는 게 이 오후 2~3시에 마시는 회차다. 목마르고, 피곤하고, 늘어지고, 배고프고. 특히 어제 마신 굿모닝과는 달리 이 라이트 프로그램은 칼로리 자체도 적다. 그런데 딱 맛있고 활력이 생길만한 걸 적당할 때 넣어줘서 좋았다.
  5. Take five : 전날 마신 거니까 생략.
  6. I mean green : 전날 마신 거니까 생략.

작년 이맘때에 했던(지금 뒤져보니 기록은 안 해놓았던 것 같다) 휴롬주스 클렌즈 이틀동안 한 것과 비교하면, 이쪽이 가격은 조금 저렴하고 만족도는 더 높았다. 간단히 말해서 이거 이틀치+수박주스까지 주문한 가격이 자작년에 휴롬의 비슷한 패키지로 이틀 한 것 보다 조금 저렴했다. 휴롬은 근처 매장에서 직접 수령해 왔지만 이쪽은 배민프레시로 배달시켰더니 당일날 아침에 꽁꽁 얼어붙은 냉동팩에 감싸인 채 잘 도착했다. 맛도 그렇고. 내년에 또 한다면 여기서 주문해야지.

작품과 상품

작품을 만드는 것은 작가의 일이다. 하지만 그 작품을 팔 수 있는 형태의 상품으로 만드는 것은, 편집부라든가 출판사라든가 웹툰 담당자라든가, 다른 사람들의 힘이다.

소설을 쓰니까 텍스트만 넘겨 놓은 것에 화사한 표지가 붙어 팔려나갈 수 있는 형태로 만들어지는 것도, 만화를 스토리만 쓰니까 콘티 단계까지 해 놓은 것이 작화를 받고, 책으로 웹으로 서비스가 되는 것도. “상품”은 웬만해선 혼자 만들 수 없는 것이다.

회사마다 개입하는 정도는 다 다르지만(글쓰는 노예처럼 쓰고 있는 곳도 있고 제가 편집자를 달달 볶으며 놀려먹고 괴롭히는 데도 있고 다양합니다 다양해) 서비스 가능한 형태로 만들고 영업하고 배본하고 포털에 넣는 것, 회사가 하는 일들에 대해 생각한다.
나는 그 일이 결코 작지 않다고 생각한다.
자기가 이야기를 처음부터 끝까지 생각해서, 이 일을 상품으로 만드는 것을 편집자와 의논하는 것도 있지만
기획 단계부터 편집자가 아이디어를 낸 것들, 혹은 미디어믹스로 기획한 것들에 대해서는 특히 그렇다.

예를 들어 나는, 내 소설들, 특히 SF 쪽에 대해서는 이것이 “내 것”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만화의 경우는 여기에 내 동업자들은 물론이고, 남의 원작을 각색했거나 내 원작을 제공했던 것들은, 모두 편집자가 함께 만든 것이라고 생각하는 쪽이다. 나아가 대패본 말고 정식으로 외국에 나가게 되는 것들에 대해서는, 편집자를 넘어 그 뒤에, 내가 만나지 못한 영업부서를 생각하게 된다. 아마도 그 분들이 없었다면 레디는 대패본으로만 남았을 뿐 미국 도서관협회 영어덜트 목록 같은 데는 결코 못 들어갔겠지.
물론 냉정하게 말하면 “바로 그 일을 위해 월급을 받는 분들”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이야기가 이야기로 완성된 것은 물론 작가의 몫이다. 이건 부정할 수 없는데.
이건 상품으로서 완성되어 작은 성공이나마 만들어 냈을 때의 이야기다. 그랬을 때는 그걸 같이 만들고, 예쁘게 다듬어 상품으로 만들고, 여기저기 포털에 넣고 외국에 팔려고 한 분들이 그 성공에 함께 있었음도 생각해 볼 필요가 있을 것 같다는 말이다.

낮에 좀 착잡하고 마음 아프며 속이 좀 쓰린 일이 있었는데, 그 이야기는 이 이야기로 갈음한다. 누가 여기서 날 더 쑤시지 않는 이상 이 일은 더 언급하지 않을 생각이다.

해망재 서실